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슨웹 인터뷰 워크샵에 실었던 글


인터뷰에 관한 잡담

두리번
 
인터뷰는 묘한 대화다. 질문은 내가 그에게 던지지만 그의 대답은 독자들을 향한다. 그는 나에게 말하는 동시에 독자들에게 말한다. 말하는 사람은 인터뷰이지만 그의 말을 요리할 사람은 나다. 질문과 글 작성의 칼날을 쥔 나는 인터뷰이의 대답을 유도하고, 정리하고, 독자들에게 펼쳐보이는 권한을 가진다. 그래서 나는 때로는 그의 속사정에 대해 다 알고 있는 매니저처럼, 또 때로는 천연덕스럽게 문외한의 행세를 하며 질문을 던진다. 둘의 대화는 때로는 내밀한 국면을 거치지만 대부분은 마치 이 대화를 듣는 관객이 있는 양, 보란 듯이 진행된다. 그래서 인터뷰 장면의 대화는 종종 토론, 혹은 연설이기도 하다. 
 
이렇게 토론 혹은 연설로 변질되곤 하는 ‘인터뷰’라는 묘한 대화를, 나는 꽤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했다. 고백건대 실은 나 자신이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었으나 그 통로를 찾지 못했던 많은 말들이, 인터뷰이의 입을 빌어 퍼슨웹의 지면을 채워갔다. 나는 인터뷰이 뒤에 숨어 인터뷰이의 등을 쿡쿡 찔러 무언가를 말하게 한 후 회심에 찬 미소로 그것을 인터뷰이의 이름으로 말하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의 인터뷰 글에는 보이지 않는 별표들, 형광색의 밑줄들이 있다. ‘여기를 읽으라구 여기를!’하는 보이지 않는 외침이 글의 행간에 담겼다. 
 
또 한편으로 나는 내가 배움을 얻고 싶은 이들을 인터뷰이로 초청했다. 과거 대학시절 함께 활동했었으나 어느덧 직장 생활을 하면서 멀어진 이들을 만나 최근의 활동에 대한 소식을 들으며 무뎌져 가는 정치적 감수성을 일깨우는 계기로 삼았다. 혹은, 스쳐가는 짧은 만남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이들을 인터뷰이로 모셔 궁금한 것들을 물으며 본격적인 개인 과외의 자리로 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늘 인터뷰이의 말에 쉽게 동조하는 편이었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인터뷰어로서의 역할에는 게을렀다. 그러다 보니 나의 글은 그 배움의 기록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데 게을렀던 것은 준비 과정에서 인터뷰이에게 반해버렸던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누군가를 인터뷰이로 골라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때부터 그를 만날 날을 머릿속에 그리다 보면, 그 중에 며칠 간, 인터뷰이에게 몰입하게 되는 기간이 있다. 그 기간에 나는 스토커가 된다. 인터뷰이의 삶을 구글링하기도 하고, 그의 블로그나 트위터를 탐독하기도 한다. ‘당신의 모든 것을 알아버리겠어!’라고 중얼거리는 - 욕망에 사로잡힌 스토커가 되어 그의 기사를 읽고, 그가 쓴 글을 읽고, 하다보면 어느덧 그의 삶에 반해버리는 때가 많았다. 그러다가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마음 속에서 퐁퐁퐁 솟아 오를 때,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적어나갈 때 내 마음은, 가벼운 흥분 상태였다. 
 
결국은 인터뷰 자리에 날카로운 취재 기자의 마음보다는 ‘팬심’으로 가득 찬 부푼 마음으로 그를 만나러 가곤 했다. 이 부푼 마음은 인터뷰 대화의 녹음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래서, 녹취를 하기 위해 녹음을 듣다 보면 민망해질 때가 많다. 그의 마음을 잘 구슬러 그가 조금씩 내밀한 속내를 보일 때라거나, 기대했던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올 때에 느꼈던 일종의 쾌감은 녹음 속에 반드시 드러난다. 과장된 웃음으로, 혹은 엉뚱한 추임새로. 이렇게 내가 원하는 대로 인터뷰어를 요리하기 위해 과장되게 반응하고 동조하는 나를 볼 때, 깨닫지 못했던 나 자신의 모습에 의아해지기도 한다. 
 
이렇게, 인터뷰는 궁극의 팬질, 나와 인터뷰이와 독자와 편집장의 욕망들이 다투는 투쟁의 장, 나와 인터뷰이와 세상에 대한 공부 노트, 못다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나의 마이크... 와 같은 다양한 옷을 입은 묘한 대화다. 
 
인터뷰의 진짜 주인은 누구일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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