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수업일기 | 5 ARTICLE FOUND

  1. 2010.11.12 올해도 '눈길'을 가르치며
  2. 2010.11.08 수업일기 1107
  3. 2010.10.10 수업일기 1010
  4. 2010.09.06 수업일기 0906 2
  5. 2010.08.23 수업일기 0823



올해도 '눈길' 단원을 마치고 난 뒤 아이들이 하는 말.

"이 아저씨 너무 못 됐어요!"

매년, 아저씨가 젊은 날을 얼마나 힘겹게 보냈으면 이렇게까지 할지 생각해보라고 해왔지만
올해의 나의 말.

"사람들 마음 속엔 누구나 어린 아이가 있어.
그 어린 아이를 잘 다독이며 사는 사람은 어른다운 어른이 되지. 
그런데 그 어린 아이를 다독이지 못하고 불쑥불쑥 내 보이는 사람은, 음, '비어른' 이랄까. 
아마 너희들이 선생님들에게 실망하는 순간도 아마 그런 순간일거야-선생님들의 마음 속의 어린 아이를 내보일때.
 
이 아저씨는 
너무 어린 시절부터 힘들게 살았고 부모님의 사랑과 보호를 갈구하기만 해왔기 때문에
그 어린 아이를 잘 다독이기 힘든거야. 
그러다가 엄마가 사실은 자기를 마음 속 깊이 사랑해왔다는 걸 알고, 
눈물을 흘리면서,
그 마음 속 어린 아이가 세월을 뛰어 넘어 훌쩍, 크는 거지. 
그런 하룻밤에 대한 이야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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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시즌. 

긴 소설, 
줄거리를 머릿 속에 넣어주려고 한 반에서는 릴레이로 줄거리 말하기를 시도하기도 함.
서사 중심의 소설은 길어도 줄거리 다루기가 어렵지가 않은데
'눈길'과 같은 소설은 학생들이 이야기의 뼈대 잡아내기를 어려워하고,
이걸 도와주는 일도 쉽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걸 '재미있게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본문을 다루는 일도 만만치 않은 것이,
감정의 결이 중요한 소설이다보니 곳곳에 살펴봐야할 지점들이 많은데
너무 길어서 하나하나 다 읽다보면 학생도 나도 너무 지치고,
좀 다이나믹하게 하려고 스킵하다보면 학생들이 따라오지 못한다.

나도 교과서를 찍어서 진행해 볼까?

쓰다보니 너무 초짜같은 고민이라 부끄럽네.

쩝. 내년엔 '문학'을 가르치게 될 테니 더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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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한의 "소설, 어떻게 읽을 것인가" 중에서 '눈길' 부분

- 세상에는 진리도 존재하지만 진실도 존재한다. 단편소설 '눈길'에서, '나'가 어머니로부터 아무런 경제적 도움도 받지 못했으므로 '나는 어머니에게 빚이 없다'고 하는 말은 사실이요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한편으로 어머니를 외면하는 그가 진실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진리의 논리'도 있지만 '진실의 논리'도 있는 까닭이다. 문학은 주로 이 진실의 논리를 추구한다. '눈길'은 진리를 지향하는 논리가 진실을 지향하는 논리에 지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의 중심 사건은 '어머니의 사랑을 외면하면 안 된다' 혹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진실의 논리에 따라 주인공이 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진리를 읽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읽어야 적절히 이해할 수 있다.

