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 20회에서 내가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은
어머니의, '우리가 난로가 되어주자'는 대사보다도
아버지의, '미안하다'는 대사였다.

무엇이 미안할까.
(우리와는 다른 너를 받아들이기에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서)
(너의 이야기를 듣고 부정하고픈 마음이 앞선던 것 때문에)
(이런 나 때문에 그동안 더 외로웠을 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서)
(너와 같은 사람들을 그동안 또라이 취급해왔던 내 오만함 때문에)
(앞으로도 나는 너의 아픔을 온전히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에)
등등의 말들을 괄호 안에 넣어본다.

결국은,
(너와 같은 입장이 될 수 없어서) 미안하다는 것 아닐까.

모든 종류의 고난과 아픔은 본인만이 감당해야 할 몫이 있기에,
그것을 온전히 함께 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는 입장이어서,
그래서,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여전히 나는 나, 너는 너일 뿐인 이 生에서,
사랑하는데, 그 사랑하는 사람과 꼭같을 수는 없어서 드는 편안하지 않은 마음, 未安함.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삽시간에 아득하게 멀어진 나와 너 사이의 거리에 대한 절절한 안타까움.

이 편안하지 않은 마음과 안타까움을 고백한 후에야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감싸주고, 그리고 함께 싸우는 과정이 시작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서야 많은 친구들에게 미안해진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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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이 다섯 개 있는 동네

                                           최 정 례

      우리 동네엔 빵집이 다섯 개 있다
      파리바게뜨,엠마
      김창근베이커리,신라당,뚤레쥬르

      파리바게뜨에서는 쿠폰을 주고
      엠마는 간판이 크고
      김창근베이커리는 유통기한
      다 된 빵을 덤으로 준다
      신라당은 오래 돼서
      뚤레쥬르는 친절이 지나쳐서

      그래서
      나는 파리바게뜨에 가고
      나도 모르게 엠마에도 간다
      미장원 냄새가 싫어서 빠르게 지나치면
      김창근베이커리가 나온다
      내가 어렸을 땐
      학교에서 급식으로 옥수수빵을 주었는데
      하면서 신라당을 가고
      무심코 뚤레쥬르도 가게 된다

      밥 먹기 싫어서 빵을 사고
      애들한테도
      간단하게 빵 먹어라 한다

      우리 동네엔 교회가 여섯이다
      형님은 고3 딸 때문에 새벽교회를 다니고
      윤희 엄마는 병들어 복음교회를 가고
      은영이는 성가대 지휘자라서 주말엔 없다
      넌 뭘 믿고 교회에 안 가냐고
      겸손하라고
      목사님 말씀을 들어보라며
      내 귀에 테이프를 꽂아 놓는다

      우리 동네엔 빵집이 다섯
      교회가 여섯 미장원이 일곱이다
      사람들은 뛰듯이 걷고
      누구나 다 파마를 염색을 하고
      상가 입구에선 영생의 전도지를 돌린다
      줄줄이 고기집이 있고
      김밥집이 있고
      두 집 걸러 빵냄새가 나서
      안 살 수가 없다
      그렇다
      살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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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끼니를 때우기 위해 파리바게뜨에 갔는데
아 글쎄 그 동안 파리바게뜨를 얼마나 애용했는지
꽤 많은 빵을 살 수 있을 정도의 포인트가 쌓여있었다.

나는 내가 그 빵집에 그리 자주 가는지 몰랐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집 전철역 앞에도 학교 앞에도 파리바게뜨가 있고 
심지어 얼마 전에는 학교 앞 파리바게뜨 아주머니가 날 알아보고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 인사를 받던 기분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위 시는 얼마 전 시인이 학교에 와서 강연을 했을 때 조각난 모양으로 소개해주었던 시다.

학생들 내일 점심을 위해
또 파리바게뜨에서 80인분을 주문해놓고 나니
'빵집이 다섯 개 있는 동네'라던 이 시가 생각이 나서 검색을 해서 전문을 읽었다.

육신의 배고픔은 빵집으로 채우고
영혼의 배고픔은 교회에서 채우고
배고프지 않느냐며 빵집에서는 쿠폰을 발행하고
교회에서는 전단지를 뿌려가며 사람을 끌어모으고
이렇게
허기를 채우기 위해 도시를 헤매는 사람들이
불쌍하다.




