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성’ 교사-학생의 거침없는 대화 | |||||||||||||||||
학교에선 말할 수 없는 솔직한 성과 사랑이야기 | |||||||||||||||||
<여성주의 저널 일다> 우완 | |||||||||||||||||
학교의 안팎에서 이성 또는 동성과 연애관계를 맺으며 활발히 ‘사랑’하고 있는 10대들. 그리고 이들을 말릴 수도 없고 칭찬할 수도 없어, 이를 바라보는 심정이 복잡한 교사들. 양측이 한 자리에 모였다. 지난 17일 <‘사랑하는’ 학생들과 내숭 뚫고 하이킥!>이라는 제목으로 여성주의 교사모임 ‘삐삐 롱스타킹’과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팀이 공동 개최한 워크숍에서, 10대들과 교사들이 모여 “10대의 성과 연애”를 주제로 솔직한 대화를 나누었다.
◇“10대 연애의 진실과 거짓” 행사장인 전국국어교사모임 사무실에 먼저 도착한 10대들은 삼삼오오 모여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10대들이 이렇게 왁자지껄하는 곳에, 교사들도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학교와 어른들의 규범을 훌쩍 뛰어 넘어 이미 왕성하게 ‘연애’와 ‘성’을 즐기고 있는 학생들과, 보수적 학교규범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한 교사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드디어 시작된 생생토크 <10대 연애의 진실과 거짓>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는 지속됐다. 한 중학교 교사가 “대학생과 사귀게 되었다는 중3학생에게 ‘남자는 다 늑대니까 조심해’ 라는 말밖에 해줄 수 없어 답답했어요.” 라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정작 17살 청소년들은 “대학생이래 봤자 네다섯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그게 뭐 많이 차이 나는 건가요?” 혹은 “어른들은 열살 이상 차이 나는 연애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잖아요.” 하고 되물었다. 한 십대는 “저는 성소수자인데요” 라고 운을 뗀 뒤 “여섯 살 위인 제 대학생 (동성)애인과 성에 관해 솔직하게 다 이야기해서 속 궁합이 잘 맞는 것 같아요.” 라고 말해 좌중을 유쾌하게 뒤흔들었다. 청소년들은 이어 10대가 연애한다고 말하기만 하면 무조건 말리려 드는 교사들과 부모에 대해, ‘언제부터 우리에게 그렇게 관심이 많았다고!’ 하면서 서운함과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교내에서 공공연하게 스킨십을 하며 사귀던 커플이 학교 측으로부터 강제 전학을 당한 일, 이성교제를 시작했다고 담임선생님에게 말하자 다짜고짜 ‘부모님에게 알리겠다’고 해서 난처했던 일 등을 이야기하며, 교사들과 연애 문제를 터놓고 말할 수 없는 학교의 보수적인 문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십대도 있었다. ◇연애와 섹스에 대해 서로가 궁금한 것들 십대들은 이러한 이유로 교사들이 자신의 연애상담 대상이 되기 어렵다고 말하며, 연애와 성에 대한 고민을 해소하는 주된 통로로 또래집단과 커뮤니티, 인터넷 등을 꼽았다. 고민의 내용도 다양했다. 한 사람과 진득하게 사귀지 못하고 상대를 자주 바꾸게 되는 것에 대한 고민, 남자친구에게 성적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옳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론 망설이게 되는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갈등, 육체관계에만 몰두하는 연애관계를 다른 관계로 전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미처 10대들의 고민일 거라곤 상상하기 어려웠던 내용들을 생생토크에서 솔직하게 털어놓아, 참가한 교사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어진 자유질문 순서에서는 교사들이 10대들에게 물었다. 대체 한 반에 몇 퍼센트 정도의 학생들이 연애하고 성관계까지 맺는 것인지, 학생들이 사귄다고 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10대들이 성관계를 맺는다면 어디에서 맺는지 등. 이 같은 질문에 대해 10대들은 자신이 경험하고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답변해주는 시간을 가졌다. 