- 이야기는 점심 때 시작되어 밤중에 끝난다. 전면에 서술된,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서술된) 사건, 즉 '현재(적) 사건'이 일어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10시간 내외이다. 이 사건의 '서술된 시간'과 서술자가 그것을 '서술하는 시간'은 순서상 '함께 간다'.
'눈길'의 현재적 사건에는 그 이전의 과거 사건이 끼어들어 있다. '나'는 회상 형식으로 17, 8년 전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사건(과거사건1)과 어젯밤의 사건(과거사건2)을 이야기하는데, 앞의 과거 사건1은 어머니의 회상 형식으로도 제시된다. 회상, 특히 일인칭 서술에서의 회상은 그 자체가 행동이요 사건이다. 따라서 이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서술은 회상된 시간 위주로 보면 과거 사건이나, 회상하는 시간 위주로 보면 현재사건이다. 그러므로 줄거리를 잡거나 핵심적 갈등을 논의할 때, 초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혼란스럽다. 이런 점을 무시하고 읽으면 정리가 어렵고 생각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눈길'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한 서술의 양이 많고, 그 현재 시간 중에 중요한 상황의 변화가 크게 일어나기 때문에 현재 사건을 중심으로 삼는 게 적절하다. 그러면 약 10시간 동안 일어난 현재 사건이 줄거리의 기둥이 되고, 이 작품의 중심 사건, 곧 핵심적 변화와 갈등을 내포하거나 전달하는 사건을 거기에 설정하게 된다. 이에 따라 과거 사건은 이 중심 사건의 처음 상황과 끝 상황의 원인과 전개 과정에 수렴되거나 그것의 전개를 돕게 된다. 과거 사건이 줄거리에서는 현재 사건 앞에 놓이지만, 그것을 '회상하는 행위'의 의미와 결과는 현재사건의 의미와 전개를 돕는 데 초점을 두고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 작품의 결말부에서 어머니는 과거 사건 1, 즉 눈길에서의 모자 이별에 대해 회상하는데, 아들은 그것을 듣고 운다. 이 '운다'는 행동이 '눈길'의 핵심적 사건 가운데 하나라고 할 때, 과거 사건 1 혹은 그것을 회상하는 어머니의 행동은, 그에 수렴되거나 그 전개를 돕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

- '눈길'은 아예 집이라는 공간소가 주인공인 듯한 소설이다. 예전에 잘살던 시절의 집, 남의 손에 넘어갔음에도 어머니가 굳이 아들로 하여금 하룻밤을 지내게 했던 그 좋은 집은, 거기 살았던 이들의 안락과 화목의 상징이다. 그 집은 이제 없고, 개량을 기다리는 단칸 오두막이 있을 뿐이다. 아들은 개량을 돕지 않으려고 그 집을 떠나 서울로 가버리려 한다. 옛집을 잊지 못하고 그것의 환유물, 곧 거기 놓였던 옷궤를 지니고 사는 어머니와 대조되면서, 아들이 떠나고자 하는 오두막은 '어머니에게 진 빚이 없다'는 그의 좁고 황폐한 마음과 유사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아내의 도움으로 '떠나서 피하지 않고' 오두막 개량을 돕게 되는 아들의 행동은, 자신의 마음의 집(가족, 안식처)을 되찾고 개량하는 행동이다. 이처럼 '눈길'에서 집은 물체이자 장소인 동시에 상징이다. 이런 예는 의외로 많은데, 그것은 집이 정착과 가족의 행복을 바라는 인간의 원형적 욕망을 상징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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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전'과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을 끝내고 연극 수업으로 간다.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은 정말, 매년 새로운 부분에 감동하게 되는 좋은 소설.
두번째 해가 되어서야 
소설 속 주인공이 처한 현실과 허생이 처한 현실을 교차시키고 삶의 자세와 방향을 고민하는 화자의 모습,
그리고 그 속에서 왜냐선생님과 투사, 허생, 홍길동과 같은 인물들을 비교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세번째인 올해엔 
주인공이 열망하던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 이름붙일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이 소설 전체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대조적으로 드러나 있는지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나도 이렇게 한 소설을 읽어내는데 오래 걸리는데 
학생들이 몇번의 수업과 시험 공부만으로 나와 똑같은 것을 알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래서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의 문제를 또 다시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구조화된 도표' 등등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정말 적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이것을 피하려고 하고,
오히려 소설을 통해서 느껴야 하는 감동의 지점,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문제의식, 주제의식을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느낄'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려고 하는 편인데
이런 방법은, 모든 학생에게 보편적인 질의 내용으로 전달되기에는 확실히 무리가 있다.

그리고 나 자체가 감성보다는 이성이 발달한 사람이고,
소싯적에도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났던 사람이라기보다는 
지식을 구조화해서 암기하고 적용하는 데 소질이 있었던 사람이니,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났던 사람들보다는 위의 방법으로 어떤 내용을 전달하는 데 더 약할 수도 있다.