AND





Sunny came home to her favorite room
써니가 집으로 돌아왔어 그녀가 좋아하는 곳으로 말이야
Sunny sat down in the kitchen she opened a book
써니는 부엌에 앉아 연장과 책을 열었어..
And a box of tools Sunny came home with a mission
써니는 사명을 띠고(할일이 있어서) 집으로 왔던거야

She says days go by I'm hypnotized
그녀가 말하길, 하루하루 흘러가고 나는 최면에 걸려
I'm walking on a wire
줄타기를 하고 있어
I close my eyes and fly out of my mind into the fire
난 눈을 감고 내 속에서 나와 불속으로 날아가

Sunny came home with a list of names
써니는 이름이 적힌 목록을 가지고 집으로 왔어
She didn't believe in transcendence
그녀는 초월성을 믿지 않아
It's time for a few small repairs she said
"이제는 시간이 되었어 조금 뜯어 고쳐야 할 시간말야" 라고 그녀는 말했지
Sunny came home with a vengeance
써니는 복수심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던거야

She says days go by I don't know why
그녀가 말하길, 세월은 흘러가고 난 이유를 모르겠어
I'm walking on a wire
왜 줄타기를 하고 있는지
I close my eyes and fly out of my mind into the fire
난 눈을 감고 내 속에서 나와 불속으로 날아가

Get the kids and bring a sweater
아이들을 데려오고 스웨터를 가지고 나와
Dry is good and wind is better count the years,
건조하면 좋아 그리고 바람은 더좋고 살아온 날들을 세어봐
You always knew it strike a matct Go on and do it
당신은 항상 그걸 알고 있었어 성냥을 그어 계속 불을 붙여

Days go by I'm hypnotized I'm walking on a wire
시간은 흘러 난 최면에 빠졌고 줄타기를 하고 있어 눈을 감고
I close my eyes And fly out of my mind into the fire
난 눈을 감고 내 속에서 나와 불속으로 날아가

Light the sky and hold on tight the world is burning down
하늘을 밝히고 놓치지마 세상은 타오르고 있어
She's oyt there on her own and she's alright
그녀는 그녀스스로 일어선거야 그리고 그녀는 괜찮아
Sunny came home Sunny came home...
써니가 집으로 돌아왔어 써니가 집으로 돌아왔어

AND


"감정은
1. 몸의 상태다.
2. 최초의 판단이다.
3. '생존'과 연관된 감각과 판단이다. (좋다 : 살 것 같다 / 나쁘다 : 못 살겠다)
4. 인지되지 못한다."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체는 태어날 때 이미 숙성한 상태인 반면
인지 능력을 관장하는 해마체는 만 3세에 와서야 숙성된다.
인간에게 남는 최초의 기억은 만 3세 이전의 감정적 기억들이고 이것이 인간을 결정한다."

"이해받고 공감받는 경험을 해 본 아이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아이들이 된다.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은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일이다."

"자존감이 높아져야 관용적이 되고 공감할 수 있게 된다."

""***한 당신이 나의 **가 되어주어 나는 **로서 참 행복해요"라고 자주 말해보자."

- 어제 교직원 연수, 감신대 안석모 교수님의 강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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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 판단이 그 사람의 입장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입장에 따라 뒷받침 논거들이 만들어지고는 한다.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 논리로만 가능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전쟁이라는 '생존'이 오고 가는 경험을 한 보수적 노인네들을 '논리'로만 설득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흔히들 이렇게까지만 말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논리로만은 안 되고 그들을 '감동'시켜야 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감동'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감동이 아닌 억지스러움만 남을 수 있다.

감동이 만들어지는 경로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그 중 하나는 상처받은 경험에서 만들어 낸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결론을 역전시킬 때 발생하는 것 같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배웠는데 막상 정글과 같은 사회를 만나고 받았던 심리적 충격을 보상하는 경험,
가족과 주변으로부터 절망하고 포기하며 세운 심리적 방어벽을 깨뜨리는 경험,
이런 경험들이 감동을 만들고 사람을 바꾼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맞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람은 바뀐다는 말이 맞다.

사람의 '마음'은 쉽게 변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변덕스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사람의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부터 각인된 경험이 만들어낸 심리적 습관들이기 때문이다.
이 심리적 습관은 말 그대로 '습관'이어서,
이 습관과 성격이 결국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라 하더라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지금 자신이 하는 판단이 사실은 '(상처로부터 비롯된) 감정'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알게 하는 것은,
인지하기 어려운 '감정'을 '단지 감정'으로 인지하게 하는 훈련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도록 하는 것은 무엇보다 어렵다.

