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읽은 문학 교과서의 설명에,
단편 소설은 마치 과일을 반으로 잘라 그 단면을 통해 과일의 본질을 드러내려 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었다.
인물들의 대화도 가정과 마을을 그려낸 화면도 무척이나 밀도가 높은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그 말이 떠올랐다.
이런, 단편 소설 같은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적막해진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그의 양아들 간의 어리숙하고 빗나가는 의사소통 속에서,
할머니와 딸, 그리고 새로 들어온 며느리들의,
적절히 중재하며 적절하게 무시하고 또 적절하게 욕망을 드러내는 영리한 의사표현들이
대조적으로 눈에 띄는 영화다.
사과를 보았다. 노란 불빛 아래에 빨갛게 빛나던 사과를 집에 오는 길에 보았다. 빨간 사과는 어릴 때 먹었던 그 사과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할머니와 엄마는 항상 사과 씨를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다. 왜냐고 되물으면 사과 씨를 먹으면 뱃 속에서 사과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나 나는 입 안에서 사과가 나올 거라고 하셨다. 어느 날, 나는 사과를 먹다가 사과 씨를 먹게 되었다. 순간 사과 나무가 자라면 어떡하지 걱정했지만 그 후 아무 일도 없었다.
어릴 때 먹었던 사과는 두려움의 사과였다. 뱃 속에서 사과 나무가 자라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지금 먹는 사과는 시고, 귀찮을 뿐이다. 어쩌면 이미 내 몸 속에 사과 나무가 자라 꽉 막고 있어 이제는 사과를 먹어도 별 느낌이 안 드는지도 모르겠다.
위 시를 읽고 옆 친구가 쓴 감상문
나는 사과씨를 먹으면 뱃 속에서 사과 나무가 자란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예전에 먹던 사과나 지금 먹는 사과나 같은 사과인 것 같다. 대신 나는 감 씨를 반으로 쪼개면 나오는 흰색의 숟가락 같은 것을 먹어본 적은 있다. 어릴 때 그 숟가락을 먹으면서 나도 뱃속에서 감나무가 자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과는 맛있고 감은 별로 맛이 없는건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맨 마지막 문장이 특히 좋았던 것 같다.
위 시와 감상문을 읽고 떠오른 나의 기억
어릴 때 수박을 먹다 수박씨를 잘못 삼키면 몸 속에서 수박이 자랄 거라고 놀리던 아빠는
내가 남들보다 빨리 가슴이 봉긋해지기 시작하자
수박씨를 많이 먹어서 그렇다고 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얼마나 화가 났었는지
입을 내밀고 얼굴이 빨개져서 밥을 꾸역꾸역 먹다 방에 들어왔었다.
그녀가 나와 같아지지 않아서
화가 나고, 밉고, 혼내주고 싶고, 가르치고 싶고, 욕하고 싶고,
그래서 이런 내가 괴롭고
결국은 우리는 같지 않음을 뼈아프게 깨닫고
또 깨닫고
그러다가도 다시 화가 나서, 떼쓰고 싶고,
결국엔 서로 다른 존재임에 슬퍼지고
슬퍼지고
외로워지고
이번엔 그녀가 불쌍해지고
내가 미안해지고
다시 나도 불쌍해지고
이렇게
가슴 속이 우르르 쾅쾅 했던 날
하룻밤이 지나고 일어나서
어제 그 우르르 쾅쾅이 뭐였지 떠올리다가
다시 그냥 슬퍼진
그런 날.
일요일 밤, 기말고사 시험문제를 내느라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문제는 안 내고 여기저기 웹 서핑 하다가, 이리로 왔네요.
내일은 학교에서 특별전형 학생들에 대한 면접이 있습니다.(자사고는 일반전형은 추첨이지만 여러 사회적 배려자들이 오는 특별전형은 면접을 통해 선발합니다)
쌤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일일지도 모르지만, 전 이제 학생 '선발'이라는 절차를 처음 치르는 초짜(?)라서 그런지, '어떻게 학생을 '고를' 수가 있지?' 하는 생각이 들어 무척 마음이 좋지 않네요. 우리에게 주어진 학생들을 그저 기르던 입장에서, 학생을 '고르는' 입장이 되니 참 기분이 이상해요.
저는 면접에서 그저 '복도 감독'을 하라는 역할을 맡았지만, 며칠 전 있었던 면접관 회의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네요. 회의 전에 목사님이 기도를 해 주시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훌륭한 학생들'로 뽑을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십사,하고 기도하셨다고요. 마음이 무너집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훌륭하지 않은 학생들'이 있다면 대체 누구일까요?