당신의 가르치는 방법에 동의하지 않았던 한 선생님의, 
수업 시간에 읽어내려가면 애들 처져서 안 된다,는 말이 이번에 유난히 귀에 꽂혔던 것이나,
오늘의 이런 생각들이나, 다 차곡차곡 모아놓았다가
수업 방법을 개발하는 데에 써야한다는 생각.

당장 앞으로 다가올 '눈길'에서 어떻게 새롭게 해볼 것인지 좀 생각해봐야겠다.

연극수업도, 작년 재작년과 달리 리딩을 좀 적극적으로 지도해볼 생각.
1 배역을 먼저 정하도록 하지 않고 돌아가면서 해보고 난 후 배역 정하도록 하기
2 장면 몇 가지를 선정해서 속마음 적어넣기 등으로 인물 심리 이해하기 수업을 하기
3 발표하기 전에 중간 깜짝 발표 시켜서 중간 점검하기.

이렇게 하는 게 시간을 좀더 절약할 수도 있겠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좀더 빨리 좀더 많이 전달할 수 있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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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권의 1단원을 끝내고 2단원으로 들어간다.

앞에 '허생전'과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이라는 이야깃거리 많은 텍스트가 기다리고 있지만
사실은 이제 막 끝낸 1단원과 같은 무미건조한 내용들이 더 가르치기 편하기는 하다.
열심히 받아적으면서 아이들이 바짝 긴장하니 진행하기 쉽고,
뭘 필기해야 할지 쉽게 알 수 있고 중간중간 의미없는 유머들이 들려오는 이런 수업을,
아이들도 더 편안해 한다.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알아듣고 열심히 반응하는 아이들과
'시험에 안 나오는 얘기군'하면서 관심없는 아이들이 갈린다.
본격적으로 아이들이 졸기 시작하기도 한다.

수업을 하면서 배우는 것은 모두 다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 다운 수업을 만들고 나 다운 교사가 되는 것.
모든 아이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나는 모든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
몇몇 아이들이 불편한 마음이 생기더라도 어쩔 수 없다. 
뭐, 내 수업이니까.
음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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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첫 수업시간.
2학기 수행평가를 안내하고
남는 시간에는 2학기 발표 주제인 지식채널을 보았다.
(지식채널 틀기 실습 차원)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문제의식 있는 걸 봐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잊혀진 대한민국> 시리즈를 보았는데, (나도 참.)
하나 보고 났을 때는 괜찮다 싶었는데 같은 주제로 두 개, 세 개를 이어서 보니까
너무나 무겁고 우울하게 가라앉는 분위기여서 내가 감당이 안 되었다.

네번째 반에서는 그 무게가 싫고 여러 번 보는 게 지겨워서,
가벼운 걸로 틀었다.
가벼운, 여고생 특유의 탄성들이 이어지니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학생들이 어떤 종류의 감성을 편하게 느끼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경험.

편안하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감성을 울리면서도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을 전달하기.
그러니까, 조금씩 역치를 늘려가기라고 표현해야 할지도?
그러면서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유머감각을 유지하기.
어려운 일이다.

나의 수업의 패턴에 이제는 익숙해진 아이들과 함께,
그런 만큼 더더욱, 좀 팽팽한 긴장감으로
수업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작년엔, 뭘 해도 감동이 없었다.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을 읽어도
간디의 물레를 읽어도
눈길을 읽어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는데 그 이야기의 무게에 오히려 내가 눌리는 느낌이었달까.
서로가 익숙해져 있으니 내가 하는 이야기도 뻔하게 들릴 것 같아서였는지,
내가 스스로 그 이야기에 푹 젖어서 문제의식을 전달하기보다는
나와 학생들과 이야기주제가 비눗방울처럼 붕 떠 있었던 느낌이다.

이 교과서 안에 들어있는 것은 내가 오랜 기간 공들여 갈고 닦아 길을 냈던 텍스트들인데,
내년부터는 교과서가 바뀌니 이 텍스트들을 들고 학생들을 만날 일은 한 십 년 간 없을 것 같다.
그런 만큼, 애틋하게, 다시 시작해야겠다.
처음처럼이 아니라 마지막처럼,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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