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아이들 | 4 ARTICLE FOUND

  1. 2011.04.25 우리 반 호박씨 심던 날 2
  2. 2010.12.06 잊고 있던 것들을 떠올릴 때가 왔다.
  3. 2010.10.04 우리 반 아이들 3
  4. 2010.09.14 고마운 아이들






새 학년을 시작하며 꼭 해보고 싶던 일이 있었다. 
우리반 교실 창가에 토마토를 키워 익으면 반 아이들과 따 먹는 일.
작년 연수에 가서 그렇게 하시는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특히 강제 야자가 실시되면서, 학생들이 교실에 갇혀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이런 거라도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막상 학년이 바뀌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입시로 마음이 바쁜 3학년들이 관심을 가져줄까?
나부터도 한번도 식물을 키워본 적이 없는데 괜히 키우다 다 죽으면 어떡하지?
반에 식물을 키우면 벌레가 생기는 건 아닐까? 그럼 애들이 싫어할텐데...
화분하고 씨는 산다고 하더라도, 흙은 어디서 나지? 퍼오나? 어디서? 어떻게? 무거울 텐데? 너무 요란스럽지 않을까? 
게다가 우리 반으로 북향 교실이 당첨. 북향에서도 식물이 자라나? 형광등 불빛만으로도 광합성이 되나? 

걱정을 하다가 시골에서 화초 키우기에 전념하고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트위터에도 올렸었던 그 대화는 이렇게 진행됐다.
"엄마, 나 올해 애들하고 토마토 키워서 먹으려고 했는데 북향 교실이 걸렸어. 어떡하지?"
"북향에선 안 자라."
"아무 것도 안 자라?"
"안 자라. 상추 같은 거나 좀 자랄까."
"상추 뜯어먹는 건 이상하잖아. 어떡하지?"
"뭘 어떡해 그냥 사서 멕여 뭘 키운다구"
"..."

이번에는, 학교 텃밭에서 매년 학생들과 호박을 키워온 지 오래되신, 선배 선생님을 찾아갔다. 
같은 국어과 선생님이시고, 국어과에서 가장 연세가 많으신 분이시고, 고풍스런 예절교육으로 유명하신... 분이시다.
"선생님, 제가 올해 학급에서 뭘 좀 키워보려고 하는데요."
"하하하하하, 우 선생, 그렇지, 그거야말로 아주 좋~은 인성 교육이지! 그만한 교육이 없다구!"
"그런데 저희 반이 북향 교실인데 뭐가 좀 자랄까요?"
"허어, 북향이라."
"예."
"햇빛이 들어야, 이 식물이 자랄 수가 있는데,"
"예."
"조금이라도 들어야 자랄 수가 있는데... (고개를 절래절래) 북향이면 힘들어요." 
만약에 선생님이 우리 반 수업을 하신다면 우리 반 아이들이 같이 호박을 키울 수 있을 텐데 아쉽다고 했더니,
그럼 나중에 견학을 올 기회를 주시겠다고, 그때 데리고 나와서 보라고 하신다.

3월이 시작되고 학기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역시나 그 선생님이 수업을 들어가시는 반에서는, 
어느날은 학생들 모두 종이컵을 가지고 구멍을 뚫고 (처음에 종이컵에 씨앗을 심어 싹을 틔운다)
조금 후엔 싹이 난 종이컵들이 쪼르르 반 창가에 줄을 선다. 
나는 부러운데, 그 반 아이들은 입술이 부루퉁하다. 

그러더니 지난 주 월요일엔가 선생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조금 전에 우리반 회장 불러서 호박씨 심는 법 알려주고, 우리 반도 키우기 시작하게 지도하셨다고, 그렇게 알으라고 하신다.
나는 속으로, 우리반 애들이 싫어할텐데... 어쩌지... 하면서도 "정말요? 고맙습니다." 하고는 걱정을 했다.
아니나다를까 종례를 들어갔더니 반 애들은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싫다고 난리.
"아니야~ 내가 매년 보는데 해 보면 진짜 재밌어."
"뭐가 재밌어요! 으아늘ㅇ마ㅓㅗㅈㄷ가ㅓ"
"나중에 호박이 이따 만해져! 완전 신기해!"
하면서 달래봤는데도 왜 해야 되냐고 난리다. 
나보고, 안 하게 좀 말해달라고 하려던 참이었는데 담임까지 한통속인걸 알고는 실망한 눈치. 
게다가 이노무 담임이 맨날 별거 아닌 걸 가지구 '완전 재밌어 완전 신기해' 하는 걸, 아이들은 이미 다 알아차려버렸다.