사회적 배려자를 뽑는 특별 전형에, **고는 다른 학교보다 많은 학생들이 지원을 했습니다. 특별 전형 경쟁률이 다른 학교보다 높아요. 이 학생들이 기독교 학교인 **고를, 다른 학교보다 더 '배려'해주는 곳일거라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이런 **고에서, 면접관들은 제발 '될성부른 떡잎'들을 잘 골라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네요. 마음이 아픕니다.
앞으로 이런 일들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고 상황은 더 나빠지겠지요. 일 년 후의 저는 이런 일 따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되어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두렵습니다.
아까는 혼자 가만히 이렇게 명명해 보았다. - '가부장 역할을 하던 자의 죽음'.
처음에는 '아빠'라는 정겨운 명칭이 갑자기 생급스럽게 느껴져서 떠올랐던 말인데,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그에게 가부장 노릇이 얼마나 버거운 것이었을지. 그 가면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아빠' 역할과 '딸' 역할로 만난 우리는, 얼마나 이상한 연극을 하다가 헤어진 것인지.
생에서 우리가 얼떨결에 맡게 되는 갖가지 역할들, 쓰고 사는 여러가지 가면들,
우리는 상대방이 그 역할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고 도리질을 해대며 그를 증오하지만,
우리 역시 연극과 같은 인생에서 주어진 역할을 해내느라
때로는 맡은 역할을 증오하고 때로는 그 가면을 보호하는 애처로운 인생군상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빠가 해내었던 여러가지 아빠노릇을 떠올리며 조금 울었다.
엄마를 ‘노인’이라 부르는 아저씨가 이야기하는 소설 <눈길>. 그는 반복적으로 자신은 엄마에게 빚진 것이 없노라 되뇐다. 마치 빚쟁이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처럼 강박적으로. 주벽이 심한 형 때문에 집안이 망한 뒤로 엄마는 ‘낳아 기르는 사람의 몫을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제 앞가림을 하느라 ‘노인’을 돌보지 못했고, 피차일반, 서로 그렇게 주고받은 것 없이 살아온 처지에 새삼스레, 그가 좀 더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이유만으로, 엄마에게 무엇을 더 해주어야 하는 거냐고, 그는 따져묻고 있다.
아빠에 대한 감정을 복기하고, 그래서 설명해낼 수 있게 하기 위해 한 달을 보낸 것 같다. 슬프다 - 불쌍하다 - 힘들었다 - 그래서 미웠다 - 등등의 감정을 거치면서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내가 직면하게 된 아빠에 대한 감정은 바로 ‘무능함에 대한 증오’였다. 사실 그것이 가장 최근의 감정이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일 년 간은 거의 기억해내지 못하고 살아왔다.
<눈길>은 위대한 모성을 말하는 소설이 아니다. 가난한 부모를 증오하며 고달프고 외롭게 살아왔던 아들이, 지난 세월을 모두 용서하게 되던 어느 날 밤에 대한 이야기다. 아들이 엄마와 옛 집에서 마지막 밥상을 마주하던 그 날 밤 이후, 아들은 K시로 되돌아와 어떤 일을 가장 먼저 했을까?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이제부터 혼자 알아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간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조금 흥분했을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생활비를 보내주려는 계획도 처음부터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눈비를 뚫고 새벽 우유 배달을 나갔다가 학교에 지각하는 날이 있었을 것이고, 등록금을 대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대학 진학을 미루었을지도 모르고, 휴학에 휴학을 거듭하다가 대학을 미처 졸업하지 못한 채 군대에 끌려갔다 온 후 즈음에는, 아마 그도 지쳐있었을 것이다. 군에서 휴가를 나와 잠시 들르곤 하던 고향에서 만나는 집안 살림은 늘 그대로였을 것이고, 밑이 빠진 항아리 같은 자신의 삶에 물을 부어 꾸려가는 일이 지긋지긋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늙어가기만 하는 엄마를 보면서, ‘나한테 해준 거라곤 하나도 없는 엄마, 나도 엄마를 위해 뭔가를 해 줄 필요가 없어’라는 생각이 생겨나기 시작한 건 아마도 이때쯤이 아니었을까?
마지막 몇 년 간, 그 무능함에 대한 증오심은 점점 커졌다. 그것은 내 삶의 모든 모순의 가장 근원적인 발발지였다. 그가 없으면 모든 일을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것은 내 가장 공식적인 변명이었다. 그 때문에 무척 괴로웠지만 때로는 그것이 있어 아늑했다. 내 뜻대로 살지 못해도, 나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내 자신에게 끄덕여줄 수 있는 곳이었다.