이러한 사람의 성격도 바꾸도록 만드는 것,
이것은 상처의 경험을 역전시키는 새로운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경험은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오기도 하지만,
'공감과 이해'의 여유를 가진 누군가가 주변에서 '의지를 가지고' 돌보아주는 것으로도 가능할 것이다.

"쟤는 심한 잘못을 했으니까 심한 벌을 받아 마땅해요"라고 하는,
경제적이고 이성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싸가지 없게 들리는 말을
학생들은 쉽게 내뱉는다.
그리고 그것을 부채질하는 교사들도 많다.

그러나 그 '벌'은, 실은, 잘못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계도의 과정이라기보다는
'쟤의 심한 잘못'으로부터 비롯된 당한 사람의 심리적 상처를 보상하는 과정에서 요구되고 진행된다.

그렇다면 그 심리적 상처의 보상은, 벌과 분리된, 심리적 상처 치유의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를테면 '사형제'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최근 자주 언급되고 있는
어린이 성추행범의 등장은 많은 사람들의 생존본능과 다양한 감정을 자극하는 센세이셔널한 이슈다.
일단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전문가로부터 물리적, 심리적으로 치유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사건의 간접적인 피해자는 전국민이다.
전국민이 입은 이 심리적 상처(생존의 위기감)는 국가가 책임지고 보상해야 한다.
어린이 성추행범이 등장했던 사회적 맥락을 책임지고 검토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사형'은 피해자들의 심리적 상처를 매우 왜곡된 방식으로 해소하는 방법일 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학교에서 진행되는 많은 벌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벌들이 다른 학생들을 위한 전시 효과를 노리거나,
때로는 학생으로부터 '교사가' 받은 심리적 상처를 보상해주기 위해 진행된다는 점은
반드시, 열심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잘못은 잘못대로 계도받되,
어느 학생의 잘못으로 인해 상처받은 다른 학생이 있다면,
그 상처받은 학생에 대한 돌봄이 필요하다.
이 학생이 자신의 상처를 '남이 벌받는 꼴'을 보며 보상받는다면
'내가 아픈 만큼 남도 아파야 한다'라는 잘못된 결론을 가르치게 되는 것이다.
어느 학생의 잘못으로 인해 상처받은 학급이 있다면,
그 학급의 담임이 학급을 토닥여 주고 잘못의 과정에 대해 성찰해 주어야 한다.
어느 학생의 잘못으로 인해 상처받은 교사가 있다면,
그 교사 스스로 '나도 상처받는 감정을 가진 인간'임을 인정하고 스스로 상처를 삭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괜히 '교권'을 들먹이며 '학생 인권과 교권'이 대립되는 가치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학생을 통제하기 좋아하는 권력 집단들의 왜곡된 프레임에 놀아나는 것이다.

잘못한 학생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변화하는 때는 언제일까?

벌을 받으며, 종종 학생이 변화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변화는 종종 '**하면 ##받으니 **하지 말아야겠군'하는 동물적 학습에 불과하다.
이건 '**'에 대한 진정한 반성은 아니다.
그 학생은 아마도 뒤에서 침을 뱉으며 학교 더러워서 못 다니겠다고 교사들을 욕할 것이다.

그런데 또 벌을 받으며, 학생이 진심으로 반성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사실, 벌의 내용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그 벌을 주는 교사나 부모와의 '우연한 소통의 순간'에 있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는 조용한 성찰의 번뜩이는 순간에 있다.

그렇다면 벌의 내용은 학생, 교사, 부모의 '소통', 그리고 조용한 '반성'에 집중되어야지
다른 행정적이고 전시적인 절차에 집중된다면 우스운 일이다.

"심한 잘못을 했으니까 심한 벌을 받아 마땅해요"라고 외치는 아이들을 보며
'그 잘못 때문에 너희들이 속상했구나'라고 말해주고 그 감정은 감정대로 해소하도록 도와주어야
학생들이 이기적이고 어린애같은 보상게임에서 해방될 수 있다.
이런 과정 없이,
"그래, 걔는 이런 잘못을 해서 이런 벌을 받아 마땅했어. 그렇지?"라고만 말한다면
아이들은 아마도, 훗날, 제 앞가림은 잘하지만 남의 불행 앞에서는 둔감한, 싸이코패스들이 될 것이다.
'남자 친구의 배신으로 살인'이 일어나고,
'여자 친구가 배신해서 강간범'이 되고
'부모가 상처주었으니 나도 부모를 학대'하고
등등등.

