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분류 전체보기 | 180 ARTICLE FOUND

  1. 2010.01.11 <걸어도 걸어도>
  2. 2009.12.24 뱃속이 환해지는 알약 1
  3. 2009.12.23 과일나무
  4. 2009.12.17 그녀
  5. 2009.12.07 바람이 분다
  6. 2009.12.07 '선발'
  7. 2009.11.30 2년 4
  8. 2009.11.30 홀연히 늙어버린 줄리 델피
  9. 2009.11.27 어제 연수에서의 메모
  10. 2009.11.24 철학을 읽는 시간 2





언젠가 읽은 문학 교과서의 설명에,
단편 소설은 마치 과일을 반으로 잘라 그 단면을 통해 과일의 본질을 드러내려 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었다.
인물들의 대화도 가정과 마을을 그려낸 화면도 무척이나 밀도가 높은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그 말이 떠올랐다.
이런, 단편 소설 같은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적막해진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그의 양아들 간의 어리숙하고 빗나가는 의사소통 속에서,
할머니와 딸, 그리고 새로 들어온 며느리들의,
적절히 중재하며 적절하게 무시하고 또 적절하게 욕망을 드러내는 영리한 의사표현들이
대조적으로 눈에 띄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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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 삼키면 속이 환해지는 알약'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어제 문득 저 문구가 떠올랐었는데,
다시 찾아 읽어보니 시기적으로도 적절한 시로구나.

다시 읽어보니 '통증이 찾아오고 통증은 빛 같다'는 말이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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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걸어오는 밤

허수경

저 달이 걸어오는 밤이 있다
달은 아스피린 같다
꿀꺽 삼키면 속이 다 환해질 것 같다

내 속이 전구 알이 달린
크리스마스 무렵의 전나무같이 환해지고
그 전나무 밑에는
암소 한 마리

나는 암소를 이끌고 해변으로 간다
그 해변에 전구를 단 전나무처럼 앉아
다시 달을 바라보면

오 오, 달은 내 속에 든 통증을 다 삼키고
저 혼자 붉어져 있는데. 통증도 없이 살 수는 없잖아,
다시 그 달을 꿀꺽 삼키면
암소는 달과 함께 내 속으로 들어간다

온 세상을 다 먹일 젖을 생산할 것처럼
통증이 오고 통증은 빛 같다 그 빛은 아스피린 가루 같다
이렇게 기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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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나무

카테고리 없음 2009. 12. 23. 10:18

수업시간에 학생이 쓴 시

사과나무

김**

사과를 보았다. 노란 불빛 아래에 빨갛게 빛나던 사과를 집에 오는 길에 보았다. 빨간 사과는 어릴 때 먹었던 그 사과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할머니와 엄마는 항상 사과 씨를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다. 왜냐고 되물으면 사과 씨를 먹으면 뱃 속에서 사과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나 나는 입 안에서 사과가 나올 거라고 하셨다. 어느 날, 나는 사과를 먹다가 사과 씨를 먹게 되었다. 순간 사과 나무가 자라면 어떡하지 걱정했지만 그 후 아무 일도 없었다.
어릴 때 먹었던 사과는 두려움의 사과였다. 뱃 속에서 사과 나무가 자라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지금 먹는 사과는 시고, 귀찮을 뿐이다. 어쩌면 이미 내 몸 속에 사과 나무가 자라 꽉 막고 있어 이제는 사과를 먹어도 별 느낌이 안 드는지도 모르겠다.


위 시를 읽고 옆 친구가 쓴 감상문

나는 사과씨를 먹으면 뱃 속에서 사과 나무가 자란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예전에 먹던 사과나 지금 먹는 사과나 같은 사과인 것 같다. 대신 나는 감 씨를 반으로 쪼개면 나오는 흰색의 숟가락 같은 것을 먹어본 적은 있다. 어릴 때 그 숟가락을 먹으면서 나도 뱃속에서 감나무가 자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과는 맛있고 감은 별로 맛이 없는건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맨 마지막 문장이 특히 좋았던 것 같다.

