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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카테고리 없음 2014. 7. 9. 23:00



어젠 작년에 가르쳤던 학생들이 집에 놀러왔다.


가출하고 싶어지면 놀러와, 

술 먹고 싶으면 놀러와, 하고

결혼하기 전에는 진심으로 많이 그랬고

결혼한 후에도, 학생들이 그래봤자 안 온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진심 반, 농담 반으로도 많이 그랬다.


그런데 놀러 오지 않았던 이유가 내가 학교에 있었기 때문인지?

휴직하고 나서는 놀러오는 학생들이 간혹 있다.


작년 학생들은 내가 끝까지 담임을 못해 미안했던 아이들인데

방학을 하고 여유로워지니 내 생각이 났는지,

대뜸 '아기보러 가도 돼요?'하고 문자가 왔다.


신임교사일 땐 학생들이 나를 얕볼까봐 참 걱정도 많았는데,

이젠 안다. 

엔간해선 학생들이 거리를 좁히지 않는다는 걸.

엔간해선 내가 학생들의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걸.


그래서 이렇게 마음을 내어줄 때가 참 귀한 기회다.

덥썩, 오라고 했고 덥썩, 바로 다음 날 찾아왔다.


학생들이 나보다 아기랑 훨씬 더 잘 놀아준다.

아기도 낯도 안 가리고 참 잘 놀았다.


밥을 안 먹고 왔는지,

"선생님 점심 드셨어요?"하고 운을 띄우더니

"비빔면 끓여주시면 안 돼요?"하면서 비빔면 번들팩!을 부시럭부시럭 꺼내던 장면이 젤 웃겼다.

자꾸 생각난다. 

비빔면 끓여주시면 안 돼요?


어느 선생님은 술 마시며 눈물까지 그렁거리며 말했었다.

어느날 미용사가 되었다며 머리 깎아주겠다고 연락오는 제자 가져보는 게 소원이라고.

그건,, 참으로 '참교사'다운 여러 욕망이 담겨 있는 로망인 것인데,

뭐 나는 이걸로 됐다. 

점심 안 먹고 온다고 했으면 찌개에 밥이라도 대접했겠지만,

이런 거창한 생각 다아 소용없는 거다.

비빔면 끓여주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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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4. 6. 9. 09:27


아기가 생긴 이후로는 시간이 내 시간이 아니고 가족의 시간이다.

쉬는 날이 생기면 나의 휴식 시간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엄마와 아내로서의 업무를 본격적으로 해야 한다.

지방선거, 현충일 등으로 연휴였는데 나 병원 한 번, 아기 병원 한 번, 남편 친구들 방문 한 번, 남편 친구네 방문 한 번, 이렇게 정신없이 지냈다.

남편이 출근하고 월요일이 되니 이제 아기 자는 시간을 이용해서 나의 시간을 좀 가져보게 된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흘러가는데, 직장에 복직하면 어떻게 될까. 아기가 만약 하나 더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은 상상도 하기 어렵지만 막상 닥치면 다 어떻게 되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닥치는 두려움은, 지금 가까스로 지켜내고 있는 것들을 피곤하고 지친다는 이유로 놓아버리고 포기하지 않을까 하는 것. 지치고 힘들지만 그래도 '나'의 일상이고 '나'의 가족이기에 내가 정성스레 가꾸려고 하는 것들을 포기하게 되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것.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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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4. 6. 5. 13:25


점점 자라나는, 하지만 아직 돌도 안 된 아기를 돌보고 키우면서, 장애아의 부모가 된다는 것은 평생 동안 아기를 키우는 부모가 된다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기들은 먹여줘야 하고, 입혀줘야 하고, 재워줘야 하고, 싼 것을 치워줘야 한다.

내 동생은 십년이 넘는 기간의 엄청난 부모의 노력과 정말 피나는 교육 끝에 혼자 옷 입을 수 있게 되었고, 혼자 화장실 가게 되었지만, 여전히 잠을 자연스럽게 청하지 못하고, 배변과 위생을 항상 부모가 신경 써야 하고, 밥 챙겨줘야 하고, 옷을 챙겨주어야 한다. 


