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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2.19 첫돌
  2. 2014.11.16 변덕스런 엄마
  3. 2014.10.23 아기와 할아버지
  4. 2014.09.29 2014 제주여행 0916-0920 2
  5. 2014.09.25 남편의 지병
  6. 2014.09.05 마음이 바빠서 마음만 바빠서
  7. 2014.08.25 4남매 키우시는 택시 아저씨 이야기
  8. 2014.08.14 안녕, 내 발
  9. 2014.08.13 그라우스 마운틴
  10. 2014.07.31 오랜만에 학교 생각.

첫돌

카테고리 없음 2014. 12. 19. 11:38


첫돌이 지났다.


돌이 지나고 보니 돌이 얼마나 별게 아닌지 체감하는 중.

돌이 지나도 여전히 아기는 아기. 엄마는 엄마. 밥 잘 안 먹는 아기는 여전히 잘 안 먹고, 젖 달라는 아기는 여전히 젖을 달라고 한다.


돌을 보내며 얻은 것들은,


나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 

친정에서 아기랑 부둥켜 안고 힘들어 하다가 갑자기, 내가 이 시간 속에 풍덩 빠져있는 게 아니라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힘들게'하는 생각에 지배당하고 있었나보다. 그런데 갑자기 번뜩, 하고 내가 300일이 넘는 시간을 이렇게 '보내' 왔다는 데 생각이 이르니 어찌나 마음이 편안하고 내가 장하던지. 시간은 머물러 있는게 아니고 가는 것이니, 내가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내'왔느냐에 따라 삶의 모양이 빚어지는 것이니. 


그리고 아기를 가지고 낳고 기르는 과정을 겪으며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빚지고 살아오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외롭고, 억울하고, 나만 손해보는 것 같고, 하는 생각들이 아직도 마음 속에서 불쑥불쑥 떠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뻗어오던 도움의 손길들, 축복의 손길들. 나는 그들을 위해 쓰지 못했던 마음들을 나에게 써 주는 사람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인색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외로웠던 게 아닌가. 내가 도와줘야 할 사람들을 돕지 않고 다른 곳에 마음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혼자였던 게 아닌가. 


아기를 낳고 기르면 강해질 줄 알았다. 강해졌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것보다 이제는 내가  넓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AND

어젠 시댁에서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이는데,
폭 안겨서 젖을 먹는 아기를 봐서 그랬는지 왜 그랬는지,
벌써 한참이나 지난 일인데 아기랑 만나던 날이 생각이 다시 나면서 막 눈물이 났다.

뱃속에서 억지로 끄집어 낸 것두 미안한데
추운 신생아실에 아기를 혼자 놔둔게 자꾸 생각이 났다.
엄마 배에 폭 싸여있다가 갑자기 그게 다 없어져서
혼자 플라스틱 침대에 누워 얼마나 춥고 무섭고 외로웠을까.

그래서 아기에게 더 더 더 잘해주어야지, 생각했는데
새벽에 깨서 너무 많이 우는 아기를 보고는 다시 짜증이 ㅎㅎ

전날 밤엔 둘째는 낳으면 꼭 좀더 힘내서 내가 낳아야지 생각했는데,
다시 둘째 계획은 취소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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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돌보면서 자꾸 작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한창 일어서기를 연습하고 혼자 섰다가도 금세 무릎이 픽 꺾어지고마는 아기를 보면서 더 그렇다. 할아버지가 일어서기가 힘들어지실 때 그랬다. 자꾸만 픽픽 무릎이 꺾이고, 다리가 휘청거리고.
할아버지도 드시지 못하게 되기 전까지 오래도록 죽을 드셨다. 아기도 몇 달 째 죽을 먹으면서 밥 먹는 걸 연습 중이다. 이렇게 하면서 점점 된 죽으로, 진밥으로, 된밥으로 간다. 할아버지는 밥을 드시다가 죽으로, 더 묽은죽으로, 그러다가 죽도 넘기지 못하시게 되고 캔에 든 유동식을 드시다가 결국은 아무것도 못 드시게 되었다.

