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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06 잊기 전에 스크랩
  2. 2010.05.06 when I born, I black
  3. 2010.04.27 <작은 연못> 2
  4. 2010.04.23 월간 <노동세상> 인터뷰 기사 4
  5. 2010.04.13 손해 본 소비자
  6. 2010.04.11 일요일 4
  7. 2010.04.06 <클래스> 1
  8. 2010.03.30 학습량과 좋은 교육
  9. 2010.03.18 성폭력 피해 상담 2
  10. 2010.03.18 <밀크>



말의 힘

황인숙

 
기 분 좋은 말을 생각해보자.

파랗다. 하얗다. 깨끗하다. 싱그럽다.

신선하다. 짜릿하다. 후련하다.

기 분 좋은 말을 소리내보자.

시원하다. 달콤하다. 아늑하다. 아이스크림.

얼음. 바람. 아아아. 사랑하는. 소중한. 달린다.

비!

머릿속에 가득 기분 좋은

느낌표를 밟아보자.

느낌표들을 밟아보자. 만져보자. 핥아보자.

깨물어보자. 맞아보자. 터뜨려보자!

 


AND



When I born, I Black
When I grow up, I Black
When I go in sun, I Black
When I scared, I Black
When I sick, I Black
And When I die, I still Black
And You, White fellow
When you born, you Pink
When you grow up, you White
When you in sun, you Red
When you cold, you Blue
When you scared, you Yellow
When you sick, you Green
And When you die, you Gray
And you calling me Colored?


태어날 때 내 피부는 검은색
자라서도 검은색
태양 아래 있어도 검은색
무서울 때도 검은색
아플 때도 검은색
죽을 때도 나는 여전히 검은색이죠.
그러데 백인들은
태어날 때는 분홍색
자라서는 흰색
태양 아래 있으면 빨간색
추우면 파란색
무서울 때는 노란색
아플 때는 녹색이 되었다가
또 죽을 때는 회색으로 변하잖아요.
그런데 백인들은 왜 나를 유색인종이라 하나요?

by an Anonymous pupil of King Edward VI School, Birmingham, UK.

Found in The children's book of poems, prayers and meditations ed. Liz Attenborough (Element Books, 1989)


AND



나는 요즘 잔혹한 화면 끔찍한 영상은 안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보았을 때 남는 트라우마가 너무 힘들어서.

어제는 영화 <작은 연못>을 보러 갔는데

눈 가리고 보느라 영화의 4분의 3은 못 본 것 같다.


AND

 ‘아가씨 선생님’의 교무실 생존기
  여성주의 교사모임 ‘삐삐 롱스타킹’ 운영자 우완 교사
  글·사진 윤성희 기자 miyulain@naver.com

말괄량이 삐삐가 선생님이 된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야자를 늘린다고? 싫어요! 난 재미있는 수업을 준비해야 한다고요. 왜 나만 교무실 설거지 하고 술자리에서 교장선생님을 챙겨야 하죠? 거기 선생님, 딸처럼 여긴다고 여학생들 엉덩이 치지 마세요.” 그러나 20~30대 여교사들의 ‘교무실 생존수칙’은 이를 모두 반대로 하는 것이다. 여성이자 교사인 그리고 비정규직인 ‘여교사’의 생존은 그처럼 어렵다.

4년 전, 첫 부임지가 남자 고등학교로 결정된 후 우완(32) 교사는 ‘공포’에 휩싸였다. 남학생들이 나를 괴롭히면 어쩌나…. 막상 맞닥뜨린 건 다른 종류의 고민이었다. 선배 남교사는 우 교사의 어깨에 손을 얹고 학생들에게 말했다. “선생님 약하시니까 말 잘 들어야 한다.” 1학년 때부터 매로 길들여진 학생들은 그 말대로 ‘남교사가 아닌, 보다 연약하고 신기한 무엇’으로 그를 대했다. 배려와 하대가 뒤섞인 선배 교사들의 태도, 학생들이 폭력에 의해 교단이라는 권력에 굴복하는 법을 배웠다는 섬뜩한 성찰. 고민은 많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무난하게 가자.”였다. 우 교사는 작년 2월 여성주의 교사모임 ‘삐삐 롱스타킹’을 꾸렸다. 여교사의 인권을 말하고 한국의 교육환경을 여성의 시각으로 재구성하고 싶었다. 