아기들은 침을 흘리고, 토하고, 쉬와 응가를 해도 챙피한 줄을 모른다. 언제였나, 근대 사회에서 '체액을 통제하지 못하는 이들'은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한다고 들었다. 장애인들도 아기들처럼 쉬와 응가가 가진 의미를 모른다. 그렇지만 아기들은 '아기이기 때문에' 그래도 되는 것으로 사회에서 받아들여져 있고, 아기의 부모들은 침 흘리고 똥 싼 아기에 대해 크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지만 다 큰 장애인이 배변을 일반인처럼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 장애인과 함께 있는 가족들은 엄청난 손가락질과 흘깃거림을 견뎌야 할 것이다. 장애인의 부모들은 여전히 아기와 같은 자식을 돌보지만 언젠가부터 사회에서 그들을 아기로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는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TV나 광고에 나오는 아기들은 예쁘게 웃거나 예쁘게 운다. 하지만 실제 아기들은 진절머리가 나도록 울어대기도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울거나 소리를 지르는 이유도 알 수가 없고, 멈추게 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내 동생도 마찬가지다.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면 주변에선 아주 견디기 어려운데, 나와 엄마는 저 아이가 왜 저러나, 머리가 이상해져서 소리를 지르나보다, 뭔가 아픈가보다, 괴로운가보다, 이상하다, 하면서 속수무책으로 그 시간들을 견디곤 했다. 아기를 키워보니 이제 알겠다. 아기의 상태에 있다면 그냥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아기가 폭력적이기도 하다는 건 정말 몰랐는데 그랬다. 우리 아기는 나를 날마다 할퀴고, 머리를 잡아뜯고, 손으로 두드리고, 때로는 발로 차듯이 건드린다. 내 동생도 그렇다. 내 동생이 보여주는 장애인으로서의 모습 중에 가장 힘들었던 폭력적인 모습도, 그냥 아기같은 것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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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4. 5. 30. 15:17


아직은 오개월차 초보엄마지만

부모가 되고 보니 이제서 다시 보이는 우리 엄마 아빠에 대한 생각.


남들은 엄마가 되고 나면 엄마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데

나는 그거보다는 엄마를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된 것 같다.


시집와서 다른 엄마를 가까이 지켜보면서도 그렇게 되었지만,

내가 엄마가 되어 또 다른 엄마의 눈으로 보니 더 그렇다.


다른 엄마들과 비교해서 서운한 게 더 많아진다.

나는 왠지 엄마한테 해주기만 하고 받는 건 없는 손해보는 딸인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따져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데도 그런 생각이 자꾸 든다.


요즘 자주 드는 생각은 젊은 엄마에 대한 연민.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막막하고.

내가 알기로 엄마는 친정엄마나 여타의 다른 도움을 받을 곳이 없었다.

나를 가지기 전에 있었던 다른 아기의 일로 마음의 상처도 있었다.

아빠와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어렸다.

자기 일도 없었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엄마와 외출했던 일들, 엄마와 엄마친구네 놀러갔던 일들, 그런게 생각날 때면

요즘 내가 어렵게 짐을 꾸려 아기를 안고 큰 마음을 먹고 외출하듯 

그렇게 외출했을 엄마의 마음이 생각난다.

나는 요즘 꼭 택시를 타고 다니는데, 그러지도 못했을 거고 

- 엄마와동생과 셋이 버스 한자리에 앉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기우뚱기우뚱거리는 버스를 타고 매연을 맡으면서, 

그렇게 먼 길을 가서 또 다른 애기를 낳은 친구를 만나고 오고,

그렇게 그때 그 또래의 여자들이 모여 수다를 떨며 위로를 받는 그런 풍경.


가족 안에서 아빠가 했던 일들도 이제서야 보인다.

아빠는 늘 외식을 하자고 했고,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고, 놀러 가자고 했었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내 공부 방해한다고 하거나 돈을 낭비한다고 질색을 하며 싫어했고,

엄마편이었던 나는 그런 아빠의 제안이 좋은 건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엄마를 따라 아빠를 싫어했다.

이제야 보이는 그런 아빠의 마음 - 아빠는 가족을, 가족의 문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아빠보다 먼저 결혼해서 아빠보다 훨씬 번듯한 직업과 집을 가지고 중산층처럼 살아가는,

그런 아빠의 친구들과 그들이 꾸리는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아빠도 그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빠는 돈을 못 번다는 이유로 그런 제안을 늘 묵살당하면서 살아왔고

엄마나 나로부터 따뜻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늘 찬밥 대접을 받으며 살다가 

그렇게 혼자서 외롭고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버렸다.


아빠가 죽고 나서 엄마가 

'아빤 술을 많이 마셔서 그렇지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 좋은 아빠가 되려고 했었어.' 라고 했을때

아직도 아빠에 대한 미움만 남아있던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를 몰랐다.