아빠도 그랬고 할아버지도 그랬고 세상을 떠나 사라져버린 이들에 대해 생각하는 건 끔찍하고 괴로운 일이었다. 분명히 존재하다가 깨끗이 사라져버린 이들. 이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어떤 종교적 수사들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어제는 아기를 돌보면서 또 할아버지 생각을 하다가, 아무것도 없다가 점 하나가 되고 그 점 하나에서 이렇게 자란 아기를 생각하니, 마음이 갑자기 차분해졌다. 0에서 시작해서 지금 한 5쯤 자랐을까, 이런 우리 아기도 10만큼, 100만큼 자랄 것이고 할아버지는 그렇게 자랐다가 다시 0이 되었다. 할아버지도 아빠도 왔던 곳으로 돌아간 것뿐이고 깨끗이 사라져버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 갑자기 받아들여졌다.

아기를 낳고 나서 한 한달쯤 되었을 때였나, 이 아기도 죽음의 공포를 배울 것이고 언젠가는 세상을 떠날 거라는 생각을 하니 아기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한건가 싶어 마음이 무겁고 미안했던 것이 생각이 난다. 곧 아기와 내가 생의 고통들을 함께 나누게 되겠지만 이렇게 받아들이는 법도 같이 배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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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여름과 한겨울에만 쉬던 내가 모처럼 일년을 통째로 쉬는 해,

2) 9월말에는 여행을 한번씩 가자던 약속

두 가지 이유로 9월 제주행을 아주 일찍부터 정해놓았다.


미리 일정을 정해놓으니 아시아나 프로모션 메일을 받자마자 아주 저렴하게 얼리버드 가격으로 구매. 저가항공보다 쌌다. 교직원공제회의 한화리조트도 학기중 평일이니 예약이 수월했다. 


제주 여행은 늘 기대를 비행기만큼 가졌다가 막상 여행 가서는 머뭇머뭇 거리다가 오곤 했는데, 이번엔 남편이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제주편을 읽고 가자고 해서 책도 미리 열심히 읽고. 읽기는 했지만 일정 계획을 짜지는 않았고 가서 당일로 움직였다.



첫째날

김포공항 - 제주공항 - AJ렌터카 - 점심식사 덤장 - 삼양리 부근 이마트 - 제주목관아(관덕정) - 연북정(일몰) - 저녁식사 손맛(흑돼지) - 주차하다가 사고 - 숙소


둘째날 

아침식사 리조트 조식 - 날이 흐려서 숙소 주변의 4.3 기념관 및 기념공원 - 점심식사 명도암정식(순두부,곤드레솥밥) - 산굼부리 - 용눈이오름 방문 - 다랑쉬오름 등반 (및 아끈다랑쉬오름 관람) - 저녁식사 안다미로(닭백숙) - 숙소


셋째날

아침식사 햇반+어제의닭백숙 - 비가 와서 김영갑 갤러리 - 점심식사 김영갑 갤러리 무인카페의 초코파이와 커피 - 비가 더 많이 와서 금호리조트 수영장 - 위미항 - 저녁식사 수망손칼국수 - 숙소(빨래)


넷째날

아침식사 생이소리(쌈밥) - 비가 와서 국립제주박물관 - 계속 비가 와서 동문시장(귤, 오메기떡) - 신촌리 덕인당 빵집 보리빵 - 월정리 해수욕장 - 세화~성산 일주도로 드라이브 - 비가 오는데도 성산일출봉 등반 - 저녁식사 성산진미식당(전복죽, 고등어구이) - 숙소(사우나)


다섯째날

아침식사 리조트 조식 - 렌터카 반납(사고비용 지불) - 제주공항 - 김포공항 - 점심식사 돈까스(앞으로 절대 먹지 말 것) 


* 아시아나 항공은 유모차를 실어준다. 아기가 있으면 유모차, 부스터,카시트 등 부피가 나가는 것 중 하나를 부칠 수 있다. 덕분에 유모차 대여비용 아꼈다. 게다가 다행히 유모차 잘 안 타던 아기가 제주도에서부터 잘 타는 일생일대의 도약을 이루어내서 부모가 아주 편했다.

