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성’ 교사-학생의 거침없는 대화
학교에선 말할 수 없는 솔직한 성과 사랑이야기
<여성주의 저널 일다> 우완
<필자 우완 선생님은 여성주의 교사모임 ‘삐삐 롱스타킹’(cafe.daum.net/teachingirls) 활동가입니다. –편집자 주>
 
학교의 안팎에서 이성 또는 동성과 연애관계를 맺으며 활발히 ‘사랑’하고 있는 10대들. 그리고 이들을 말릴 수도 없고 칭찬할 수도 없어, 이를 바라보는 심정이 복잡한 교사들. 양측이 한 자리에 모였다.
 
지난 17일 <‘사랑하는’ 학생들과 내숭 뚫고 하이킥!>이라는 제목으로 여성주의 교사모임 ‘삐삐 롱스타킹’과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팀이 공동 개최한 워크숍에서, 10대들과 교사들이 모여 “10대의 성과 연애”를 주제로 솔직한 대화를 나누었다.
 
▲지난 17일 열린 워크숍 <‘사랑하는’ 학생들과 내숭 뚫고 하이킥!>  © 촬영-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팀

“10대 연애의 진실과 거짓”
 
행사장인 전국국어교사모임 사무실에 먼저 도착한 10대들은 삼삼오오 모여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10대들이 이렇게 왁자지껄하는 곳에, 교사들도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학교와 어른들의 규범을 훌쩍 뛰어 넘어 이미 왕성하게 ‘연애’와 ‘성’을 즐기고 있는 학생들과, 보수적 학교규범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한 교사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드디어 시작된 생생토크 <10대 연애의 진실과 거짓>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는 지속됐다. 한 중학교 교사가 “대학생과 사귀게 되었다는 중3학생에게 ‘남자는 다 늑대니까 조심해’ 라는 말밖에 해줄 수 없어 답답했어요.” 라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정작 17살 청소년들은 “대학생이래 봤자 네다섯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그게 뭐 많이 차이 나는 건가요?” 혹은 “어른들은 열살 이상 차이 나는 연애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잖아요.” 하고 되물었다.

 
한 십대는 “저는 성소수자인데요” 라고 운을 뗀 뒤 “여섯 살 위인 제 대학생 (동성)애인과 성에 관해 솔직하게 다 이야기해서 속 궁합이 잘 맞는 것 같아요.” 라고 말해 좌중을 유쾌하게 뒤흔들었다.

 
청소년들은 이어 10대가 연애한다고 말하기만 하면 무조건 말리려 드는 교사들과 부모에 대해, ‘언제부터 우리에게 그렇게 관심이 많았다고!’ 하면서 서운함과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교내에서 공공연하게 스킨십을 하며 사귀던 커플이 학교 측으로부터 강제 전학을 당한 일, 이성교제를 시작했다고 담임선생님에게 말하자 다짜고짜 ‘부모님에게 알리겠다’고 해서 난처했던 일 등을 이야기하며, 교사들과 연애 문제를 터놓고 말할 수 없는 학교의 보수적인 문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십대도 있었다.

 
연애와 섹스에 대해 서로가 궁금한 것들

 
십대들은 이러한 이유로 교사들이 자신의 연애상담 대상이 되기 어렵다고 말하며, 연애와 성에 대한 고민을 해소하는 주된 통로로 또래집단과 커뮤니티, 인터넷 등을 꼽았다.

 
고민의 내용도 다양했다. 한 사람과 진득하게 사귀지 못하고 상대를 자주 바꾸게 되는 것에 대한 고민, 남자친구에게 성적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옳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론 망설이게 되는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갈등, 육체관계에만 몰두하는 연애관계를 다른 관계로 전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미처 10대들의 고민일 거라곤 상상하기 어려웠던 내용들을 생생토크에서 솔직하게 털어놓아, 참가한 교사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어진 자유질문 순서에서는 교사들이 10대들에게 물었다. 대체 한 반에 몇 퍼센트 정도의 학생들이 연애하고 성관계까지 맺는 것인지, 학생들이 사귄다고 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10대들이 성관계를 맺는다면 어디에서 맺는지 등. 이 같은 질문에 대해 10대들은 자신이 경험하고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답변해주는 시간을 가졌다.

