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적 없는 당신 마음의 먼 산'
'되돌아오는 샌드백'
등으로
연애의 차가운 단면을 보여준 연애시 두 편.




채호기

당신의 눈에서
사랑의 눈이 펄펄 내립니다.
눈은 쌓이지 않고 대부분
가슴에 깨끗이 스며듭니다.

당신이 가본 적 없는 내 마음의
먼 산에도 눈은 쌓이겠지요.
나는 도심의 한가운데서
흰곰처럼 웅크린 먼 산을 바라봅니다.

당신의 물기 어린 눈에서
눈이 내리고......
먼 산에 눈은 쌓이겠지요.

사랑은 이렇게 언 길을 미끄러지지 않고
흰 날개를 팔랑이며 내려와
조용한 수면에 닿겠지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요.

사랑하는 당신의 눈에서
사랑의 눈이 내립니다.
내 마음에 자국도 없이......

사랑의 함박눈이 내리고
내가 가본 적 없는 당신 마음의
먼 산에도 눈은 쌓이겠지요.

당신과 내가 이렇게
함께 따뜻해도
눈이 쌓일수록 깊어가는 고요뿐
당신과 내가 가본 적 없는
먼 산에 눈은 쌓이겠지요.

눈 쌓인 먼 산에 가끔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
당신과 내가 모르는
덧없는 치장일 뿐이지요.


연애의 법칙

진은영

너는 나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어제 백리향의 작은 잎들을 문지르던 손가락으로.
나는 너의 잠을 지킨다
부드러운 모래로 갓 지어진 의리의 무덤을
낯선 동물이 파헤치지 못하도록.
해변의 따스한 자갈, 해초들
입 벌린 조가비의 분홍빛 혀 속에 깊숙이 집어넣었던
하얀 발가락으로
우리는 세계의 배꼽 위를 걷는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포옹한다
수요일의 텅 빈 체육관, 홀로, 되돌아오는 샌드백을 껴안고
노오란 땀을 흘리며 주저앉는 권투선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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