 “우리 모임에서는 젊은 여교사를 ‘아가씨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이들에게만 씌워지는 두가지 굴레가 있어요. 하나는 ‘단정·정숙해야 한다.’는 요구예요. 학생들에게 콘돔 사용법을 알려준다 하면 교직사회에서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어요.
또 하나는 최하위 계층이라는 거예요. 젊은, 특히 기간제 여교사들은 맡는 업무나 교실에서 낼 수 있는 목소리의 크기가 달라요. 남교사보다 교실 장악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술자리 가면 관리자(교장, 교감) 선생님 모셔야 하고 춤도 춰야 해요.”

지난 해 큰 논란을 일으킨 ‘남고생들의 여교사 성추행’ 사건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일어난 문제라고 했다. “젊은 여교사들은 이중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어요. 일단 교실 내에서 남학생과의 성별 권력관계에서 밀리죠. 게다가 그 분이 기간제였어요. 학생들도‘재계약을 위해 잘 보여야 하는’ 기간제 교사와 정교사의 권력차이를 알아요.” 그는 이러한 여교사의 현실을 말하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여 교사들, 학교를 ‘까’다
모임에서는  <가르쳐야 할 것과 가르치지 말아야 할 것들>, <교무실에서 살아남기> 등 주제가 있는 토론회를 열었다. 여교사들은 각자의 고민들을 털어놓았다. “어느 날은 학생들이 칠판에 성기 그림이랑 섹스의 순서를 써 놨어요. 그래서 ‘순서가 틀렸어!’ 이러면서 지우고 넘어갔죠. 당황한 모습을 보이기도 싫지만 태연한 척 넘어가면 ‘까진’ 취급을 받을까봐 난처해요.” “화장 안 하고 가면 예의 없다는 취급을 받아요.” “교장선생님이 말썽 핀 아이들 좀 조치하라고 교무실 왔다가 저만 있으니까 ‘아무도 없네’ 하고 갔어요. 난 사람도 아닌가?”

함 께 나눈 이야기들을 모아 새내기 여교사를 위한 가이드북을 만들자는 논의도 했다. 단 이들은 답보다는 ‘문제’를 비틀 것을 권한다. “첫 수업 시간에 ‘자지 말자’고 규칙을 만드는 거 괜찮은가요? 어기면 때려야 하나요?’” “학생들에게 직접 참여하는 발표수업을 제안했더니 하기 싫대요. 애들을 구슬려야 할까요, 때려야 할까요?” 이들은 단순히 채찍과 당근이 아닌, ‘나만의 카리스마’를 찾아내자고 답을 냈다. “아가씨 교사들은 교단에 서기 전에 공포를 느껴요. 애들을 내가 장악해야 하는데 방법이 뭘까? 하고. 그보다는 내가 존중할 만한 교사로 보이려면 어떻게 손을 내밀어야 할까 고민해야죠. 발표수업도 학생들 마음이 동할 만한 좋은 수업을 먼저 보여주면 애들도 좀 더 해볼 만 하다고 느끼지 않겠어요?”

학교폭력·성폭력 관련 좌담회를 갖기도 했다. 지난 2월에는  10대 학생들과 함께 연애와 성에 관한 속내를 나눴다. 하는데 “남자친구가 스킨십 진도를 더 나가려 하는데 소문나면 ‘걸레’로 찍힐까봐 걱정이라고 한 학생이 있었어요. 속이 많이 상했어요. 성 담론은 점점 개방적이 되는데 학교는 여전히 가부장적이라는 .”

우 교사는 교육환경과 여교사의 인권, 그리고 학생의 인권은 맞닿아 있다고 했다. “학교 문화가 군사적이고 가부장적인 부분이 많아요. 학생들을 병사들처럼 사열시켜 애국조회 하고, 어린 여교사들을 최하위층으로 만들죠. 그런 모습들을 극복하는 건 여성주의의 역할인 동시에 학생의 인권과도 연결된 거죠.” 학생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여성주의 동아리나 성평등 교육운동 등을 고민하는 이유다.

고민하는 힘이 학교 바꿀 것
교원 중 80%를 차지하는 여교사들의 고민이 왜 공론화되지 않았을까. “교직이 여성들에게 비교적 여러 가지를 보장하는 편이잖아요. 그러다보니 문제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아요. 두 번째는 이게 내부고발성 이야기들이라는 거죠. 기간제 여교사들에겐 특히 힘들죠.”