위 시와 감상문을 읽고 떠오른 나의 기억

어릴 때 수박을 먹다 수박씨를 잘못 삼키면 몸 속에서 수박이 자랄 거라고 놀리던 아빠는
내가 남들보다 빨리 가슴이 봉긋해지기 시작하자
수박씨를 많이 먹어서 그렇다고 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얼마나 화가 났었는지
입을 내밀고 얼굴이 빨개져서 밥을 꾸역꾸역 먹다 방에 들어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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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카테고리 없음 2009. 12. 17. 08:32


그녀가 나와 달라서 슬펐던 하루

그녀가 나와 같아지지 않아서
화가 나고, 밉고, 혼내주고 싶고, 가르치고 싶고, 욕하고 싶고,
그래서 이런 내가 괴롭고
결국은 우리는 같지 않음을 뼈아프게 깨닫고
또 깨닫고
그러다가도 다시 화가 나서, 떼쓰고 싶고,
결국엔 서로 다른 존재임에 슬퍼지고
슬퍼지고
외로워지고
이번엔 그녀가 불쌍해지고
내가 미안해지고
다시 나도 불쌍해지고

이렇게
가슴 속이 우르르 쾅쾅 했던 날
하룻밤이 지나고 일어나서
어제 그 우르르 쾅쾅이 뭐였지 떠올리다가
다시 그냥 슬퍼진
그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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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의 '바람이 분다'가 듣고 싶어서 검색하다가
이런 영상이 있는 걸 처음 봤다.

'여자, 정혜'는 보고나서 별로라고 생각했던 영화인데,
이 영상을 보고 나니 다시 보고 싶어진다.

한기가 서려 있는 그녀의 메마른 일상,
구두 가게에서, 주춤주춤하면서도 날 선 목소리로 '사람인데,'라고 하던 목소리,
머뭇거리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남자에게 말을 건네는,

그 당시에는 '어린 시절의 성폭력' 때문에 저 여자가 저렇게 살고 있다,고 영화가 말하는 것 같아 싫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혜의 일상이 으스스할 정도로 메마른 것이,
그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겠다.

정혜는 그냥 살아나가는 거고,
일상은 원래 그런 거고,
살아나가다가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상처들이 있는 거고,
그래서 그걸 해결해보고자 뭔가를 해보기도 하는 거고,
그냥 그렇게 살아나가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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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

카테고리 없음 2009. 12. 7.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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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카테고리 없음 2009. 11. 30. 23:47

벌써 2년이 지났다.

아까는 혼자 가만히 이렇게 명명해 보았다. - '가부장 역할을 하던 자의 죽음'.
처음에는 '아빠'라는 정겨운 명칭이 갑자기 생급스럽게 느껴져서 떠올랐던 말인데,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그에게 가부장 노릇이 얼마나 버거운 것이었을지. 그 가면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아빠' 역할과 '딸' 역할로 만난 우리는, 얼마나 이상한 연극을 하다가 헤어진 것인지.
생에서 우리가 얼떨결에 맡게 되는 갖가지 역할들, 쓰고 사는 여러가지 가면들,
우리는 상대방이 그 역할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고 도리질을 해대며 그를 증오하지만,
우리 역시 연극과 같은 인생에서 주어진 역할을 해내느라
때로는 맡은 역할을 증오하고 때로는 그 가면을 보호하는 애처로운 인생군상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빠가 해내었던 여러가지 아빠노릇을 떠올리며 조금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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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과 지천명의 나이에도 늙지 않는 여배우들이 즐비한 이 때,
그들에 비해 너무 일찍, 홀연히, 그리고 당당하게 늙은 얼굴로 나타난 줄리 델피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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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생얼’ 완성한 줄리 델피


김혜리의 카페 뤼미에르 /

<카운테스>는 드라큘라의 여성판이라 불리는 ‘피의 백작부인’ 에르제베트 바토리(1560~1614)의 일대기다. 에르제베트는 왕에게 돈을 빌려줄 만큼 재력 있고, 강력한 군사까지 손에 쥔 당대의 여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랑의 독이 강한 그를 상하게 만든다. 연하의 귀족 청년 이스트반 투르조에게 실연당한 에르제베트는 나이 때문에 버림받았다고 여기고 괴로워하다가 숫처녀의 피를 영약 삼아 청춘을 되찾으려 한다. 결국 그는 무려 600명의 아가씨를 연쇄살인한 혐의로 고발되었고, 종신토록 감금되는 형을 받았다.