다음날 선생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저 종이컵들을 건네주신다.
싹이 어떻게 텄는지, 요건 떡잎이고 요건 본잎이고, 설명해주시다가 
"선생님, 물은 어떻게 주나요? 그냥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놔두고 그러나요?"
"아, 비 맞히면 좋오치. 그런데 이 호박은, 물을 그렇게 많이 안 먹어요. 삼일에 한번 정도 주라구. 그런데 수도물을 그냥 틀면 흙이 패이니까, 요렇게, 손을 위에 올려서 손가락 사이로 물이 떨어지도록,"
"아, 이렇게요?"
"그렇지. 마치 비가 오듯이 말이야."
"예 고맙습니다. 저희 반 아이들에게 가져가서 이렇게 크는 거라고 보여줘야겠네요." 

이걸 보여주면 반 아이들이 좀 신기해 할 것 같아서 마침 수업이 있길래 들고 올라갔다. 
"선생님 그게 뭐예요?" 
"어, 호박이야."
"선생님이 키웠어요?"
"아니, *** 선생님이 선물로 주셨어. 인제 느네도 씨 심으면 이렇게 싹이 나는거야. 이렇게 떡잎이 두개 있으니까?"
"쌍떡잎식물" 
"그렇지. 요 사이에 작은 잎이 본잎이래. 그리구 얘는 아직 씨가 안 떨어졌대. 요 씨앗으로 흙을 밀고 올라온거야."
"우와 신기하다."
"그치, 이쁘지. 인제 이게 커가지구, 꽃도 피고, 호박도 자라고 그래."
"호박 자라면 누가 가져요?"
"니네가 가지지. 같이 호박죽도 끓여먹구."
그러고는 고백을 했다. 사실은 내가 하고 싶어서 *** 샘 하시는 걸 부러워했더니 이렇게 됐다고. 
3학년 생활 너무 각박할 것 같아서 교실에 이런 것 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나는 잘 못하겠어서 어찌어찌 하다보니 이렇게  됐다고. 

그러고는 그날 수업 다 끝난 후 자습시간에 흙을 퍼담으러 나갔다. 
나도 잘 못하지만 애들 종이컵에 흙을 다 퍼담아 줬다.
허리를 굽히고 고생하는 걸 보더니 반 애들이 나더러 후회되지 않느냔다. 허허허 웃어줬다.
다 마치고 교실로 갔는데 교실에 애들이 없다. 
애들 다 어디갔냐고 물으니 컵에 씨앗을 심고 화장실에서 물 주느라 안 온단다.
"아니 물 주러 갔는데 뭐가 이렇게 오래걸려? 얼른들 오라고 해."
"쌤 지금 물 주는 줄 엄청 길어요. 애들 다 컵 위에 손바닥 펴고 물 준다고 요러고(빗물 떨어지듯이) 있어요."
"아유 그냥 대충 주지!"
"안 돼요 싹 나려면 정성이 중요하댔어요." 
하더니 교실로 온 애들은
각자 자기 컵에 이름 이쁘게 쓴다고 경쟁이 붙었다.
누군가 하트 스티커를 붙인 걸 보더니 자기도 붙인다고 난리를 피우지 않나,
씨앗에 천사라고 이름을 붙이면 싹이 더 잘 난다고 하지를 않나......
"야! 호박씨 남았는데 하나씩 더 심을 사람!"  하고 회장이 외치자 
서로들 하나씩 더 얻겠다고 난리가 났다. 
'모든 생명은 암흑속에 잉태된다'고 주워듣고서는 사물함 깊숙이 컵을 넣는데
그 손길에 정성이 가득. 씨앗을 틔우겠다는 염원이 가득.

중간고사를 일주일 앞둔 차에, 이런 이벤트가 생기니,
아이들이 '물을 준 화분처럼' 웃었다.
나도 한달 반만에 모처럼 활짝 아이들과 웃었다. 
이래야 우리반이지, 싶은 날이, 올해 처음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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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권 초기, 이런 내용이 담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벌써 초기라고 부를 만큼 시간이 지나긴 했구나) 
" ... 10년이 지났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그동안 잊고 있던 것들을 떠올릴 때가 왔다. 
보도블럭 깨는 법, **병 만드는 법, ... "
(너무 다시 읽고 싶은데 아무리 검색해도 안 나온다)

내가 저러겠다는 건 아니고,
세상이 달라지면 달라진 대로 적응하면서 살아야 하는 법.

