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선생님’의 교무실 생존기
  여성주의 교사모임 ‘삐삐 롱스타킹’ 운영자 우완 교사
  글·사진 윤성희 기자 miyulain@naver.com

말괄량이 삐삐가 선생님이 된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야자를 늘린다고? 싫어요! 난 재미있는 수업을 준비해야 한다고요. 왜 나만 교무실 설거지 하고 술자리에서 교장선생님을 챙겨야 하죠? 거기 선생님, 딸처럼 여긴다고 여학생들 엉덩이 치지 마세요.” 그러나 20~30대 여교사들의 ‘교무실 생존수칙’은 이를 모두 반대로 하는 것이다. 여성이자 교사인 그리고 비정규직인 ‘여교사’의 생존은 그처럼 어렵다.

4년 전, 첫 부임지가 남자 고등학교로 결정된 후 우완(32) 교사는 ‘공포’에 휩싸였다. 남학생들이 나를 괴롭히면 어쩌나…. 막상 맞닥뜨린 건 다른 종류의 고민이었다. 선배 남교사는 우 교사의 어깨에 손을 얹고 학생들에게 말했다. “선생님 약하시니까 말 잘 들어야 한다.” 1학년 때부터 매로 길들여진 학생들은 그 말대로 ‘남교사가 아닌, 보다 연약하고 신기한 무엇’으로 그를 대했다. 배려와 하대가 뒤섞인 선배 교사들의 태도, 학생들이 폭력에 의해 교단이라는 권력에 굴복하는 법을 배웠다는 섬뜩한 성찰. 고민은 많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무난하게 가자.”였다. 우 교사는 작년 2월 여성주의 교사모임 ‘삐삐 롱스타킹’을 꾸렸다. 여교사의 인권을 말하고 한국의 교육환경을 여성의 시각으로 재구성하고 싶었다. 

 “우리 모임에서는 젊은 여교사를 ‘아가씨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이들에게만 씌워지는 두가지 굴레가 있어요. 하나는 ‘단정·정숙해야 한다.’는 요구예요. 학생들에게 콘돔 사용법을 알려준다 하면 교직사회에서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어요.
또 하나는 최하위 계층이라는 거예요. 젊은, 특히 기간제 여교사들은 맡는 업무나 교실에서 낼 수 있는 목소리의 크기가 달라요. 남교사보다 교실 장악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술자리 가면 관리자(교장, 교감) 선생님 모셔야 하고 춤도 춰야 해요.”

지난 해 큰 논란을 일으킨 ‘남고생들의 여교사 성추행’ 사건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일어난 문제라고 했다. “젊은 여교사들은 이중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어요. 일단 교실 내에서 남학생과의 성별 권력관계에서 밀리죠. 게다가 그 분이 기간제였어요. 학생들도‘재계약을 위해 잘 보여야 하는’ 기간제 교사와 정교사의 권력차이를 알아요.” 그는 이러한 여교사의 현실을 말하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여 교사들, 학교를 ‘까’다
모임에서는  <가르쳐야 할 것과 가르치지 말아야 할 것들>, <교무실에서 살아남기> 등 주제가 있는 토론회를 열었다. 여교사들은 각자의 고민들을 털어놓았다. “어느 날은 학생들이 칠판에 성기 그림이랑 섹스의 순서를 써 놨어요. 그래서 ‘순서가 틀렸어!’ 이러면서 지우고 넘어갔죠. 당황한 모습을 보이기도 싫지만 태연한 척 넘어가면 ‘까진’ 취급을 받을까봐 난처해요.” “화장 안 하고 가면 예의 없다는 취급을 받아요.” “교장선생님이 말썽 핀 아이들 좀 조치하라고 교무실 왔다가 저만 있으니까 ‘아무도 없네’ 하고 갔어요. 난 사람도 아닌가?”