<카운테스>는 에르제베트가 동맥을 물어뜯어 자살했을 거라고 상상한다. 이 잔인하고 불행한 여성을 연기한 배우는 프랑스의 줄리 델피다. 그는 <카운테스>의 감독이기도 하다. 상영시간이 다한 후 이야기보다 오래 마음에 달라붙는 것은 줄리 델피의 훌쩍 나이 든 모습이다. 짐 자무시 감독의 <브로큰 플라워>(2005)에서 중년의 기미를 드러냈던 델피는 <카운테스>에서 청춘의 상실에 그악스럽게 저항하는 인물을 연기함으로써 아예 외모의 변화를 관객의 정면에 들이댄다. 열네 살에 장뤼크 고다르에게 캐스팅된 이래 줄곧 ‘예술영화의 요정’으로 이미지를 새겨온 줄리 델피라, 퇴적된 세월의 흔적이 더욱 감개를 부른다. 14년 전 <비포 선라이즈>에서 제시(이선 호크)는 셀린(줄리 델피)에게 말했다. “너는 보티첼리가 그린 천사처럼 아름다워.” 도자기처럼 맑은 피부와 햇빛을 반사하며 작은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머리칼, 무지개 너머를 바라보는 눈동자와 노래하듯 생각을 쏟아내는 다홍색 입술. 20대 중반의 델피는 이선 호크의 표현 그대로였다. 올해 마흔이 된 델피의 얼굴에서 청춘의 윤기와 막연한 희망의 홍조는 씻겨나갔다. 특유의 예리함과 고집스러움이 오롯이 남아 단단하고 완고한 얼굴이 되었다. <카운테스>에서 델피의 깊은 쌍꺼풀은 삶의 피로를 담은 웅덩이가 되었고 피부는 포르말린에 담긴 시체처럼 냉기를 발산한다. 그리하여 고독하고 냉혹한 중년 여인의 가면을 완성한다.

바토리 백작부인은 젊은 연인과 밀회를 나눈 직후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무심코 자신의 메마르고 주름진 손을 바라본다. 그리고 흉측한 두꺼비라도 본 것처럼 진저리치며 황급히 장갑을 낀다. 순간, 나는 퍽 거칠어 보이는 그 손이 천신만고 끝에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하고 음악을 작곡하고 제작비를 끌어들였다는 사실을 불가피하게 떠올렸다. <카운테스>는 노화를 향한 인간의 혐오, 특히 여성의 공포를 극단까지 그린 영화다. 그러나 그 너머에는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육체를 적극적인 표현의 도구로 활용하고 노련한 정신과 경력을 무기삼아 영화와 공생하는, 또 하나의 길을 뚫은 여배우가 오연히 서 있다. 김혜리 <씨네 21> 편집위원

한겨레 200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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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의 노래  -  운수좋은날 (가사에 소설 내용이 들어있음 - 여러 가지로 응용 가능할 것 같음)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발표 하기 (학기초, 시험 후, 학기 말 등 자투리 시간에 해볼만함)

문학 작품에 대한 이미지 사전 만들기 (수행평가로 가능)

벌이었다 / 벌이였다 ('이다 - 이어요/이에요' 가르칠 때 예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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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철학은 다만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과연 무엇이 참으로 불안의 대상이며 공포의 대상인가?

- 에픽테토스는 노예의 신분으로 태어나 불구의 몸으로도 자유로운 정신의 철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유로운 나라의 시민으로 태어나 스스로 육체의 노예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호모에티쿠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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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간디를 가르치고 철학 수업을 준비하며 오랜만에 생각했다.
그래도 읽고 쓰며 가르치는 직업을 가져서 다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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