교사들 간에도 서로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10대들과 ‘연애와 성에 관한 이야기’를 터놓고 하고 싶어도, “젊은 여교사”가 이 문제를 솔직하게 학생들과 대화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학교에선 편견 어린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다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교사들은 학생들과 ‘성’에 관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학교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학생들의 성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하면 무조건 교사 책임이 되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십대들과 솔직한 대화를 통해 실마리를 찾다 이번에는 10대들의 연애 고민을 4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이에 대한 상담을 실습하는 <연애팍 도사> 코너가 이어졌다. “동성 친구에게 끌려요”, “상대방과 스킨십의 진도가 달라요”, “친구가 저를 스토킹해요”, “10대의 섹스는 죄인가요?” 이상 4개의 주제를 가지고 교사들과 10대들이 모둠으로 나뉘어 어떻게 고민을 해결할 것인가 토론하고 발표했다. 교사들은 해결책을 찾아 고심하는 반면, 10대들은 ‘동성 친구에게 끌려서 고민이라면 동성 친구에게 분위기 있게 고백하는 방법을 알려주자’ 식의 발랄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여자도 솔직하게 스킨십에 대한 욕구가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학교에서 걸레라고 소문나는 것은 순식간’이라고 털어놓은 여학생의 말을 통해서, 남학생 중심의 왜곡된 성문화가 여전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어른들도 제대로 피임 안 하면서 10대들에게만 왜 꼭 피임, 피임을 그렇게 강조하느냐’고 되묻는 한 청소년의 말에,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상담 실습 이후에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이향심 상담원이 <성폭력사건 지원의 A부터 Z까지>라는 내용으로, 여성주의교사모임 조영선 교사가 <사랑하는 학생들과 학교에서 살아남기>라는 주제로 미니 강연을 열었다. 두 사람은 교사들이 학생들의 현실을 못 본척하고 부정하며 무조건 막는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지적하며, 학생들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선생님들하고는 대화가 안 통한다’, ‘학생들이 연애하면 걱정이 앞선다’고 말문을 텄던 교사들과 10대들이었지만, 대화가 무르익다 보니 같은 여성 혹은 남성으로서 연애와 삶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서로 공감하며 따뜻하게 행사가 마무리됐다. 솔직한 10대들의 고백 덕분에 연애에 대해 한 수 배우고 가는 교사들의 모습이, 워크숍 장소에 처음 등장했을 때보다 밝아 보였다. 문제의 실마리는 말문을 트고 대화를 시작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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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2/22 [00:49] 최종편집: ⓒ www.ildaro.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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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ARTICLE 삐삐롱스타킹 | 4 ARTICLE F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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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사 모임 <만나고 싶었습니다> 두번째 모임, 뜬금없이 서정적인 발제문 2009. 2.21
나와 그녀들
- 여학생 가르치기의 아쉬움
by 우선생
방금 전 한 영화를 보다가 눈물을 흘렸다. 발제문이 써지지 않아 핑곗김에 보게 된, 여성판 <죽은 시인의 사회>라 불리는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 전통 있는 명문 여대에 교수로 신규 임용된 진보적 교수 줄리아 로버츠의 이야기다. 이 신참 교수는, 스위트 홈의 환상을 꿈으로 품고 살아가는 학생들의 가치관에 균열을 내고 보수적인 학교 당국에 맞서 새로운 커리큘럼을 제시하기도 하며 고군분투한다. 그러다가 결국은 학교를 떠나기로 결정하는데, 냉담하던 학생들이 결국에는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을 응원한다. 학생들이 그녀에게 그림을 선물하고, 마지막 가는 길을 자전거로 따르며 배웅하는 이 장면에서, 그만 눈물이 났다.