* 넷째날 쯤에는 비가 그칠 줄 알고 가고싶던 해변이나 성산일출봉 등을 미루고 가지 않았는데 제주는 비가 오는 날이 워낙 많으므로 비 안 오면 미루지 말고 무조건 가야한다는 걸 알았다. 

* 막상 비 오는 날에 성산일출봉에 올라가니 그것도 또 좋았다. 워낙 등반로가 잘 되어 있어서 크게 어렵지도 않고, 비 오는 날은 실내만 고집할 게 아니라 오히려 성산일출봉이 좋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음.

* 날씨가 좋았으면 두 배 세 배로 좋았겠지만 그래도 잘 놀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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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정보에 해당할 테니 구체적으로 여기에 쓰지는 않겠지만
얼마 전 우연한 계기로 내가 모르고 있던 남편의 지병에 대해 알게됐다.

우선은 서운함과 충격이 찾아왔고,
그 다음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혼란.
이 문제에 대해 방향을 잡을 수 없어 당황.
무엇보다 마음이 정리가 되지 않았던 것은 혼란 가운데 발견한 나 자신.
식탐. 조바심. 의존. 불안. 위선. - 이걸 들키지 않으려고 하다보니 더 괴롭고.

오늘에서야 한 가지를 알게 됐다면
일단 호들갑 떨지 말아야겠다는 것.
할 수 있는 것들을 매일 조금씩 하자.
나는 여기에 도와주려고 있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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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뭐했나, 생각해봤더니 마음이 바빴다 = 속이 시끄러웠다.

엄마 생각, 시댁 생각, 남편 생각, 하느라구.


낮에 아기랑 있다보면 아기랑 놀다가도 나도 모르게 멍-해지면서 늘상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정신 차려보면 아기는 등 돌리고 혼자 놀고 있다.

아기도 아는가보다, 엄마 마음이 다른 데로 가버렸다는 걸.


마음만 바쁘면 아무것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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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멫 달이나 됐어요? 

8개월이요.

그럼 한 10키로 나가겠구만. 

네에.

내가 지금 집에 외손주가 와 있는데 일굽 달 정도 됐는데 9키로 520그람인가 나가거든. 그러니까 그 정도 될 거야. 

네에 맞아요. 

메칠 전에는 예방접종도 한다고 왔다갔다 하고 그러더라고. 

네에. 같이 데리구 계신가봐요. 

아니 우리 딸이 셋인데, 다들 결혼을 헐 때가 됐는데 둘은 헐 거 같은데 첫째가 헐 생각을 안 하구 일만 대녀. 국민대핵교 나와서 사무실 대니는데. 그래 너는 결혼을 아예 안 헐거 같으며는 그에 마땅한 준비를 해라. 동생들한테 기웃거리지 말구. 그랬드니 또 헌대. 사무실 대니믄서 쪼그만 차도 가지구 댕기구 에스엠쓰린지 뭔지. 그래 그럼 헐라믄 빨리 해라. 그래 뭐 어쩌겠다는건가 하고 있었는데 작년에 어떤 손님을 태웠어. 그 손님이 진주에 간다믄서 유등제라는게 볼 만하다구 그래. 우리 식구들이 댕기는거 좋아하니까 내가 집에 가서 얘기를 했지. 그랬드니 그 딸 애가 같이 갈래느냐구 식구들헌테 그러구 나야 안 간다구 그러는데 우리 식구들은 또 가자구들 얘기가 돼서 갔어. 

진주에를요.

그렇지 진주에 유등젠가를 보러 간거야. 아니 근데 갔드니 남자가 하나 있드래. 남자눔이 나타나서 차를 가지구 대니믄서 안내를 허구 호텔을 잡아놓구 했드라는 거야. 알구 보니까 그눔이랑 지금까지 만났든거야. 칠년을. 그눔은 진주서 직장을 방위산업체를 다니구 서루 니가 관둬라 니가 관둬라 하면서 칠년이 된거야. 그러믄서 그눔은 마흔 한 살이 되구 우리 애는 마흔이 되구. 아니 그래 갔다 오드니 결혼 얘기가 오가네. 이미 사고를 쳐서 애도 뱄고. 나는 밑에 가서 좀 알아보려구 했거든. 여자애를 그냥 보낼 수 있어? 근데 어느날 갑자기 인사를 온대. 인사를 온대니 다 틀렸지 뭐야. 그러구서는 헌다는 말이 다 준비해놨구 식장 잡을 날짜만 정하면 된다는거야. 허 참. 그래서 그 장마철에 어디 손님이 오나 아무데서나 하지 뭐 싶어서 동네에 새루 생긴 데가 있어 깨끗하니까 뭐 거기서 그냥 급하게 식을 했어. 7월 6일에. 