모임 도 쉽지 않았다. 홍보는커녕 ‘여성주의 모임을 한다.’고 밝히기조차 어려운 게 학교의 현실이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한층 힘들어진 교육운동 진영에서도 ‘다양한 교육운동, 여교사의 인권’을 말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과 함께 업무도 늘어났다. 참여자는 점점 줄어들었다.
“사실 인터뷰 요청 올 때,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고 있었어요.” 우 교사는 고백했다. 그를 돌려세운 건 사소한 희망이었다. “회원 한 분이 며칠 전에 모이자고 글을 올렸어요. 함께 모임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힘이 되더라고요.” 사소한 희망은 뿌리를 적셨다. “예전에 <일다> 기자 한 분이 그러셨어요. 지금 정권 아래에서 여성주의 언론 한다는 게 쉽진  않지만 계속해야 나중에 기회가 왔을 때 또 크게 성장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저도 한 3년은 버텨 봐야….(웃음) 다른 선생님들도 많이 관심 가져 주시면 좋겠어요.”

지금도 각자 고민하고 있을 후배 여교사들에게 우 교사가 하고픈 말은 무엇일까. “‘1년간 안 때리면서 너무 힘들었는데, 때리고 나니 너무 편하더라.’고 한 선생님이 있었어요.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자신이 하고 있는 실천이 옳은지 고민의 끈을 놓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또 좋은 선배를 만나라, 힘들면 연락해라. 카페 주소 ‘cafe.daum.net/teachingirls’(웃음) 또 가입만 하지 말고 얼굴 좀 보자.(웃음)” ‘교무실의 꽃’은 ‘일등 신부감’의 꽃잎 대신 학교를 바꿀 뿌리를 아래에서부터 뻗고 있었다. 



등록일: 10-04-16 14:13  
AND




어제 아침 조회에서 별 것 아닌 걸로 벌컥 화를 내고 하루종일 곰곰이 생각해봤다.

벌럭 화 내기,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왜 다시 이렇게 화를 내고 있을까?

생각해 보니 신입생들 입학 이후로 학생들 보는 마음이 예전같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도 유별나게 유대감이 끈끈하던 우리 학교의 사제 관계가

'손해 본 소비자'처럼 행동하는 학생들과 '내 가게도 아닌데 괜히 죄인'이 된 선생들의 모습으로

점점 왜곡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이러다가 우리 학교 불만제로에 나오겠다 ;;;
AND

일요일

카테고리 없음 2010. 4. 11. 23:44


눈이 일찍 떠졌다. 어제 일찍 잤기 때문이다.

설거지부터 했다. 어제 오래된 반찬들을 다 버려서 반찬통 수백개가 설거지 통에 있고 밥통의 솥이 거기 같이 있어서 밥을 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설거지를 하고 밥을 안치고 빨래를 돌렸다. 빨래를 돌리면서 내 생애 최초의 진미 오징어채 볶음을 요리했다. 그 사이에 밥이 다 되어서 밥을 먹었다. 그러고 나니 빨래가 다 되었다. 빨래를 널었다. 빨래를 널고 나니 원래 걸려 있던 마른 빨래들이 바닥에 널려 있어서 그걸 개켰다. 그걸 개키고 나니 바닥에 먼지가 수북한 것이 보여서 청소기를 돌렸다. 밥을 먹으면서 어제 버린 반찬들보다 더 오래된 반찬들을 냉장고에서 발견했던 것이 생각나서 또 반찬을 버렸다. 다시 설거지가 한 가득 나와서 또 설거지를 했다.

아침에 너무 많은 일을 해서 허리가 다 아팠다. 누웠다.
누워서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며 오늘은 반드시 밀린 일을 해야 한다는 결의를 나누었다.

그리고서는 컴퓨터를 켰다. 트위터를 켜니 또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눈과 허리가 아파서 눕는다는 게 티브이 앞에 누웠다. 세바퀴와 우결을 보다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너무 눈이 아파서 지쳐서 누웠다. 잠이 오는 것 같아서 낮잠을 잤다. 창문을 열어 두었는데도 하나도 춥지도 않고 솔솔 바람이 불어들어오는데 너무 기분이 좋았다.

