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는 혼자 가만히 이렇게 명명해 보았다. - '가부장 역할을 하던 자의 죽음'.
처음에는 '아빠'라는 정겨운 명칭이 갑자기 생급스럽게 느껴져서 떠올랐던 말인데,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그에게 가부장 노릇이 얼마나 버거운 것이었을지. 그 가면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아빠' 역할과 '딸' 역할로 만난 우리는, 얼마나 이상한 연극을 하다가 헤어진 것인지.
생에서 우리가 얼떨결에 맡게 되는 갖가지 역할들, 쓰고 사는 여러가지 가면들,
우리는 상대방이 그 역할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고 도리질을 해대며 그를 증오하지만,
우리 역시 연극과 같은 인생에서 주어진 역할을 해내느라
때로는 맡은 역할을 증오하고 때로는 그 가면을 보호하는 애처로운 인생군상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빠가 해내었던 여러가지 아빠노릇을 떠올리며 조금 울었다.
엄마를 ‘노인’이라 부르는 아저씨가 이야기하는 소설 <눈길>. 그는 반복적으로 자신은 엄마에게 빚진 것이 없노라 되뇐다. 마치 빚쟁이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처럼 강박적으로. 주벽이 심한 형 때문에 집안이 망한 뒤로 엄마는 ‘낳아 기르는 사람의 몫을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제 앞가림을 하느라 ‘노인’을 돌보지 못했고, 피차일반, 서로 그렇게 주고받은 것 없이 살아온 처지에 새삼스레, 그가 좀 더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이유만으로, 엄마에게 무엇을 더 해주어야 하는 거냐고, 그는 따져묻고 있다.
아빠에 대한 감정을 복기하고, 그래서 설명해낼 수 있게 하기 위해 한 달을 보낸 것 같다. 슬프다 - 불쌍하다 - 힘들었다 - 그래서 미웠다 - 등등의 감정을 거치면서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내가 직면하게 된 아빠에 대한 감정은 바로 ‘무능함에 대한 증오’였다. 사실 그것이 가장 최근의 감정이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일 년 간은 거의 기억해내지 못하고 살아왔다.
<눈길>은 위대한 모성을 말하는 소설이 아니다. 가난한 부모를 증오하며 고달프고 외롭게 살아왔던 아들이, 지난 세월을 모두 용서하게 되던 어느 날 밤에 대한 이야기다. 아들이 엄마와 옛 집에서 마지막 밥상을 마주하던 그 날 밤 이후, 아들은 K시로 되돌아와 어떤 일을 가장 먼저 했을까?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이제부터 혼자 알아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간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조금 흥분했을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생활비를 보내주려는 계획도 처음부터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눈비를 뚫고 새벽 우유 배달을 나갔다가 학교에 지각하는 날이 있었을 것이고, 등록금을 대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대학 진학을 미루었을지도 모르고, 휴학에 휴학을 거듭하다가 대학을 미처 졸업하지 못한 채 군대에 끌려갔다 온 후 즈음에는, 아마 그도 지쳐있었을 것이다. 군에서 휴가를 나와 잠시 들르곤 하던 고향에서 만나는 집안 살림은 늘 그대로였을 것이고, 밑이 빠진 항아리 같은 자신의 삶에 물을 부어 꾸려가는 일이 지긋지긋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늙어가기만 하는 엄마를 보면서, ‘나한테 해준 거라곤 하나도 없는 엄마, 나도 엄마를 위해 뭔가를 해 줄 필요가 없어’라는 생각이 생겨나기 시작한 건 아마도 이때쯤이 아니었을까?
마지막 몇 년 간, 그 무능함에 대한 증오심은 점점 커졌다. 그것은 내 삶의 모든 모순의 가장 근원적인 발발지였다. 그가 없으면 모든 일을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것은 내 가장 공식적인 변명이었다. 그 때문에 무척 괴로웠지만 때로는 그것이 있어 아늑했다. 내 뜻대로 살지 못해도, 나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내 자신에게 끄덕여줄 수 있는 곳이었다.
<눈길>의 주인공도 어쩔 수 없었다고 끄덕이며 ‘빚진 게 없다’고 되뇌지만 그건 엄마를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고달팠던 자신의 젊은 날에 대한 분노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므로 그날 밤 그가 화해하는 것은 엄마뿐이 아니다. 엄마는 비록 가난했지만, 최소한 삶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이해하는 순간, 자신을 힘들게 했던 나날들에 대해 분노하며 감아쥐었던 주먹에서도 스르르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나는 아빠의 칠순 잔치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정말로 늙어버리고 나면 그 때엔 차갑게나마 자식의 도리를 다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난, <눈길>의 주인공과는 달리, 빚진 게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 아저씨보다는 그래도 한 걸음 나간 상태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누렸던 그 화해의 하룻밤을 나는 가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