오늘 마지막 야자를 기념하여 아이들에게 간식을 사주면서,
내가, 
강제 야자 싫고 강제 보충 싫다고 반대한다고 오만 땡깡은 다 부리면서
아이들에게 그에 맞는 추억을 만들어 주는 데에는 너무 인색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급 구성원 전원이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붙박이로 제자리에서 공부하던 시절,
빼곡히, 일 년동안 일고여덟권을 써 내려가던 모둠일기가 있었고
친구와 마주 앉아 나누어 먹던 아침 저녁 두 개의 도시락이 있었고
밥 먹고 양치하고 나와 칫솔 든 채로 빙빙 돌며 산책하던 꽃밭이 있었고
야자 시간, 숨어서 속닥거리던 지하실이 있었고
생일 축하를 빙자하여 온갖 미술 솜씨 글 솜씨를 뽐내던 생일롤링페이퍼(거의 책 한권이 되던)가 있었고
그리고 
학교 근처 집에서 저녁을 먹고 샤워도 하고 옷도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열시 종례를 하러 돌아온 담임쌤이 있었다.
담임쌤은 가끔 (거의 일주일에 한번?) 간식을 사서 돌렸는데 
당시 최고 인기 간식은 왕따시만한 핫도그였다. (그걸 늘 먹고도 살이 안 찌던 그 시절이 그립다 ㅜㅜ)
나는 위염으로 늘 고생하면서도 그 핫도그는 너무 맛있어서 꼬박꼬박 받아먹었고
학교 앞 핫도그 가게 아줌마는 그걸 너무 많이 팔아서 재벌이 됐다는 소문이 있었다. 
(아줌마가 학생들이 너무 고마운 나머지 핫도그 박스에 사랑한다고 적어서 보낸다는 이야기도)

그리고 고3 마지막 야자를 하던 날
담임쌤은 초코파이를 쌓아 케이크처럼 만들어서 가지고 왔던 것 같다.
우리 이렇게 모여서 야자 하는 거 이제 마지막이라고. 3년 동안 고생많았다고.
그리고 나는 '야자 이제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거냐'며 엉엉 울어서 친구들이 혀를 찼던 기억도 난다. 
난 단지 세월이 이렇게 흐른다는게 슬펐을 뿐인데. 

야자의 모양새는 비록 그 때와 같지 않아서,
마지막 야자라는 말이 자아내는 비감은 그 옛날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오늘 내가 사 준 도넛을 먹으며 
내가 누렸던 작은 추억의 한 조각을 나눌 수 있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제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 하나씩 떠올려,
팍팍한 학교 생활을 즐기는 법들을 하나하나 되살려 봐야겠다.
아이들에게는 학교의 입장에 반대하는 의견을 불평하며 말해주는 담임보다는, 
지금의 자리에서, 조금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있는 시공간을 만들어 주는, 그런 담임이 필요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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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시험이 끝나고 종례를 하고 청소를 하고 있는데 
교실에 우우 여기저기 몰려 있는 아이들 가운데서 흑흑 우는 소리가 난다.
"얘, 누가 우니?"
"선생님 ㅇ이 울어요~"
아이고 울긴 왜 울어 ㅇ 왜 울어? 밀려썼어? 계산 틀렸어? 하고 쪼르르 갔는데
애들이 옆에서 선생님 ㅇ은 수학 공부만 죽어라 했어요, 한다. 
아~ 공부 너무 열심히 했는데 성적 안 나와서 우는거야? 했더니 울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아이구 속상하겠네 주저리 주저리 어쩌구 저쩌구 ㅇ아 너무 좌절하지 말구 맘 크게 먹어야 돼~
하고 돌아섰는데 

교실 저 편에 혼자 서 있던 한 아이가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서서 나를 부른다.
선생님
응?
선생님 저요...
응? (집이 어려운 아이라 집에 무슨 일 생겼나 하고 가슴이 덜컥, 그런데)
저도 시험 못 봤어요......
아이구 어쩌나 하면서 꼭 안아주었는데 아이 몸이 들썩들썩한다.
우는 아이 눈을 들여다보면서 괜찮아, 별일 아니야, 잊어버리구 다음 거 준비해야돼, 하는데
여기저기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이들부터
허탈한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뜨리고, 선생님 전 눈물도 안 나와요, 하는 애까지
수학이 뭐길래 교실이 이렇게 초토화가 되었나 싶어서 속상하기도 하면서
그런데 또 사실 이 상황이 좀 우습기도 하고 
아이들이 귀엽기도 해서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한 삼십 분이 지나고 집에 갈 아이들은 가고 남을 아이들은 남아서 교탁을 뺑 둘러쌌다.
ㅇ은 아직도 조금씩 눈물이 나는 모양.
나는 본격적으로 "좌절 금지"를 주제로 썰을 풀고 있는데
갑자기 ㅇ이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빵, 터뜨린다.
"저 '아 맛있다' 뺐겼단 말이에요!"
눈이 똥그래진 나. 
그게 무슨 소리야?
그랬더니 옆에서 ㅇ의 친구들이 본격적으로 설명시작.