그런데 학교는, 이 과정을 모두 다 성찰하여 학생들과 교사들을 배려하기에는 너무나 근대적이다.
그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결국은,
근대적인 학교가
살인하는 아이들을 만들고
자살하는 아이들을 만들고
강간하는 아이들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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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어 본 에니어그램 성격 유형 별 정리 중 가장 깔끔한 버전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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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성격은 번호로 표시되는데, 예를 들어 1번은 ‘완벽’에 집착하는 사람으로 이 유형은 성실해서 잘되면 말 그대로 완벽한 일처리를 자랑하지만, 잘못되면 남의 흠집이나 잡는 완고한 고집쟁이가 된다. 반면 2번은 ‘도움’에 집착해서 사람들을 잘 도와주지만, 자기가 도와준 만큼 상대가 알아주지 않으면 원망을 일삼는다.

3번은 ‘성공’에 집착해서 자신감에 가득 차 목표 추구에 매진하지만, 그러다 보니 거만해지거나 남을 밀어내려는 경쟁의식에 사로잡히기도 쉽다. 4번은 ‘특별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열망’에 집착하는데 그래서 자기를 남들에게 멋지게 표현하는 기술이 좋지만, 남들의 평가에 일희일비하느라 변덕이 팥죽 끓듯 하며 자기보다 더 멋진 사람에 대한 무시무시한 질투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5번은 ‘지식’에 집착해서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는 데 능하지만, 그러다 보니 자기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지적인 오만에 빠지기 쉽고 자기가 모은 것을 남에게 주지 않으려는 못된 심보를 부리기도 한다. 6번은 ‘안전과 신뢰성’에 집착해서 약속이나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지만, 그러다 보니 너무 규범에 얽매이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7번은 ‘쾌락’에 집착하는데 덕분에 온갖 상상력을 발휘해서 재미있는 것들을 찾아내지만, 주의가 산만하고 뭐 하나 진득이 하지 못하고 금방 싫증내버리는 단점도 있다. 8번은 ‘힘’에 집착한다. 그래서 권력을 다루거나 행사하는 일에 능하지만 당연히 독재자가 되기도 쉽다. 마지막 9번은 ‘평형과 평화’에 집착하는데 평화를 위해서 뭐든 많이 참는 편이지만, 수동적이고 적극적인 대처에는 매우 약하다.



2009.9.21 무비위크의 영화 <9>의 평 중 실려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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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사전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영화들 중에서 여성예술가와 관련한 영화들을 골라 추천합니다.


 


언제든지 여성사전시관의 영상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2-3일 전에 홈페이지를 통해서 예약해 주십시오.


 


http://eherstory.mogef.go.kr/commuity/community_03.jsp


 


여성사전시관은 여러분 모두에게 열려있습니다.


 


이외에도 ‘여성예술가’와 관련해서 함께 보고 싶은 영화가 생각나시면 추천해 주십시오.


 


 


 


 


무용가 최승희


 



Choi Seunghee, The Story of a Dancer, 1998, 한국


다큐멘터리, 51분


원종선 감독



 


‘동양의 무희’라 불리며 일제시기에 세계 순회공연을 통해 우리나라 춤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린 무용가 최승희의 다큐멘터리. 보살춤, 칼춤, 부채춤 등의 민속춤을 현대화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춤세계를 선보이는 한편, ‘최승희 무용연구소’를 설립하여 전통춤을 체계화하고 창작에 힘쓴 선구자, 그러나 현대 동아시아 역사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그녀의 삶을 다루고 있다. 1998년 종합유선방송위원회 연말 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당시 아리랑TV 프로듀서로서 이 작품을 연출한 원종선은 일본, 중국, 러시아를 돌아다니며 충실한 현지취재와 인터뷰를 통하여 최승희의 삶을 재구성해냈다.