 
교사들 간에도 서로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10대들과 ‘연애와 성에 관한 이야기’를 터놓고 하고 싶어도, “젊은 여교사”가 이 문제를 솔직하게 학생들과 대화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학교에선 편견 어린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다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교사들은 학생들과 ‘성’에 관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학교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학생들의 성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하면 무조건 교사 책임이 되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십대들과 솔직한 대화를 통해 실마리를 찾다

 
이번에는 10대들의 연애 고민을 4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이에 대한 상담을 실습하는 <연애팍 도사> 코너가 이어졌다. “동성 친구에게 끌려요”, “상대방과 스킨십의 진도가 달라요”, “친구가 저를 스토킹해요”, “10대의 섹스는 죄인가요?” 이상 4개의 주제를 가지고 교사들과 10대들이 모둠으로 나뉘어 어떻게 고민을 해결할 것인가 토론하고 발표했다.

 
교사들은 해결책을 찾아 고심하는 반면, 10대들은 ‘동성 친구에게 끌려서 고민이라면 동성 친구에게 분위기 있게 고백하는 방법을 알려주자’ 식의 발랄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여자도 솔직하게 스킨십에 대한 욕구가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학교에서 걸레라고 소문나는 것은 순식간’이라고 털어놓은 여학생의 말을 통해서, 남학생 중심의 왜곡된 성문화가 여전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어른들도 제대로 피임 안 하면서 10대들에게만 왜 꼭 피임, 피임을 그렇게 강조하느냐’고 되묻는 한 청소년의 말에,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상담 실습 이후에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이향심 상담원이 <성폭력사건 지원의 A부터 Z까지>라는 내용으로, 여성주의교사모임 조영선 교사가 <사랑하는 학생들과 학교에서 살아남기>라는 주제로 미니 강연을 열었다. 두 사람은 교사들이 학생들의 현실을 못 본척하고 부정하며 무조건 막는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지적하며, 학생들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선생님들하고는 대화가 안 통한다’, ‘학생들이 연애하면 걱정이 앞선다’고 말문을 텄던 교사들과 10대들이었지만, 대화가 무르익다 보니 같은 여성 혹은 남성으로서 연애와 삶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서로 공감하며 따뜻하게 행사가 마무리됐다. 솔직한 10대들의 고백 덕분에 연애에 대해 한 수 배우고 가는 교사들의 모습이, 워크숍 장소에 처음 등장했을 때보다 밝아 보였다. 문제의 실마리는 말문을 트고 대화를 시작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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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2/22 [00:49]  최종편집: ⓒ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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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을 ‘교권’문제로 보면 대책이없다

[좌담] 여교사 성추행 동영상이 남긴 것
 
여성주의 저널 일다 우완


<여러 남성이 한 여성을 둘러싸고 어깨에 손을 올리며 ‘사귀자’고 종용한다. 이를 피하려고 여성이 자리를 옮기자, 놀려대며 다시 에워싸고 팔을 잡는다. 그리고 이 상황을 카메라로 찍어 외부에 공개한다.>
 
이 런 일이 발생했다면, 누가 보아도 명백한 성추행이다. 그런데 이 일이 교실에서 남학생과 여교사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는 이유로, 성추행이나 성희롱이라는 말을 꺼내기 조심스러워진다. 위 상황 속에서 분명히 존재하는 남성-여성 간의 ‘성별 권력’ 관계를 우리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탓이다. 하지만 성별 권력관계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사건의 본질이 은폐될 수밖에 없다.
 
사 회를 떠들썩하게 한 소위 “여교사 성희롱 동영상” 사건 이후 오가는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교실 성폭력 예방하기 위한 방법’보다는 침해 당한 ‘교권’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때마침 추진 중인 ‘교내 휴대폰 사용금지 조례’ 제정움직임과 맞물려, 교권회복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철 지난 논쟁인 ‘남교사 할당제’를 도입하자는 말도 나온다.
 
‘성별 권력권계’라는 본질 은폐해선 안돼
 
▲ 9월 19일, 여성주의 교사모임 <삐삐 롱스타킹>과 청소년인권활동가 네트워크 여성주의팀이 모여 '여교사 성추행 동영상' 사건을 둘러싼 논의와 대책에 대한 좌담을 진행했다.
19 일, 이번 교실 성추행 사건을 다시금 살펴보고 대책을 모색하기 위해 필자가 속해 있는 여성주의 교사모임 <삐삐 롱스타킹>(이하 교사모임)과 청소년인권활동가 네트워크 여성주의팀(이하 청소년네트워크) 구성원들이 모여 대담을 진행했다.

