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넘게 재미붙여 오고 있는 발레.
처음엔 부르주아들의 레저인 것 같아서 꺼려졌는데
직접 가서 보니, 평화로운 음악 속에 평화롭게 팔과 다리를 죽죽 펴는 아줌마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첫눈에 반해버렸다.
처음 며칠은 몸치인 내가 싫어지기도 하고 뚱뚱한 내 모습이 전신 거울에 비춰지는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는데
온몸이 이완되는 시원한 느낌, 조금씩 향상되는 나의 동작들을 느끼며 점점,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즐거운 일은 발레!라고 외칠 수 있게 되었다.
이놈의 ㅈㅇㄱ 정책, 그리고 ㅇㅁㅂ과 ㄱㅈㅌ 때문에 작년만큼 열심히 가지는 못하지만
몸은 비록 연습실과 멀리 있어도 마음은, 오매불망 일편단심 오직 발레다.
오늘은 꼭 가야지, 마음먹고 옷을 챙겨 들고 나갔다가 그냥 돌아오는 날은 '마냥 섭섭'하다.
내 발레 역사 최대의 위기는
작년에 교복 치마를 두 번이나 빼앗으며 '생활지도부 교사'와 '교복 수선 학생'으로 만났던 ㄱㅅㅎ양을,
연습실에서 발레복을 입고 마주쳤던 순간.
우리의 '교복 수선 학생'은 발레로 진로를 결정하기로 마음먹고 연습실에 다니기 시작하신 것.
나의 뚱뚱한 속살들이 여지없이 드러난 모습을, 동료 교사에게도 부끄러울 모습을,
내가 벌 주던 학생에게 보이게 되었던 그 절대 절명의 위기의 순간에는,
정말 진지하게 발레를 그만둘 것을 고민했지만,
뭐, 어때, 생각하며, 그냥, 다녔다.
나는, 분명 나에게 앙심을 품고 있을 ㄱㅅㅎ 양이
'** 선생 뚱뚱하면서 꼴에 발레 다니더라'고 학교에 소문내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소문이 나 몰래 도는지 안 도는지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찌되었든 그런 소문은 내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이렇게 내 발레 역사 최대의 위기도 넘어가는가 싶었다.
오늘은 운동이 다 끝나고 서로 다리를 '밀어주는'(사실은 찢어주는) 몸풀기 순서에서
서로 알아서 피해오던 이 ㄱㅅㅎ 양이 웬일인지 스스로 다가오더니 나의 다리를 밀게 되었는데,
아, 어찌나 봐주지도 않고 세게 미시는지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올 정도였지만,
비명을 지르는데도 지그시 미소를 지으며 그저 꾹꾹 눌러댈 뿐인 모습을 보며,
'너 나한테 당했던 거 복수하는거지!' 했는데도 '아니에요'라고 배시시 웃으며 계속 눌러대는 발을 느끼며,
난, 왠지 내 잘못에 대한 벌을 받는 것 같은 이 상황에 대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다리가 찢어지는 고통을 감내하는 심정이 되어버렸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겠다.
아, 이걸로 학생 인권을 침해해 왔던 내 과거를 다 씻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발 이제 생활지도부 그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