해방 이후에 월북하여 활동하다가 1966년 공연 ‘거친 파도를 헤쳐’를 끝으로 더 이상 대중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아, 숙청설 등 논란 속에서 확실한 진상이 알려지지 않다가, 2003년도에 북한의 조선중앙TV에 의해 1969년 8월 8일 사망한 것으로 밝혀진(1998년도에 만들어진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사망연도 미상으로 나옴) 최승희는 1911년 출생으로서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세라핀


 


포스터


Seraphine, 2009, 프랑스/벨기에


드라마, 125분


마르탱 프로보스트 감독


욜랭드 모로, 울리히 터커 출연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2508



 


1864년에 태어나 1942년에 삶을 마감한 천재화가 루이 세라핀을 영화화한 작품. 프랑스 북동부의 작은 마을 상리스에서 살았던 그녀는 ‘세라핀 드 상리스’(상리스의 세라핀)라고 불리기도 한다. 앙리 루소와 함께 소박파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가난 속에서 잡역부 일을 하면서 홀로 외롭게 그림을 그렸던 그녀의 치열한 삶을 그려내고 있다. 자연 속에서 안료를 찾아내고 만들어내어 자신만의 독특한 색을 만들어내며,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신의 계시로 받아들이는 그녀의 모습은 본능과 야성을 넘어서서 기이하기까지 하다. 독일의 미술평론가 빌헬름 우데가 자기 집의 가정부로 일하던 그녀를 발견해내면서 그녀의 작품은 주목받기 시작하지만…


 


 


프리다


 


포스터


Frida, 2002, 미국


드라마, 120분


줄리 테이머 감독


셀마 헤이엑, 알프레드 몰리나 출연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6375



멕시코의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의 삶과 사랑과 예술을 다룬 영화. 미국의 미술사학자인 헤이든 헤레라가 프리다의 편지와 작품 등을 재구성해서 쓴 원작 <프리다:프리다 칼로의 자서전>를 기초로, 브로드웨이 연극과 영화, 오페라를 넘나드는 연출가 줄리 테이머 감독이 강렬한 이미지와 음악, 흡인력 있는 스토리로 영화화하였다.


멕시코의 민중벽화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와의 사랑과 숙명적인 관계를 중심축으로, 프리다의 10대부터 세상을 뜨기까지의 일대기를, 사회 관습에 강하게 반발하고 거부하는 당당한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2003년 아카데미상에서 의상상, 분장상, 여우주연상, 미술상 부문 등에 후보로 올랐고, 작곡상과 분장상을 수상했다.


 


 


완령옥



 


 


阮玲玉(Center Stage), 1991, 중국


드라마, 167분


관금붕 감독


장만옥, 양가휘 출연


http://10.asiae.co.kr/Articles/new_view.htm?tsc=06.01.06&a_id=2009051409202827366&pg=


 



중국 무성영화 시대의 유명한 영화배우 완령옥(1910-1935)의 사랑과 삶을 그린 영화. 완령옥의 실제 자료사진, 극화한 완령옥, 완령옥을 연기하는 장만옥, 이 세 개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넘나들면서 완령옥이라는 여성, 16세에 데뷔하여 25세에 자살하기까지 시대를 예민하게 온몸으로 받으며 살았던 여배우의 삶, 그 시대 상황 등을 흥미롭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홍콩의 뉴웨이브 감독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관금붕은 이 영화를 통해서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되었고, 이 작품에서 완령옥을 연기한 장만옥 역시 베를린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디 아워스


 


포스터


The Hours, 2002, 미국


드라마, 114분


스티븐 달드리 감독


메릴 스트립, 줄리안 무어, 니콜 키드먼 출연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1867


 



1998년에 발간되어 퓰리처상을 받은 마이클 커닝햄의 <세월(The Hours)>(생각의나무, 정명진 번역, 2003년)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버지니아울프의 원작 <세월(The Years)>과 <댈러웨이 부인>을 소재로 현대적으로 변주해낸 작품으로, 서로 다른 시대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세 명의 여인이 겪는 6월의 어느 하루를 통해 버지니아울프의 고통과 감성을 관통해 낸다.


1923년 런던 교외에서 살고 있는 버지니아 울프, 1949년 LA에서 살고 있는 중산층 주부 로라 브라운, 1990년대 뉴욕에서 사는 편집인 클라리스 보건, 이 세 사람이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작품을 통해 시대를 넘어서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흥미롭게 진행된다.