 
우 리는 먼저 이번 사건이 ‘교권침해’사건으로 일반화되어선 안 된다는 점에 공감했다. 교사모임의 정주연씨는 ‘교권’이 보장되던 1970~1980년대에도 “여교사에 대한 남학생들의 성희롱은 늘 있어 왔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잘못된 교실문화를 개선한답시고 학생들을 억압하거나 통제할 근거를 만들어 내는 건, “엉뚱하고 무책임한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청소년네트워크 엠건씨도 “성희롱의 본질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고, 어린애가 교사들한테 기어 올랐다는 것에만 집중된 언론의 태도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교 사모임의 조영선씨는 기존에 여교사들이 겪은 성희롱보다 이번 사건이 크게 다루어지는 이유는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 공간에 유통시킨 것이 학교집단에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영선씨는 이 사건의 여파가 핸드폰 사용금지 조례 제정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을 우려했다.
 
또한 대담자들은 이번 사건이 ‘교권침해’라고 뭉뚱그려지면서, 정작 사건 당사자인 여교사 본인의 목소리는 사라져 버렸다는 점에 주목했다.
 
청소년네트워크 한낱씨는 “우리 사회가 성폭력이 문제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막상 사건을 다루는 시선에서는 여성이 배제되는 일이 잦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젊은 여교사의 ‘위치’
 
사건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본인이 자신이 입은 피해에 대해 당당하게 나서서 이야기하기란 아직도 어려운 일이다. 특히 비정규직 여교사의 경우라면, 학교사회에서 자신의 피해를 발언하기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교 사는 단일한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이 아니라, 다층적인 권력관계 망 속에 놓여 있는 집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권’이라는 말로 교사집단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기간제’로 일하고 있는 젊은 여교사인 만큼, 실제로 교직사회 안에서 이 교사의 정당한 권리가 얼마나 보장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아야 한다.
 
교사모임에서는 전형적인 신규 여교사의 입장에 대해서 “아가씨 선생님”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학교에 처음 발령받았을 때 처하게 되는 교무실의 현실은 배려와 우대, 그리고 무시와 하대가 묘하게 섞여 있는 분위기다.
 
일례로 남학생들이 있는 앞에서 “여자선생님은 약하시니까 너희들이 잘 도와드려!”라고 말하는 선배 남자교사의 ‘배려 아닌 배려’는, 학교에서 여교사의 위치를 더욱 의존적이고 나약한 것으로 만들 뿐이다.
 
청 소년네트워크 활동가인 십대들도 입을 모아 ‘남자선생님들이 여자선생님들을 학생들 앞에서 귀엽지 않느냐고 칭찬한다’, ‘학교에서 남자선생님이 하는 역할과 여자선생님이 하는 역할이 따로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학교 내 가부장적 교사문화를 이야기했다.
 
성적 긴장감을 ‘가족적’이라고 포장하는 학교
 
학교운영이 가부장적 가족모델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남교사가 해야 할 역할과 여교사가 해야 할 역할을 나누어, 성별 분업구조로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한 예로 지적됐다.
 
또 한 남자교사들은 엄하게 혼내고 규율을 잡는 역할을 한다면, 여교사들은 학생들을 보살피는 역할을 하는 분위기도 엄연히 존재한다. ‘남교사 할당제’를 요구하는 쪽에서 ‘여교사는 엄마, 남교사는 아빠역할이니 모두 균형 있게 존재해야 한다’는 논리를 드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교 사모임의 조영선씨는 이러한 가부장적 가족모델에 기반한 학교문화가 ‘교권을 노동권으로서 당당히 인정받을 수 없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가부장적인 문화는 엄연히 존재하는 남학생과 여교사 사이, 남교사와 여학생 사이의 성별 권력관계, 그리고 성적 긴장감을 ‘가족적’이라고 포장하는 기반이 된다.
 
청소년네트워크의 공기씨와 엠건씨는 학교에서 담임교사와 ‘아빠와 딸’ 같은 사적인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교사가 자신의 일상생활에 대해 강한 규제를 행사하게 되어 당황했던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 학교 내 교사 성추행 사건’은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학교문화와 맞물려 있어, 다양한 논쟁의 지점을 던져주고 있다. 여성주의 교사모임 <삐삐 롱스타킹>과 청소년인권활동가 네트워크 여성주의팀에서는 이날 논의결과를 담은 입장을 공동 발표하기로 했다.
 
‘학교 내 성폭력’ 근본적 문제제기 필요해
 
사 실 남학생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여교사의 이야기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의 고정 레퍼토리 중 하나다. 최근 여교사와 남학생 사이 로맨스도 드라마나 영화에서 몇 번 다루어졌다. 이번 ‘여교사 성희롱 동영상’ 사건은 어찌 보면 흔한 ‘여교사 수난시리즈’의 변주곡인지도 모른다.
 