함 께 나눈 이야기들을 모아 새내기 여교사를 위한 가이드북을 만들자는 논의도 했다. 단 이들은 답보다는 ‘문제’를 비틀 것을 권한다. “첫 수업 시간에 ‘자지 말자’고 규칙을 만드는 거 괜찮은가요? 어기면 때려야 하나요?’” “학생들에게 직접 참여하는 발표수업을 제안했더니 하기 싫대요. 애들을 구슬려야 할까요, 때려야 할까요?” 이들은 단순히 채찍과 당근이 아닌, ‘나만의 카리스마’를 찾아내자고 답을 냈다. “아가씨 교사들은 교단에 서기 전에 공포를 느껴요. 애들을 내가 장악해야 하는데 방법이 뭘까? 하고. 그보다는 내가 존중할 만한 교사로 보이려면 어떻게 손을 내밀어야 할까 고민해야죠. 발표수업도 학생들 마음이 동할 만한 좋은 수업을 먼저 보여주면 애들도 좀 더 해볼 만 하다고 느끼지 않겠어요?”

학교폭력·성폭력 관련 좌담회를 갖기도 했다. 지난 2월에는  10대 학생들과 함께 연애와 성에 관한 속내를 나눴다. 하는데 “남자친구가 스킨십 진도를 더 나가려 하는데 소문나면 ‘걸레’로 찍힐까봐 걱정이라고 한 학생이 있었어요. 속이 많이 상했어요. 성 담론은 점점 개방적이 되는데 학교는 여전히 가부장적이라는 .”

우 교사는 교육환경과 여교사의 인권, 그리고 학생의 인권은 맞닿아 있다고 했다. “학교 문화가 군사적이고 가부장적인 부분이 많아요. 학생들을 병사들처럼 사열시켜 애국조회 하고, 어린 여교사들을 최하위층으로 만들죠. 그런 모습들을 극복하는 건 여성주의의 역할인 동시에 학생의 인권과도 연결된 거죠.” 학생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여성주의 동아리나 성평등 교육운동 등을 고민하는 이유다.

고민하는 힘이 학교 바꿀 것
교원 중 80%를 차지하는 여교사들의 고민이 왜 공론화되지 않았을까. “교직이 여성들에게 비교적 여러 가지를 보장하는 편이잖아요. 그러다보니 문제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아요. 두 번째는 이게 내부고발성 이야기들이라는 거죠. 기간제 여교사들에겐 특히 힘들죠.”

모임 도 쉽지 않았다. 홍보는커녕 ‘여성주의 모임을 한다.’고 밝히기조차 어려운 게 학교의 현실이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한층 힘들어진 교육운동 진영에서도 ‘다양한 교육운동, 여교사의 인권’을 말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과 함께 업무도 늘어났다. 참여자는 점점 줄어들었다.
“사실 인터뷰 요청 올 때,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고 있었어요.” 우 교사는 고백했다. 그를 돌려세운 건 사소한 희망이었다. “회원 한 분이 며칠 전에 모이자고 글을 올렸어요. 함께 모임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힘이 되더라고요.” 사소한 희망은 뿌리를 적셨다. “예전에 <일다> 기자 한 분이 그러셨어요. 지금 정권 아래에서 여성주의 언론 한다는 게 쉽진  않지만 계속해야 나중에 기회가 왔을 때 또 크게 성장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저도 한 3년은 버텨 봐야….(웃음) 다른 선생님들도 많이 관심 가져 주시면 좋겠어요.”

지금도 각자 고민하고 있을 후배 여교사들에게 우 교사가 하고픈 말은 무엇일까. “‘1년간 안 때리면서 너무 힘들었는데, 때리고 나니 너무 편하더라.’고 한 선생님이 있었어요.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자신이 하고 있는 실천이 옳은지 고민의 끈을 놓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또 좋은 선배를 만나라, 힘들면 연락해라. 카페 주소 ‘cafe.daum.net/teachingirls’(웃음) 또 가입만 하지 말고 얼굴 좀 보자.(웃음)” ‘교무실의 꽃’은 ‘일등 신부감’의 꽃잎 대신 학교를 바꿀 뿌리를 아래에서부터 뻗고 있었다. 



등록일: 10-04-1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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