특히 최고의 배우들, 니콜 키드먼(버지니아 울프), 줄리안 무어(로라 브라운), 메릴 스트립(클라리사 보건)의 아름다운 연기가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며, 이 작품으로 버지니아 울프를 연기했던 니콜 키드먼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포스터


Fur: An Imaginary Portrait of Diane Arbus, 2006, 미국


드라마, 122분


스티브 세인버그 감독


니콜 키드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티 버렐 출연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5655


 



‘이 영화는 미국 사진 예술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20세기의 위대한 예술가 디앤 아버스(1923-1971)의 숨겨진 이야기다. 디앤을 기리는 이 영화는 그녀의 독특한 예술세계와 내적 고뇌를 표현하고자 인물과 상황을 허구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모피상이었던 아버지 그늘에서 상류층의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던 그녀가 ‘기형인들의 사진가’로 삶을 바꾸어나가는 과정을 비유적으로 그리고 있다.


디앤 아버스의 작품세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묘하게 집중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까미유 끌로델


 


포스터


Camille Claudel, 1988, 프랑스


드라마, 168분


브루노 누이땅 감독


이자벨 아자니, 제라르 드 빠르디유 출연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470


 


천재적인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1864~1943)의 비극적인 삶을 그린 영화. 시인 폴 끌로델의 누이이며 로댕의 제자이고 모델이고 연인이었던 그녀가 예술에 대한 열정과 사랑에 대한 분노와 싸우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처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태어난 여성 예술가가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자신의 예술혼을 펼치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내던지고 피해망상에 시달려 결국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인 비극도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카미유 클로델을 연기한 이자벨 아자니는 카미유의 분신인 듯 열연하여 1989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프랑스의 세자르상에서는 작품상·여우주연상·촬영상·편집상 등 7개 부문을 석권한 작품이다.


 


 


코코샤넬


 


포스터


Coco Before Chanel, 2009, 프랑스


드라마, 110분


앤 폰테인 감독


오드리 토투, 브누아 뽀엘부르드 출연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470


 



세계적인 의상디자이너 가브리엘 코코 샤넬(1883-1971)의 삶과 사랑을 그린 영화. 코코샤넬은 몸을 압박하고 구속하는 갑갑한 옷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킨 혁명적인 디자이너이다. 몸을 조이는 코르셋에서 해방시키고, 땅에 닿는 긴 치마로부터 해방시키고, 남성들만 바지를 입던 시대에 여성을 위해 바지를 만들었다. 캬바레 가수로 시작하여 모자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1차 대전 이후 여성복을 디자인하기 시작하면서, 단순하고 편하고 활동적이고 여성미가 넘치는 샤넬 스타일을 창조해 냈다.


현재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감독이며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칼 라거펠트는 영화 <코코샤넬>에 나오는 의상과 액세서리를 완벽하게 재현해 내어 영화의 품격을 높였고, 프랑스의 사랑받는 여배우 오드리 토투는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과 열정으로 샤넬을 연기해 극찬을 받았다. 2010년 프랑스의 세자르영화제에서 의상상을 받았다.


 


빙 줄리아


 


포스터


Being Julia, 2004, 캐나다


드라마, 103분


이스트반 자보 감독


아네트 베닝, 제레미 아이언스, 마이클 갬본 출연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9553


 



전성기를 구가하는 여성예술가에게 찾아든 중년의 위기를 그린 픽션.


1938년 런던을 배경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40대 중반의 연극배우 줄리아 램버트는 안정적인 결혼생활과 편안한 일상에 무료해지기 시작한다. 이때 열혈 팬임을 자처하며 찾아온 청년에게 매혹당하고 삶의 활기를 되찾게 되지만…


나이 먹고 주름 잡히고 뱃살이 나오면서 찾아드는 중년의 무력감을 여배우 줄리아가 받아넘기면서 예술가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흥미로운 영화.


 


여배우들


 


포스터


The Actresses, 2009, 한국


드라마, 104분


이재용 감독


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 출연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4563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여배우들의 잡담으로 가득 찬, 토크쇼 형식의 영화. 크리스마스 이브에 패션지 화보촬영을 위해 20대부터 60대까지 각 세대를 대표하는 여섯 명의 배우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는 설정부터 시작된다. 홀로 스포트라이트 받는 것에 익숙한 최고의 여배우들은 의상 선택부터 소품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신경전을 벌이게 되면서 자신들의 캐릭터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촬영소품인 보석이 오지 않아 기다리다가 술판을 벌이게 되고, 술기운을 빌어 자신들의 속내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


 


포스터


Searching for Debra Winger, 2002, 미국


다큐멘터리, 97분


로잔나 아퀘트 감독


데브라 윙거, 로잔나 아퀘트, 패트리시아 아퀘트,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즈, 우피 골드버그, 엠마누엘 베아르, 다이안 레인, 홀리 헌터, 샤론 스톤, 기네스 펠트로, 맥라이언, 제인 폰다 등 출연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0300


 



이재용 감독의 <여배우들>의 원조격인 영화. <여배우들>은 설정을 해놓고 상황을 만들어나간 일종의 드라마이지만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는 다큐멘터리이다.


