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41주

카테고리 없음 2013. 12. 12. 15:16


예정일로부터 열흘이 지난 날이다.


예정일에는 아무 기미 없었지만

지금은...

이슬이며, 배뭉침이며, 하는 여러 가지 징조들을 겪으며

오늘인가, 오늘인가, 한 지도 이미 며칠이 지났다.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사람들도 많지만

유도분만을 빨리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남편도 많이 걱정을 한다. 

아기가 커지면서 내가 더 힘들어질까봐 걱정이라고 한다.


내 마음도 두 가지다.

조금 늦어져도 괜찮다고도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이러다 잘못되는 건 아닌가 싶어 덜컥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산책하기

오르막길 걷기

계단 오르내리기

짐볼 운동

마사지

일주일여 동안 다 해보았는데 아직도 진통 기미는 없다.


예정일이 되어 문득 깨달았던 것이 있다.

내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것.

남들은 여러 날 전부터 언제 만나자, 라고 아기하고 대화를 많이 나눈다던데

나는 대화는 조금씩 하면서도 '언제 만나자'는 말은 잘 못했다.

두려운게 많아서다.


오늘도 문득, 몸은 열심히 움직이면서 태담은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하면 되지, 하고 있잖아, 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진심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마음으로는 내 마음을 알고 있지만

소리 내어 말하는 건 다른 것 같아서

아기에게 솔직하게 한참을 이야기했다.


무서웠던 마음, 실망했던 마음, 그런거 있지만

그래도 기다리고 있노라고.

늘 걱정이 먼저 앞서기는 하지만

하면 또 뭐든 열심히 잘 해왔노라고.

그러니 걱정말고 나오라고. 


아기가 뱃속에 있어 참 행복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기에게 해준게 없었는데

아기 덕분에 사랑받고 아기 덕분에 축복받고 지지받아서 참 고마웠다.


몸으로 하는 일은 늘 둔했던 나다.

내 몸도 조금 느린가보다.

그래도 다 나오게 되어 있지 뭐 평생을 뱃속에 있겠나.


남들은,, 병원에서 진행하는 바에 따르느라 

예정일 이틀 지나 제왕절개를 권유받아 수술한 친구도 있고

일주일 지난 후 유도분만을 권유받아 유도를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수술한 친구도 있다.

나도 결국은 수술을 할 수도 있지만

지금 이렇게 열흘이 지나도록 기다려줄 수 있는 병원과 선생님을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머루가 나를 기다리게 하면서

사람 몸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마다 다양하고 

또 의학에서 이야기하는 많은 것들이 정확하지 않은 것이라는 걸 배울 수 있게 해줘서

고맙기도 하다.


어제는 계단에서 만난 9층 아주머니가 

보름이 늦어졌던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다 괜찮다고 해주셔서 참 고마웠다.

이 경험을 하고 나면 나도 남들에게 

'늦어져도 괜찮다' '사람마다 다르다' '기다려보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지.

빨리 해라, 남들만큼 따라가자, 이런 말만 할 줄 아는 사람보다 훨씬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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