내용인즉슨
ㅇ은 같은 우리반이면서 같은 동네 사는 ㄱ과 수학 학원을 함께 다니는데
ㅇ이 요즘 학원의 수학샘을 짝사랑 중. (수학 공부만 한 이유도 이것임.)
요즘 광고에서 신민아가 한다는 "아 맛있다"를 수학샘 앞에서 신민아와 똑같이 해서 예쁘게 보이고 싶었는데
그래서 연습도 백번 넘게 했는데 (영상 통화로 아이들한테 똑같다고 인정도 받았는데)
그만 학원에서 ㄱ이 먼저 해버렸단다. 
질문도 준비해갔는데 ㄱ이 질문을 많이 해서 자기는 학원 샘이랑 이야기도 못하고
시험도 ㄱ이 더 잘봐서 너무 분통이 터졌단다.  

ㅇ이 "어제는 둘이 하이파이브 하는데 짜증나 죽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
하면서 본격적으로 꺼이꺼이 우는데 
나는 허리가 꺾이도록 까르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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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식을 먹으러 급식실에 올라갔다.
아이들과 같은 곳에서 밥을 먹는 석식은 늘 조금은 불편하다.
그래서 아예 떨어져서 먹기도 하고, 우리 반 아이들 사이에 껴서 먹기도 하는데,
오늘은 자리가 마땅치 않아 평소 안면이 있던 3학년 아이 둘이 먹고 있는 자리 옆에 앉았다.
한 명은 이름도 알고, 작년에 CA반도 같이 했던 아이(A)고,
한 명은 낯은 익은데 이름을 모르는 아이(B)다.

아이들이 나와 밥을 먹기 위해 찾아낸 공통의 화젯거리는 '남자쌤'이다.
내 옆자리에 앉은 남자 쌤에게 수업을 듣는데 무지 좋단다.
그 쌤에 대해 아는 거 없냐고 나에게 막 물어본다.
사실 난 대화를 몇 번 해본 적도 없는, 별로 친하지 않은 분.
그래서 뭘 말해줄까 하다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시는 분 같다"고 말해준다.
그랬더니 그 이름을 모르는 아이 B가 갑자기 "그럼 나도 그 쌤 다니는 교회 따라가야겠다" 한다.
CA를 같이 했던 아이 A는 "교회를 그렇게 따라가면 어떡해!"하고 면박을 준다.
B는 "왜, 이래봬도 나도 세례까지 받은 사람이야!"한다.

그러더니 B가 갑자기 나에게 말한다.
"쌤, 저 쌤 때문에 세례 받았어요."
"응?!?!?! 무슨 말이야?!?!"
"왜 작년에 고난주간 기도회 때 쌤들 나와서 하루씩 이야기했잖아요, 그 때 쌤도 하셨잖아요. 그 때 이야기 듣고요."
"정말? 나 그 때 하나님 이야기 하나도 안 하고 우리 엄마 이야기만 하다가 끝났는데?!"
"그래도요, 그 때 쌤 이야기 듣고 하나님 믿으면서 사는 게 좋아보인다고 생각했어요.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랬구나"
"네. 그런데 쌤 수업을 한번도 안 들어서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어요."
"세상에. 그랬구나. 말해줘서 고마워. 졸업하기 전에 우리 이렇게 밥 안 먹었음 그 얘기도 못 들었겠네."

그러더니 또 둘이 투닥투닥, 그 선생님 다니시는 교회에 가네마네, 하고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A가 말한다.
"나는 싫어, 나는 그렇게 남자하는 대로 따라서 하는 수동적인 여성이 아니야."
나는 '수동적인 여성'이라는 이 귀에 익으면서도 생경한 단어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A를 봤다.
"왜요, 쌤, 나 작년에 쌤이랑 CA도 같이 했잖아요. 우리 여성인물탐구반."
"아~ 맞아맞아. 기특해 기특해."

나는 제대로 인사도 주고 받지 못했던 학생이 나의 이야기를 듣고 세례를 받고,
또 그 마음을 말로 나에게 전달해주는 용기를 내고.
일년에 열번도 제대로 모이지 못하는 CA를 통해서,
내가 전달하고자 했던 언어들의 조각들이 학생의 입을 통해 조금씩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마음 속에서 마구 뭔가가 피어올라 아이들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런 시간이 아이들이 졸업하기 전에 나에게, 우리에게 주어져서 너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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