헐리웃 최고의 여배우들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사생활, 여배우로서의 시련과 성공, 나이 듦에 대한 생각들을 숨김없이 나눈다. 감독인 로잔나 아퀘트 자신이 여배우로서, 동료로서 얘기를 잘 끌어내고 있다. 여배우들을 따로 만나서 인터뷰 하거나 저녁식사에 초대해서 여러 명과 함께 얘기하거나 칸느 영화제로 찾아가는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서 진솔하고 경쾌한 인터뷰를 시도한다.

AND



1년 넘게 재미붙여 오고 있는 발레.

처음엔 부르주아들의 레저인 것 같아서 꺼려졌는데
직접 가서 보니, 평화로운 음악 속에 평화롭게 팔과 다리를 죽죽 펴는 아줌마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첫눈에 반해버렸다.

처음 며칠은 몸치인 내가 싫어지기도 하고 뚱뚱한 내 모습이 전신 거울에 비춰지는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는데
온몸이 이완되는 시원한 느낌, 조금씩 향상되는 나의 동작들을 느끼며 점점,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즐거운 일은 발레!라고 외칠 수 있게 되었다.

이놈의 ㅈㅇㄱ 정책, 그리고 ㅇㅁㅂ과 ㄱㅈㅌ 때문에 작년만큼 열심히 가지는 못하지만
몸은 비록 연습실과 멀리 있어도 마음은, 오매불망 일편단심 오직 발레다.
오늘은 꼭 가야지, 마음먹고 옷을 챙겨 들고 나갔다가 그냥 돌아오는 날은 '마냥 섭섭'하다.

내 발레 역사 최대의 위기는
작년에 교복 치마를 두 번이나 빼앗으며 '생활지도부 교사'와 '교복 수선 학생'으로 만났던  ㄱㅅㅎ양을,
연습실에서 발레복을 입고 마주쳤던 순간. 
우리의 '교복 수선 학생'은 발레로 진로를 결정하기로 마음먹고 연습실에 다니기 시작하신 것.
나의 뚱뚱한 속살들이 여지없이 드러난 모습을, 동료 교사에게도 부끄러울 모습을,
내가 벌 주던 학생에게 보이게 되었던 그 절대 절명의 위기의 순간에는,
정말 진지하게 발레를 그만둘 것을 고민했지만,
뭐, 어때, 생각하며, 그냥, 다녔다.

나는, 분명 나에게 앙심을 품고 있을 ㄱㅅㅎ 양이
'** 선생 뚱뚱하면서 꼴에 발레 다니더라'고 학교에 소문내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소문이 나 몰래 도는지 안 도는지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찌되었든 그런 소문은 내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이렇게 내 발레 역사 최대의 위기도 넘어가는가 싶었다.

오늘은 운동이 다 끝나고 서로 다리를 '밀어주는'(사실은 찢어주는) 몸풀기 순서에서
서로 알아서 피해오던 이 ㄱㅅㅎ 양이 웬일인지 스스로 다가오더니 나의 다리를 밀게 되었는데,
아, 어찌나 봐주지도 않고 세게 미시는지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올 정도였지만,
비명을 지르는데도 지그시 미소를 지으며 그저 꾹꾹 눌러댈 뿐인 모습을 보며,
'너 나한테 당했던 거 복수하는거지!' 했는데도 '아니에요'라고 배시시 웃으며 계속 눌러대는 발을 느끼며,
난, 왠지 내 잘못에 대한 벌을 받는 것 같은 이 상황에 대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다리가 찢어지는 고통을 감내하는 심정이 되어버렸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겠다.

아, 이걸로 학생 인권을 침해해 왔던 내 과거를 다 씻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발 이제 생활지도부 그만 하고 싶다.



AND




"I'm a pessimist because of intelligence , but an optimist because of will."
그람시가 했다는 말이다.