작년에요.

그렇지. 그러구 노산이니까 제일병원에를 다니는데 2주에 한번씩 오라구 하드니 10월달부턴가는 1주에 한번씩 오라고 해. 그러니까 그냥 아예 와서 있드라구. 혹 떼려다가 혹이 하나 더 붙었지 뭐야. 그래 자연분만 하려다가 위험허니까 제왕절개를 허구 구정에 말야. 

1월 생인가요.

그렇지 1월 27일에 수술을 허구 애 낳구서는 셋이서 와 있으니 이거야 원. 그 얼마 전엔 예방접종 하러 갔다오고 하더라구.

다른 따님들은 다 결혼하셨구요.

다 했지 그럼. 둘째 애는 미국에 유학을 보내놨드니만 거기서 미국놈은 아니고 교포2세를 만났는데 교포2세라는게 껍데기는 한국사람인데 머리통이랑 이 속은 다 미국놈이야. 와서 뭐 예스 어쩌고 이러더라고. 계속 직진해요?

그래 내가 친척들한테 양놈이나 다름없으니 각오들 하라고 하고 불러서 결혼식을 여기서 했지. 계속 직진해요?

네 셋 다 보내신거네요 그럼. 

딸은 셋 다 보냈는데 아들두 있지.

여기서 좌회전 좀 해주세요.

아들 놈도 장가를 보내야 되는데 이놈도 뭐 어떻게

여기서 세워주시면 됩니다.

카드예요?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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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아기를 재우려고 젖을 줄 때의 일이다.

왼발은 접혀 있었고 오른발은 뻗어 있었는데 그때 너무 오랜만에 내 발을 보았던 것이다.


분명 늘 보던 그 발인데, 그래서 아주 친숙한 모양이고 내가 아는 그 발인데,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멈칫,하고 어떤 감정이 나를 지나갔다.


이 기분이 뭐지,하고 오른발을 유심히 쳐다봤다.

발가락, 발등, 발등의 뼈, 핏줄,...

귀엽기도 하고, 이쁜 것 같기도 하고.

그제서야 그 기분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분명 반가웠던 것이다.


몇 달간 아기만 쳐다보다보니, 내 몸을 그렇게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던 거다. 

이렇게 다른 대상을 오랫동안 유심히 매일, 24시간 애지중지 바라보는 건 처음이니,

내 몸이 이렇게 무관심한 채로 방치된 것도 처음일 것이다.


열심히 생각하지 않으면 이 닦고 세수하는 일도 깜빡 거르게 되는 일상.

샤워하고 머리감는 일도 남편이 오지 않으면 못 한 채로 기다리고.

모유수유 하느라 가슴이 열어놓은 채로 있기도 하고,

집에서 나갈 때 주의깊게 살피지 않으면 뭔가 남부끄러운 실수를 하기 쉬울 정도로 

엉망인 채로 살고 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발을 보고 반가웠던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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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우연히 캐나다 관광공사에서 올린 밴쿠버 사진을 보다가 문득 생각난 이야기.

2012년 밴쿠버에 두번째로 갔을 때엔 이번엔 혼자고 순수하게 놀러온 거니 제대로 밴쿠버를 느껴보겠다고 아웃도어 코스 중 그라우스 마운틴을 골랐다. 2월이긴 했지만 추적추적 이슬비나 내리는 날이었는데 산에 올라가는 케이블카에 타자 뭔가 싸아했다. 몇 미터 올라갔을까, 갑자기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원이 펼쳐졌다. 숲을 따라 가벼운 산보나 하려고 했던 나는 당황했다.