자고 일어나니 일곱시가 다 되었다. 다시 아침에 통화한 친구와 전화통화를 했는데 그 친구는 찌뿌둥한 몸을 풀러 찜질방에 갔다가 여섯 시간을 보내고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까르르 웃으며 친구를 놀리고는 일어나서 티브이를 보면서 저녁을 먹었다. 보다 보니 계속 보게 되어 씻고 나니 열시였다.

앉아서 일을 시작했는데 아직 오분의 일도 다 못했다.
친구도 나도 아침의 결의는 하나도 지키지 못한 채 하루를 다 보냈다.

그래도 바람이 살랑대는 일요일 하루를 이렇게 집에서 온전히 쉬면서 보내니 기분이 좋다.
날씨가 좋으면 나가서 뭘 해야만 좋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집에서 빈둥대는 것도 참 좋구나!!!






AND

<클래스>

카테고리 없음 2010. 4. 6. 14:44


교사-학생 간 상호 작용에 대한 어떤 통찰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고 보았는데

너무 많이 졸아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별로 없다.

그래도 인상깊었던 장면들은

- 선생이 쓰는 말에 대하여 학생이 공격할 근거로 '부르주아적'이라는 말을 찾아내고 스스로 즐거워하던 장면

- 학생 평가를 함에 있어 모든 선생이 둘러 앉아 토론하며 평가를 진행하고
   그 과정을 학생 대표들이 지켜보도록 되어 있었던 장면

- 선생이 학생을 두고 '어제 너의 태도는 마치 창녀같았어'라고 말했을 때 그것 때문에 즉각 학생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이것이 학교 내에서 진지하게 문제가 되던 장면 (그리고 선생은 이것을 교묘히 숨기려고 하던 장면)

- 수업을 하고 나온 교사가 '정말 이 꼴통들 데리고 못해먹겠다'고 때려치우겠다고 소리치는 것을
   많은 교사가 지그시 쳐다보고 (그의 흥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 후 한 사람이 다가가 산책이나 좀 하러가자고 말하던 장면

등등.

프랑스의 교실에서의 소통은 우리나라와 근본적으로 달랐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근본적으로 유사했다.

그래서인지
같이 보러 간 친구는
학교에서 열받을 때 이것을 교실에서 같이 보며 역지사지의 기회로 삼아보라며 권해주었다.

AND



내가 존경하는 우리 학교의 두 국어 선생님은 분명 두 분 다 훌륭하신 선생님들인데
좋은 수업과 학습량에 대한 확고한 '이견'을 가지고 계셨었다.

한 분의 의견은 이랬다.
수업은 쉽게, 학습 내용은 적게, 학생들의 표현은 많이,
학생들이 표현할 수 있는 영감을 제공하는 것이 수업의 목표.

다른 한 분의 의견은 이랬다.
옛글 속엔 너무 아름답고 훌륭한 것이 많다.
이 글도 너무 훌륭하고 저 글도 너무 훌륭하다,
그러니 어떻게든 많이 가르쳐줘야 한다.
안 그러면 학원 가서 배운다.

나도 처음엔 후자의 선생님과 같은 상태로 학교에 왔던 것 같다.
그런데 점점 전자의 선생님과 비슷해졌다.

(사실 후자의 선생님처럼 가르칠 실력도 안 되었지만)
후자의 선생님처럼 가르치고자 하니 50프로의 학생은 버리고 가는 강의가 되었다.
사실 나는 지금도 후자의 선생님이 어떻게 모든 학생을 다 참여시키면서도
그 훌륭한 글들을 모조리, 깡그리 읽히는 강의를 하셨는지, 그 비결을 모른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늘 학생들에게
'난 미리 세번 읽어온 학생들을 대상으로만 수업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었던 것만은 안다.
난 다만 학생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용기가 안 났다.
안 읽어오면 어떡하지? 읽기 어려웠다고 하면 어떡하지?

그리고 하나의 소설을 읽더라도
학생들이 푹 작품에 젖어 들 기간을 주고
작품에 대한 생각이 숙성하여 표현하고픈 것까지 나오기까지는
늘 어떻게 서둘러도 오래걸렸다.
그렇게 하자니 국어책에 있는 것을 다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시간이 흐르고 전자의 선생님은 학교를 떠났다.

나는 학교에 남아 후자의 선생님과 신입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한다.
2010년, 변화한 우리 학교에서는 학생들도 부모들도 마음이 바쁘다.
내 수업에 대해 뭐라고 소리를 들은 것은 없지만
옆 반 학생들이 했다는 이야기,
옆 반 부모들이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더 마음이 바빠진다.