대학 때 어느 선배가 책을 선물하며 속표지에 이렇게 썼다.
"현실이 절망적일 때 실천으로 극복하자!"
나는 이걸 보고 풋, 하고 좀 웃었는데, 그건, '아니 절망적인데 어떻게 실천한담',하는 냉소였던 것 같다. 만날 무턱대고 '실천' '실천' 하고 부르짖으면서 무리한 실천에 대한 결의를 강요하는 선배들에 대한 불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대고, '아냐 이 말 굉장히 훌륭한 말이야'라고 엄숙하게 말하는 선배가 있었다. 그때는 그게 왜 훌륭한 말인지는 잘 이해하지 못했고, 그 엄숙함만 기억에 남았다.

재작년 교사 아카데미에서 홍세화 선생님이 강연을 마무리하며 교사들에게 대한 당부로 다시 저 말을 남겼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도 대강 요약해보자면 이랬다.
"현실이 얼마나 어두운 것인지 선생님들이 똑똑히 아셔야 합니다. 이건 우리의 작은 실천으로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렇지만 선생님들이 해낼 수 있는 일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비록 현실은 어둡더라도, 우리가 이 현실을 바꾸어 낼 수 있다는 용기를 잃지 마셨으면 합니다."

그날도 감동적이었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이 말이 진리다.

'이성'이 부족하셔서 부당함이 부당함인 줄 모르는 분들을 주변에서 볼 때마다 안타깝기도 하면서, 화도 난다. 모르는 것도 때로는 죄다. 우리를 둘러싼 현실의 모순을 보지 못하는 바보는 되지 말아야 한다. '이성'을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하는 바보는 결국 이 사회의 잘못된 방향을 묵과하게 되고, 나아가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의지'를 작동시키는 건 사실 더 어려운 문제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모순된 현실을 알면서 이에 대해 절망하기만 하는 사람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을 오염시킨다. 의지를 잃어버린 사람이 갈 길은 정해져 있다. 자살하거나, 아니면 혼자만 살아남기 위해 애쓰거나. 모순된 현실을 알면서도 개혁의 의지를 잃은 사람은, 자기 혼자 살아남기 위해 주변의 동료들을 짓밟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으로, 아주 쉽게 변한다.

현실이 거지같다는 것을 몰라서도 안 되지만 현실이 거지같다는 것을 알고 그 핑계로 망가지는 사람들도 문제다. 나는 이 거지같은 세계에서 끝까지 나의 삶의 위엄을 지킬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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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들 한다. 보통 '자존감'을 설명하면서 쓰이는 말이다. 그리고 또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다고 한다. 

세상에 정말 많이 돌아다니는 말인데, 나에게는 항상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의 실체를 잘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나 자신을 애지중지 여기기는 하지만 자존감이 높아지지는 않는 것 같았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왠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또 그런데 한편으로, 자신에 대한 잘난 소리를 엄청나게 지껄이는, 그래서 자존감이 엄청 높고 자기 자신을 정말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들이 남에 대한 사랑은 할 줄 모르는 모습들을 많이 보면서, 저 사람들도 내가 바라는 모습과는 좀 다른데, 싶었었다.

그런데 이제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성숙한 자아존중감을 가진 사람)과 억지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은 다르다는 것을.

자기 자신을 잘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진정 존중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의 자아를 남들 앞에서 훼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 종종 거짓말을 하곤 한다.

자기 자신을 잘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욕망과 감정에 대해 잘 알고 이를 건강하고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렇지만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을 위선/위악으로 포장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자기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왜곡된 방식으로 표출한다.

자기 자신을 잘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는 일에 그저 투명하고, 자신있고, 자연스럽다. 주변에서 이를 보기에 불쾌해지지 않는다. 이를 칭찬받는 일에도 자연스럽고, 적절히 감사해하고 적절히 겸손해 한다.
그렇지만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의 장점이 자신의 전부다. 이것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이들의 최대 위기. 기를 써서 장점과 강점을 드러내는 데에 조급해 해서 이를 지켜보는 일이 불편해진다. 이들은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사람의 종이 되고,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이들의 적이다. 인정받지 못하면 상처받거나, 이 일이 증오와 분노의 계기가 된다.

지난 날,
내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겨우) 나르시시스트(에 지나지 않는 이)들 여럿을 선망하고, 사랑해왔던 것을 
(그래서 결국은 매번 상처받았음을) 이제야 깨닫고 무릎을 치는 순간이다. 
한 마디로 번지수를 잘못 찾아갔던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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