새롭게 아빠가 된 남편 옆에서 살아가면서

이제야 아빠의 마음이 가슴 아프게 가슴 저리게 읽혀진다.


사람이 사는 건 매 순간순간 자기의 역사를 써내려 가는 거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

그 생각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낫게 살려고 다잡으면서 살고 있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가족의 역사도 부부가 그렇게 공들여 써내려가야 한다.

엄마도 아빠도 그걸 제 나름대로 하려고 노력했지만 서로가 맞지 않았다.

엄마는 너무 어리고 외롭고 힘들었고, 

아빠는 너무 무능했고, 그리고 똑같이 외롭고 힘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슬프게 가족의 한 역사가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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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두 권을 한꺼번에 읽고 있다.


종이책으로는 "통영 섬 부엌 단디 탐사기"

E북으로는 "부모를 위한 아티스트 웨이"

주제는 참 다른 책이지만 엄청난 인터뷰들을 통해 만들어진 책이라는 점은 같다.


"통영..."은 책이 만들어진 과정, 만들어진 모양새, 그리고 문장 하나하나 참 아름다운 책이다.

읽다보면 '나도 이런 책 쓰고 싶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든다.

저자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하나하나를 나도 다 기억하고 싶고, 내 이야기로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또 들려주고 싶다. 


"부모를 위한..."은 별로 재미없다. 

'세살 난 아이를 둔 제임스는 이렇게 말한다' 등으로 시작하는 사례들의 행진을 제시하며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작위적인 냄새가 점점 더 난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한 독자를 주눅들게 한다.


그렇지만 오늘 이렇게 앉아서 글을 쓰는 건 "부모를 위한..."의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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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요즘은 외로운 것 같다.

하루에도 몇번씩 뭔가가 사고 싶고, 먹고 싶고, 누군가가 생각나고, 전화하고 싶고.

그러다가도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이니까 참고, 

살 찔 테니까 참고,

못 다한 말은 나중에 하면 되니까 참고,

나중에 하면 더 좋을 테니까 참고.


그래서 뭔가 계속 욕구 불만 상태.

처음엔 경제적 여유 때문인가 싶었고

그 다음엔 마음에 무슨 불안한 것이 있나 싶었는데


생각을 해보니 그냥 외롭고, 그리고 뭔가 나쁜 여유랄까 그런게 있는 거다.

충만함 속에 찾아오는 좋은 여유 말고, 

그저 텅- 비어 있는 나쁜 여유.

그러다보니까 그걸 잘 채울 생각을 못하고

부정적인 것들로 채우려고 하고 있다.


좋은 걸로 채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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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

카테고리 없음 2014. 3. 1. 00:41



여느 해 같으면 다음 주부터 개학이라는 생각에 

두근두근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받기도 하고 그러고 있었을 텐데

오늘은 아니다. 

대신, 아까 머루한테 이렇게 말했다.

다음주부터는 엄마랑 산책도 다니고 놀러도 다니고 그러자~!


아기는 세상에 나온 지 75일이 되었다. 

두달 보름 정도가 지났다.


한 보름 동안은 

자연출산에 실패했다는 생각과 모유수유가 잘 안 돼서 속상한 마음에 매일 울면서 지냈고

다음 한 달 정도는

집에 와서 아기랑 24시간 보내는 일에 적응하고 모유수유에 익숙해지면서 보냈고

또 다음 한 달은 

기저귀, 천기저귀, 새 기저귀, 팬티형 기저귀, 이런 것들에 미쳐서 보낸 것 같네.


아기 낳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한동안 몹시 화가 난 상태로 지냈는데

이제는 점점 잊혀져 간다.

세상 모두에게 속은 것 같은 기분,

아기를 만나기 위해 준비했던, 들떴던 마음이 실은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웠던 것 같은 기분,

모두에게 기만당했다는 생각.

이런 것들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기는 참 예쁘다.

옹알이 하는 아기를 보면 마치 악기같다.

잘 대답해주고 싶은데, 머루가 더 말하고 싶게 만들고 싶은데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예쁘기도 한데, 불쌍하기도 하고, 밉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그래서 힘들기도 하다.

엊그제는 "이건 마치 엄마되기 주부되기 합숙훈련에 온 것 같잖아!"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힘들고 답답하고 그렇지는 않다, 아직은.

집에만 일주일 내내 있는 것도 아직은 괜찮다.

하나도 안 답답하고, 이 공간이 아직은 넓게 느껴진다.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런듯.