어려운 것을 마구 가르쳐야 학생들이 배운다고 느낄 것 같다.
진도를 바삐바삐 나가야 학생들이 알차다고 느낄 것 같다.
이 학생들에게 연극을 해보자고 하면 바쁘다고 싫다고 할 것 같다.

그리고 또 어느새,
많은 것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작품의 감상의 숙성을 기다리던 즐거움을 앞선다.
많은 것을 주는 교사가 되면 왠지 내가 유능한 교사가 될 것 같다.
많은 것을 주지 않는 교사라서 미안해질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따라오지 못하는 50%만을 위한 교사였던 것일까?
그들이 없어졌으니 이제 나의 교사 역할은 방향 전환을 해야하는 걸까?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했던 일은, 그들이 아닌 다른 학생을 위해서도 의미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했었으니까.

AND



재작년에 한 학생의 성희롱 피해에 대한 상담을 해주고 그 이후로 절친이 되었는데
그 학생이 또 한명의 '고객'을 데려왔다.

그 학생이 다른 학생의 이야기를 하면서 데려와도 되냐고 했을 때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일도 없는데, 싶어서 부담이 컸는데,
학생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고 나니,
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이것이
학교 다니는 일의 보람을 느끼는 작은 순간들 중 하나다.

더 잘 도와주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도움을 청하고 나눈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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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 님의 말 :
그새끼 개새끼...하는 식으로.
미정 님의 말 :
다음에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욕, 싸움, 신고 등등을 할 수 있게..
미정 님의 말 :
일단은 슬픔을 화로 변화시킬 수 있게 도와주고..
미정 님의 말 :
이건 슬픈일은 아니니까...
뱃속이 환해지는 알약 님의 말 :
응 막 욕해주자고 하긴 했어요
미정 님의 말 :
또 시간이 좀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요.
뱃속이 환해지는 알약 님의 말 :
그 얘기도 했지요
미정 님의 말 :
그런데 슬퍼하는 건 좀 곤란해요.
미정 님의 말 :
세상이 두려워질테니까요.
뱃속이 환해지는 알약 님의 말 :
슬퍼서만 우는 건 아니잖아요
미정 님의 말 :
세상에는 온갖 공격자들이 있는데,
뱃속이 환해지는 알약 님의 말 :
화나고 괴로워서 우는것같았는데.
미정 님의 말 :
실은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안도감을 주고 싶은 거잖아요.
뱃속이 환해지는 알약 님의 말 :

미정 님의 말 :
같이 울거나, 안쓰러운 표정을 짓기 보다는
미정 님의 말 :
토닥토닥 하면서, 여성연대 한 판과
미정 님의 말 :
강인한 여성 선배가 되어 줄 것이 요구되는가....쩝.
뱃속이 환해지는 알약 님의 말 :
그렇군요
뱃속이 환해지는 알약 님의 말 :
'슬픔을 분노로'는 기억해놓고 메모해놓을게요
미정 님의 말 :
분노까지는...ㅎㅎ
미정 님의 말 :
화-자존감에 대한 공격을 당했을 때.
뱃속이 환해지는 알약 님의 말 :
왜 분노도 거쳐야 할 단계 중 하나지
미정 님의 말 :
슬픔-상실했을때
미정 님의 말 :
그것을 구별할 것.
AND

<밀크>

카테고리 없음 2010. 3. 18. 10:46




'마흔'은 늙어감을 실감하는 나이인가보다.
강마에가 강건우(장근석)을 보며 자신의 시대가 저물어감을 느꼈듯,
한 선배교사가 제2의 인생을 꿈꾸며 학교를 박차고 나갔듯,
또 옆에서 마흔을 앞둔 선생님이 늘 한숨짓듯,
그리고 또 옆에 있는 누군가가 늘 피곤함을 호소하듯.

하비 밀크는 마흔에 말했다.
사십이 되도록 해놓은 일이 아무것도 없어. 내가 오십까지 살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그의 옆에서 '리프레시'의 용기를 준 이가 있었다.
지금부터 하면 되잖아. 주변을 바꾸고 새 사람들을 만나봐.
 
살아있으라고,
사는 것답게 살아있으라고
주름이 가득하게 씩 웃던 그의 얼굴이 계속 맴돈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