여학생 가르치기의 ‘아쉬움’이라는 제목은 정확히 저 눈물의 근원지를 가리킨다. 나는 가지지 못했던 순간을 그녀가 누리고 있는 것을 보며, 복잡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남학생들이 아닌, 여학생들이기에 더 온전하고 충만했던 기쁨의 순간들이 있었다. 수업 시간에 자료로 마련한 여성의 인권을 다룬 영상을 보며 학생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탄식 소리나 공감의 웃음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끌어내고자 하는 그들의 고민들이 글 속에 나타난 것을 읽었을 때, 저희들끼리의 대화 속에서 문득 그들이 성장해가는 것을 느낄 때, ‘나’이기에 털어놓는 것이라 여겨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문득문득 이 아이들이 ‘내가 받았던 것보다는 나은’ 교육을 받고 있는 것 아닐까, 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기대’라는 단어가 여학생들을 이야기하면서 등장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들을 바라보며 동지를 꿈꾸기 때문이다. 그녀들의 험난한 성장기는 나와 다르기를 바라고, 그녀들의 십 년 후의 모습은 보기 싫은 나의 친구 누구누구가 아니기를 바라고, 나아가 나 자신이 학생들을 ‘다른 여성’으로 만드는 데 조금은 일조하는 사람이 되기를, 그래서 우리가 최소한 그녀들을 흔해빠진 여자들로 길러내고 있지는 않는 것이기를, 그래서 언젠가 그들이 우리를 찾아와 함께 여성으로서의 삶을 나누는 동지로 자라주기를, 우리는 간절히 바란다.
그렇지만 ‘아쉬움’이라는 단어가 결국 등장하고 마는 이유는 저 기대와 바람이 현실로 나타나도록 만들기에 우리 자신이 너무도 역부족임을, 곳곳에서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은 여학생들을 정숙하고 ‘바람직한’ 여성으로 길러내기를 요구하고, 더불어 여교사란 그런 여성으로서의 롤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은근한 압력이 학교 내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동료들 또한 그 역할 모델로서의 자신을 기꺼이 받아들이곤 한다. 한편 학생들은 영화 속에서처럼 ‘스위트 홈’의 여주인으로서의 꿈(그 꿈이 커리어 우먼, 혹은 오피스 레이디의 꿈이라 해도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그리 다르지 않다)에 사로잡혀 있기 마련이다. (물론 더 힘든 경우는 삶의 모든 의욕을 상실한 학생들이다.) 남녀 공학에선 남학생들과의 관계(권력 관계든, 연애 관계든) 속에서 왜곡된 ‘여학생다움’이 횡행하고 있거나 그들의 목소리 자체가 묻혀있기 쉽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입시 교육의 능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또한 존재하고, 틈틈이 분위기 잡는답시고 ‘꼰대’같은 모습도 보여주어야 할 상황이 종종 찾아오곤 한다. 우리가 이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현실의 교실 속에는, 교사와 학생의 배움과 나눔이 오가는 아름다운 기쁨과 충만의 순간보다는 유치하디 유치한 기 싸움, 협상, 배신, 거짓말, 삐짐과 같은 것들이 더 자주 있을지도 모른다. ‘여학생들은 자주 삐져서 피곤하다’는 말은 단지 편견에서 나온 말이지만은 않다. 그들은 확실히 우리를 피곤하게 한다. 그것은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더 많은 것을 교사로부터 기대하기 때문이다. 남고의 교무실 풍경과 여고의 교무실 풍경을 내 짧은 경험에서나마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확연하다. 몇몇 여학생들은 교사들과 끊임없이 ‘특별한’ 관계를 맺고자 하고, 그 관계가 본인들이 기대한 것과 다르게 진행될 때, 그들은 ‘삐짐’이라는 의사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학생들이 가르치기 피곤하다’는 말이 듣기 불편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 말을 여교사에게 들을 때 좀 더 섭섭한데, 그것은 그들이 내가 앞서 서술한 여학생에 대한 ‘기대’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뜻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인 것 같다. 삐지는 여학생들이란, 교사로부터 특별한 관계를 기대하는 학생들이고, 나 또한 그들과 특별한 관계 맺기를 바라는 교사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이 바라는 관계와 내가 바라는 관계가 같지 않다는 데 있지, 그들이 특별한 관계를 바라는 데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는 그 특별한 관계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는 그들이 무엇이 되기를 바라는 것일까? 우리의 여학생 교육은 한 마디로 무엇을 목표로 하는가? 지금의 여학생 문화는 무엇이 문제이고, 우리가 제시해야 할 새로운 여학생 주체의 모델은 무엇일까? 여교사 - 여학생 관계의 전범은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