이 번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하려면 학교 내 성폭력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교장, 교감, 부장교사들이 신규교사에게 행하는 직장 내 성희롱, 남교사에 의한 여학생 성추행 문제 등도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 런 논의 없이 ‘교권을 강화’한다는 것은, 학교 안의 남성적인 훈육방식을 강화한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해법은 학교문화의 가부장성을 타파하고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이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좌담이 끝나고 청소년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한 청소년이 건넨 후기다. 스스로 ‘10대 여성주의자’라고 말하는 십대의 생생한 목소리를 경청해보자.
 
< 이번 사건이 터지고 ‘문제는 교권의 추락’, ‘인성교육 강화해야’ 등으로 몰리는 반응을 보면서, 이것이 한 여성에게 가해진 성적 폭력이란 사실엔 대부분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감히 ‘교사’에게 기어오른 학생이라는 점에서, 극심한 반감을 느끼고 있을 뿐.
 
좌 담 자리에서 ‘교권의 주어는 남교사’라는 말을 듣고 이야기 나누는 동안, 이런 흐름들이 꺼림칙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더 명확해졌다. ‘여교사 성희롱 동영상’ 사건의 대책으로 교권 신장을 주장하는 담론은 ‘누구를 위한’ 목소리인가? 적어도 이것이 학생들을 위한 목소리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당사자인 교사조차 배제시킨 채 이야기가 진행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듯, 심지어 여교사들을 위한 목소리도 아니다.
 
교 권을 사랑하는 분들께 끝으로 몇 마디! 교사들이 겪는 인권침해 때문이라도 교사의 권위가 서야 한다? 교사들의 고통이 말 안 듣는 못된 학생에게서 기인한다면, 학생들의 고통은 권위적인 교사들과 억압적인 학교와 사회로부터 기인한다는 걸 무시해선 안 된다. ‘교사들의 현실적 고통이 학생들과 대립한다고 해결될 수 있느냐?’ 물었을 때, 그러한 해법은 학생들을 때려서 내 고통을 없애는 전형적인 강자의 방식밖에 안 된다는 걸 꼭 기억하시길.> 





기사입력: 2009/09/23 [00:46]  최종편집: ⓒ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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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쓴 글.


여교사에 대한 편견 부추기는 언론
‘남교사 할당제’에 보내는 찬사 우려돼
 
여성주의 저널 일다 우완

<필자 우완님은 현재 고등학교 교사로 재임 중입니다. -편집자 주>


지난 7일, 서울시 교육청은 초등 및 중등교원 신규 임용에서 남성 교원을 30%까지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교사가 ‘너무 많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신문과 방송에서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교사 ‘여초’ 현상을 뉴스거리로 다루고 있다. 여성 교사가 다수를 차지하다 보니 학생들 인성교육 면에서나 학교운영 면에서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급기야는 ‘남성 교원 할당제’라는 제도를 마련하겠다는 목소리로까지 번졌다.

서울시 교육청의 발표가 있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주요 일간지 사설에는 일제히 찬성 의견들이 실렸다. “남성교사 적정선 확보해야”(세계일보), “남자교사 임용 늘리는 방안 필요하다”(한국일보), “남교사 비율 높일 필요 있다”(국민일보) 등이 그것이다. “교사 남녀 불균형 더 방치해서는 안 된다”(매일신문), “남성교사 임용확대 불가피하다”(서울신문) 등의 표제에서는 절박함마저 느껴진다.

여교사의 학생지도력 문제 삼다니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된다는 여성 교사 중 한 사람으로서, 이런 보도들이 불쾌하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이렇다 할 연구나 근거 자료 없이 여성 교사에 대한 편견을 거르지 않고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은 ‘교직의 여성화’로 인해 남학생들의 성 역할 사회화 과정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하면서,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여자교사가 남학생의 특성과 고민을 다 이해하긴 힘들 것”(한국경제)이라고 단언한다.

여성 교사들이 너무 많아지면 “생리 휴가, 임신과 출산, 육아 휴직 등이 많아지면서 계약직 교사를 확보하는 것도 어려워 학교 운영이 힘들다”(중앙일보)며, 여성들이 노동현장에서 보장 받아야 할 최소한의 권리에 대해서조차 부정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소개하고 있다.

“교내 폭력, 왕따, 도난 사고 등은 여교사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점이 많”고(중앙일보),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고학년 남학생을 여교사가 다루지 못해 벌어진 해프닝이나 폭력을 휘두르는 남학생과 여교사간 갈등”이 벌어지고(국민일보) 있다는 둥, 여성들의 학생 지도력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언론의 이 같은 보도태도에 대해 실제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한 여성으로서 통탄할 지경이다. 교육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는 언론이, 교육 현장에 있는 여교사들의 역할을 이렇게 깎아 내림으로 인해 어떤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인지,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다.