<눈길>의 주인공도 어쩔 수 없었다고 끄덕이며 ‘빚진 게 없다’고 되뇌지만 그건 엄마를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고달팠던 자신의 젊은 날에 대한 분노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므로 그날 밤 그가 화해하는 것은 엄마뿐이 아니다. 엄마는 비록 가난했지만, 최소한 삶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이해하는 순간, 자신을 힘들게 했던 나날들에 대해 분노하며 감아쥐었던 주먹에서도 스르르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나는 아빠의 칠순 잔치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정말로 늙어버리고 나면 그 때엔 차갑게나마 자식의 도리를 다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난, <눈길>의 주인공과는 달리, 빚진 게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 아저씨보다는 그래도 한 걸음 나간 상태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누렸던 그 화해의 하룻밤을 나는 가지지 못했다.
<카운테스>는 드라큘라의 여성판이라 불리는 ‘피의 백작부인’ 에르제베트 바토리(1560~1614)의 일대기다. 에르제베트는 왕에게 돈을 빌려줄 만큼 재력 있고, 강력한 군사까지 손에 쥔 당대의 여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랑의 독이 강한 그를 상하게 만든다. 연하의 귀족 청년 이스트반 투르조에게 실연당한 에르제베트는 나이 때문에 버림받았다고 여기고 괴로워하다가 숫처녀의 피를 영약 삼아 청춘을 되찾으려 한다. 결국 그는 무려 600명의 아가씨를 연쇄살인한 혐의로 고발되었고, 종신토록 감금되는 형을 받았다.
<카운테스>는 에르제베트가 동맥을 물어뜯어 자살했을 거라고 상상한다. 이 잔인하고 불행한 여성을 연기한 배우는 프랑스의 줄리 델피다. 그는 <카운테스>의 감독이기도 하다. 상영시간이 다한 후 이야기보다 오래 마음에 달라붙는 것은 줄리 델피의 훌쩍 나이 든 모습이다. 짐 자무시 감독의 <브로큰 플라워>(2005)에서 중년의 기미를 드러냈던 델피는 <카운테스>에서 청춘의 상실에 그악스럽게 저항하는 인물을 연기함으로써 아예 외모의 변화를 관객의 정면에 들이댄다. 열네 살에 장뤼크 고다르에게 캐스팅된 이래 줄곧 ‘예술영화의 요정’으로 이미지를 새겨온 줄리 델피라, 퇴적된 세월의 흔적이 더욱 감개를 부른다. 14년 전 <비포 선라이즈>에서 제시(이선 호크)는 셀린(줄리 델피)에게 말했다. “너는 보티첼리가 그린 천사처럼 아름다워.” 도자기처럼 맑은 피부와 햇빛을 반사하며 작은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머리칼, 무지개 너머를 바라보는 눈동자와 노래하듯 생각을 쏟아내는 다홍색 입술. 20대 중반의 델피는 이선 호크의 표현 그대로였다. 올해 마흔이 된 델피의 얼굴에서 청춘의 윤기와 막연한 희망의 홍조는 씻겨나갔다. 특유의 예리함과 고집스러움이 오롯이 남아 단단하고 완고한 얼굴이 되었다. <카운테스>에서 델피의 깊은 쌍꺼풀은 삶의 피로를 담은 웅덩이가 되었고 피부는 포르말린에 담긴 시체처럼 냉기를 발산한다. 그리하여 고독하고 냉혹한 중년 여인의 가면을 완성한다.
바토리 백작부인은 젊은 연인과 밀회를 나눈 직후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무심코 자신의 메마르고 주름진 손을 바라본다. 그리고 흉측한 두꺼비라도 본 것처럼 진저리치며 황급히 장갑을 낀다. 순간, 나는 퍽 거칠어 보이는 그 손이 천신만고 끝에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하고 음악을 작곡하고 제작비를 끌어들였다는 사실을 불가피하게 떠올렸다. <카운테스>는 노화를 향한 인간의 혐오, 특히 여성의 공포를 극단까지 그린 영화다. 그러나 그 너머에는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육체를 적극적인 표현의 도구로 활용하고 노련한 정신과 경력을 무기삼아 영화와 공생하는, 또 하나의 길을 뚫은 여배우가 오연히 서 있다. 김혜리 <씨네 21>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