케이블카에서 내리자 그곳은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숲이 있는 산이 아니고 아주 성업중인 스키장이었다. 도로 내려갈까 생각도 했지만 왠지 아쉬워 입장권을 끊었다. 스키장에서도 산보를 하면 되지 않나 했지만 걷다보니 너무 힘들고 일상적인 행색을 하고 있는 것이 왠지 남부끄러워 스키용품을 대여하는 곳에 들어가 가장 싸고 가장 걷는것과 유사한 스노우슈즈를 빌렸다.

스노우슈즈라길래 아이젠이 달린 장화인 줄 알았는데 받아보니 황당했다. 뭐랄까 아이젠으로 이루어져 있는 짚신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눈보라에 대비한 모자까지 하나 사서 쓰고 스노우슈즈와 함께 하는 스키장 산보를 시작했다.

숲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스키장 양 옆으로 우뚝우뚝한 캐나다 나무들이 서 있는 숲길이 있었고 제법 산책로 지도도 있었다. 걷다가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멈추어 서곤 했는데 그러다가 호주에서 여행 왔다는 한 젊은 남자를 만났다. 과학 관련 잡지에서 일하는 기자라고 했는데 나는 영어도 못하면서 용감하게 대화가 가능한 척하며 얍, 놉, 해가며 적당히 말을 섞으며 같이 걸었다. 숲길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아무리 걸어도 돌아나오는 길이 나오지 않았고 길을 잃는가 했는데 다시 사람들이 스키타는 곳이 나왔다. 그는 잘됐다는 듯이 자기는 숲 탐험을 더 하겠다며 숲으로 다시 들어갔고 나는 황급히 케이블카를 내렸던 곳으로 돌아와 아이젠 짚신을 반납하고 하행 케이블카를 탔다. 몇 미터 지나지 않았는데 다시 눈이 비로 바뀌고 푸른 나무와 도시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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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지인 중 한 명, 아이 둘의 엄마를 보며
아, 이제 8학군 출신들이 학부모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한국의 교육, 입시 담론에 미치게 될 영향이랄까 변화랄까 하는 것들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입시에 성공하는 법은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학부모가 된다는 것.
서울대 입학생들 중 강남 출신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더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변화겠고.
그들이 젊은 부부-한 세대-를 이루어 강남으로 입성하고자 하는 꿈을 품고 실제 그것을 이루기 위한 루트를 달리고.(이번 선거에서 '강남4구'라는 말로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난 '워너비 강남'의 욕망도 이것과 관련이 있을까)

그리고 그들은 학교 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대해서도 더 노골적인 욕망을 드러내게 되지 않을까.

인상적이었던 경험이 있다.
대학원에서 교수에게 인정받으며 문학교육에 대한 괜찮은 논문을 쓰던, 스스로도 문학에 대한 좋은 감각을 가지고 있던 한 동료와의 일이다.
같은 소설을 서로 다른 반에서 가르치고 있었고 수업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는데, 문학 교육에 대해 나보다 훨씬 깊이 있는 고민을 가지고 있을 것 같던 그이가 오히려 자기 수업 시간에는 시중의 자습서에서 언급한 요점만을 중심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이른바 '요점' 내용들이 핵심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좀 다른 수업을 꾸려가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이에게 다른 의견을 이야기했을 때, 그이의 반응은 '그렇게 가르치고 시험 문제 내면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항의한다'는 것이었다. 학원에서는 자습서를 중심으로 가르치고 있고, 다들 그것을 기준으로 시험 공부하고, 준비하고 있으니 교사들도 어느 정도 그에 맞춰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젊고 똑똑한 그이가 자기 수업에 대해 그와 같은 안이하고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 데 대해 당시에 적지않이 놀랐다. 그리고 오늘은, 입시 중심 문제풀이 중심의 교육이 당연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더더더 늘어나 학교는 앞으로 얼마나 더 나빠질 것인가 하는 걱정을 하면서 그때의 경험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이를테면 그나마 남아있던 교육의 대의명분마저 다 사라지게 되는 날이 온다면? 교육관료들이나 연구자들도 모두 입시 중심의 담론에 묻히게 된다면?

학교를 안 가고 있으니 괜히 혼자 현실적이지 않은 생각을 하는 건가. 아무튼. 선거 결과와 남편의 지인을 생각하다가 괜히 헛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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