그래서 기저귀 빨래 하는 일도 하기로 한 게 잘한 일 같다. 

이걸 안했으면 시간이 남았을 테고 그랬으면 더 나빠졌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2월 한달도 갔다.

3월부터는 개학한 것처럼 지내야지.

많이 놀고, 많이 쓰고. 



















AND

임신 41주

카테고리 없음 2013. 12. 12. 15:16


예정일로부터 열흘이 지난 날이다.


예정일에는 아무 기미 없었지만

지금은...

이슬이며, 배뭉침이며, 하는 여러 가지 징조들을 겪으며

오늘인가, 오늘인가, 한 지도 이미 며칠이 지났다.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사람들도 많지만

유도분만을 빨리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남편도 많이 걱정을 한다. 

아기가 커지면서 내가 더 힘들어질까봐 걱정이라고 한다.


내 마음도 두 가지다.

조금 늦어져도 괜찮다고도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이러다 잘못되는 건 아닌가 싶어 덜컥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산책하기

오르막길 걷기

계단 오르내리기

짐볼 운동

마사지

일주일여 동안 다 해보았는데 아직도 진통 기미는 없다.


예정일이 되어 문득 깨달았던 것이 있다.

내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것.

남들은 여러 날 전부터 언제 만나자, 라고 아기하고 대화를 많이 나눈다던데

나는 대화는 조금씩 하면서도 '언제 만나자'는 말은 잘 못했다.

두려운게 많아서다.


오늘도 문득, 몸은 열심히 움직이면서 태담은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하면 되지, 하고 있잖아, 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진심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마음으로는 내 마음을 알고 있지만

소리 내어 말하는 건 다른 것 같아서

아기에게 솔직하게 한참을 이야기했다.


무서웠던 마음, 실망했던 마음, 그런거 있지만

그래도 기다리고 있노라고.

늘 걱정이 먼저 앞서기는 하지만

하면 또 뭐든 열심히 잘 해왔노라고.

그러니 걱정말고 나오라고. 


아기가 뱃속에 있어 참 행복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기에게 해준게 없었는데

아기 덕분에 사랑받고 아기 덕분에 축복받고 지지받아서 참 고마웠다.


몸으로 하는 일은 늘 둔했던 나다.

내 몸도 조금 느린가보다.

그래도 다 나오게 되어 있지 뭐 평생을 뱃속에 있겠나.


남들은,, 병원에서 진행하는 바에 따르느라 

예정일 이틀 지나 제왕절개를 권유받아 수술한 친구도 있고

일주일 지난 후 유도분만을 권유받아 유도를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수술한 친구도 있다.

나도 결국은 수술을 할 수도 있지만

지금 이렇게 열흘이 지나도록 기다려줄 수 있는 병원과 선생님을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머루가 나를 기다리게 하면서

사람 몸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마다 다양하고 

또 의학에서 이야기하는 많은 것들이 정확하지 않은 것이라는 걸 배울 수 있게 해줘서

고맙기도 하다.


어제는 계단에서 만난 9층 아주머니가 

보름이 늦어졌던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다 괜찮다고 해주셔서 참 고마웠다.

이 경험을 하고 나면 나도 남들에게 

'늦어져도 괜찮다' '사람마다 다르다' '기다려보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지.

빨리 해라, 남들만큼 따라가자, 이런 말만 할 줄 아는 사람보다 훨씬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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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34주

카테고리 없음 2013. 10. 23. 10:48

1.

머루가 내 배를 운동장인 양 뛰어노는 하루하루.

뛰어논다고 하기보다, 꿈틀꿈틀거린다고 해야 맞겠지?

꿀렁꿀렁

꿈틀꿈틀

울쑥불쑥

뱃 속에서 움직이는 아기가 신기하고 재미있다.

단 걸 먹거나 하면 더 많이 움직이는데 

나도 이런 새로운 반응이 내 몸에서 생긴다는 것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도 또,

오늘 아침 출근 길에는 움직이는 머루를 보며

덜컥, 무서웠다.

세상에 없던 생명을 하나 만들어 놔서 이걸 어쩌나.

제 맘대로 움직일 이 아이를 나는 어쩌나.


또 말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두려움들이 있다.

돌이 지나면? 두 돌이 지나면? 얼마나 지나면 이 두려움들로부터 다 해방되고

이 모든 아기에 대한 걱정들로부터 다 벗어나는 때가 올까.

아마 아니겠지.

엄마가 된다는 건 그런 것일게다.


2.