여교사는 엄마, 남교사는 아빠?

이들 보도와 사설의 주장에서, 가장 주된 근거로 거론되는 것은 교직의 여성화로 인해 학생들의 전인교육 측면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조선일보는 서울시 교육청의 발표가 있은 후 “가정에는 엄마 아빠가 있듯 학교에서도 남녀 교사가 적절히 섞여 있어야 한다”고 말한 초등학교 교사의 찬성 의견을 소개했다. “아이들이 여교사는 엄마로, 남자교사는 아빠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 초등학교 교감의 의견도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견해는 아빠와 엄마로 이루어진 소위 ‘정상 가족’에서 자라야만 ‘전인교육’이 가능하다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깔고 있다. 그만큼 우리 교육 현장에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횡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이 아닌 다양한 다른 가족들에 대해서 ‘비정상’ 혹은 ‘결손’이라고 보는 차별의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서울신문은 사설에서 “남녀의 역할 모델은 성장기 어린이, 청소년이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부분”이라며, 밥그릇의 문제가 아닌 교육적 관점으로 이 문제를 접근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 또한 ‘남녀의 성 역할 구분은 바람직한 것’이라는, 성 역할 고정 이데올로기를 ‘교육적 관점’이라는 이름으로 치장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이 교육적 관점이라고 포장하고 있는 성 역할 고정 이데올로기는 이미 우리 나라 교육 과정에서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는 구시대적 발상이다. 7차 교육과정으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양성평등 관점’을 도입, 각종 교과서 삽화에서는 가사를 돌보는 엄마와 직장에 나가는 아빠의 모습을 삭제하기로 했고, 사회 교과서에서는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은 고정된 것도 아니고 반드시 닮아야 할 것도 아님을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성 역할 고정관념’ 드러내는 언론

교직의 여성화를 문제라고 보는 입장에서는 또 다른 근거로, 학교업무 진행 및 운영 면에 문제가 생긴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물건을 나를 때 남자 교사가 필요”(조선일보)하고, “각종 행사 준비과정이나 수련 활동, 운동회 등에선 아무래도 남자 교사의 역할이 필요”(중앙일보)하다는 것이다. 학교에 남자 교사가 너무 적어 운동회 때면 운동장에 혼자서 줄을 긋느라 너무 힘이 드니, 어서 남자 동료를 충원해 달라는 웃지 못할 발언도 실려 있다.

만약 ‘왜 학교를 운영하는 데에 남성 교원이 꼭 필요한가’라고 진지하게 물을 경우, ‘아무래도 힘을 쓸 일이 많다’고 얼버무릴 작정인가? 그렇다면 ‘남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근력’이 필요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교사로서 해야 할 여러 행정업무들은 결코 한쪽 성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혹시라도 업무 자체가 성별로 나뉘어있다면,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성별 분업의 문제를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개선해야 할 일이지, ‘여자가 너무 많아서 학교 경영하기 힘들다’고 성차별적인 주장을 할 일이 아니다.

이쯤에서 돌이켜 보아야 할 사실은, 교직에 여초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도 교장의 절대다수, 교감의 다수가 남성이라는 점이다. 남자아이들이 남성답게 자라나지 못할까봐 걱정하기 이전에, 학생들이 ‘남자는 윗사람, 여자는 아랫사람’이라는 잘못된 성 역할 고정관념과 성차별 의식을 배우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지 않은가?

교장은 ‘남성’, 비정규직 교원은 ‘여성’인 현실

만약 언론이 교육자의 성별 비율에 대해 진정으로 관심을 갖는다면, 직종 별 근로환경과 고용형태, 임금, 사회적 대우의 문제를 성별 불평등의 문제와 연결시켜 종합적으로 분석해보아야 할 것이다.

학교 ‘비정규직’ 교원의 경우 여성이 대다수이고, 고등학교 교사와 대학 교수의 성별비율은 남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왜 교육적으로 문제 삼지 않는가. 나아가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교사 비율이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에 대해선, 왜 남자어린이의 전인교육 문제를 우려하지 않는가.

아직도 교육 현장에선 여성에게 폭력적인 교무실 문화로 인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 여교사들이 있고, 남성 교사만을 선호하는 사립학교 재단의 편견으로 인해 부당하게 교육현장으로 진출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있다. 언론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알리고 공정한 시각으로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기사입력: 2007/04/12 [22:30]  최종편집: ⓒ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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