나는 결혼을 왜 했나,

주말을 엄마와 동생과 함께 보내며 이런 생각을 했다.

결혼을 하고나니 내 몫의 욕심, 내 몫의 울타리, 내 몫의 지켜야 할 것들이 늘어간다.

결혼을 한 이유에는 엄마가 바랬기 때문.도 있는데,

정말 엄마를 생각했다면 결혼하지 말고 엄마랑 동생을 잘 도우면서 살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내 몫의 것들이 늘어나니,

엄마가 나를 전적으로 돕지 않고 동생을 돌보는데 전력을 투자하는 것이 점점 싫어진다.

나는 이럴 줄을 왜 몰랐나?

알았을 텐데, 아마도 나는 또 벗어나고 싶어졌던 모양이다.

이런 마음이 되니, 

예전에 아빠를 부담스러워하고 미워했던 감정들이 엄마에게로 화살을 돌리는 거 같다.

엄마때문에 내가 내 마음대로 못 사는 것 같은 기분.

그건 엄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인데.


내 자식이 생기면 더 하겠지.

이게 엄마를 위한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점점 더, 엄마는 엄마 자식(동생)말고 

나 그리고 내 자식을 더 돌봐줬으면 한다는 욕심이 생긴다.


3.

어제는 남편과 출산계획을 검토해보았다.

D-40.







AND

임신 25주

카테고리 없음 2013. 8. 24. 18:03


그동안 잘 놀았다.


방학 동안, 

기대와는 달리 3주간 꼬박 학교에 출근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부지런히 요가도 다녔고,

숙원이던 서점에 죽치고 앉아 책읽기도 해봤고,

남편과 긴긴 휴가도 다녀왔다. 통영은 참 좋은 곳이었다.


몸도 비교적 편안했다.

소화불량이 계속되고, 변비와 설사가 반복되고, 두통에 시달리고,

소변이 너무 자주 마렵고,

왼쪽 엉치뼈가 아파 오래 걷거나 오래 앉아 있거나 오래 서 있기가 힘들었고,

또 8월 중순부터는 예전보다 훨씬 더 더위를 타는 증상이 생겨나는 등

불편한 점들이 여러 가지 있었지만

그래도 몸이 가벼운 편이었다.


이제 조금씩 힘들어지는 것 같다.

개학을 하고 나서 일주일 출근을 하고 나니 출근이 얼마나 힘든 것이었는지 새삼 알게 된다.

새벽같이 일어나는 일이 고역이고, 수업을 꾸려가는 일이 부담이 된다.

학기초라 밀려드는 업무 때문에 오래 앉아 있다보면

아기가 불편할까봐 걱정이 되어서 마음이 불편하다.

소변 문제, 변비문제, 소화불량 문제도 점점 더 힘들다.


위가 가슴까지 올라왔는지? 

밥을 조금만 무리하게 먹고 나면

(급히 먹는다든지 많이 먹는다든지 소화가 어려운 걸 먹는다든지)

목에 뭐가 걸린 것처럼 갑갑하게 뭔가 남아서 내려가질 않는다.

찾아보니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아무래도 나는 소화기 계통의 문제인 것 같다.

그런데도 식욕은 또 엄청나게 생겨나서 학교에서도 계속 간식을 입에 달고 살고 있다.


허리도 점점 아파온다. 하루종일 학교에 있다보면 괴롭다.

요가를 매일 가고 싶은데 학교 일이 끝나지 않아서 이번주도 하루밖에 가지 못했다.


개학하고부터 태동이 줄어든 것 같아서 걱정이다.

이번 한 주 조금 무리했는데, 

아기한테 나빴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매일매일 셀프체크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을텐데

한달에 한번 가는 병원이 답답하다.


한 주동안 힘들었는지 

어제 밤부터 오늘 오전까지 열두시간 정도 잤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추석이 지나면 본격적으로 힘들어질 것이라고 주변에서 말을 하니,

나도 지금의 이건 별게 아니고 더 힘들어지려나보다, 하고 생각한다.


이후가 더 걱정이다.

지금의 모습에서 변하지 않고, 불쑥 나온 배가 안 들어가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지금은 체중이 걱정할 수준은 아니지만, 

앞으로 계속 먹는 것을 조절하지 못하고 살이 심하게 찌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아기 낳는 일이 힘들고 낳고 나서도 힘들어서 늙어버리게 될 일이 걱정이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머루야,

남은 기간 잘 지내보자.

엄마가 자주 앉아 있어서 불편하게 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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