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서야 밀린 일들의 무더기에서 놓여나, 조금 짬이 났다. 
 
익숙하지 못한 교과서와 3학년이라는 낯선 환경에 짓눌려,
담임 노릇도, 국어 선생 노릇도, 모두 조금씩 주눅든 상태에서 시작했다.
교사가 주눅이 든다는 건, 학생과의 상호작용에서 꽤 여러모로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이를테면 젊은 여교사와 학생들 간에 벌어지는 다양한 폭력적 상황들도,
내가 보기에는 교사가 먼저 주눅이 든 상태에 있기에 왜곡된 기싸움이 시작되어 벌어지는 일인 것 같다. 
여유를 가지고 어른스럽게 모든 상황을 대처하면 괜찮지 않을까, 라고 늘 생각하고 있다. 
물론 실천은 쉽지가 않다.

학생 C가 있다.
재작년에 우리 반이었던 학생이다.
자기 표현에 많이 미숙하고, 또 거친 학생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
재작년 학기 초, 5분짜리 자기 소개를 준비해 오도록 수업 시간에 숙제를 내 줬는데 안 해왔다.
다른 녀석들은 죄송하다고 꾸벅 인사를 하든지 아니면 어떻게 해서든 임기응변으로 그 시간을 메꾸는데
이 녀석은 죄송하다는 말도 안 하고 그저 몸을 비틀고 짜증을 내고 있었다.  
그런 태도에 대해 따끔하게 지적을 하고 나서(그땐 나도 화가 나서 ..)
나중에 그 녀석이 자리로 들어올 때엔 '그럴 땐 그냥 죄송하다고 말을 빨리 하는게 좋다'고 알려주었다. 
그런데도 그 말도 듣는 둥 마는 둥. 
거친 말버릇과 표현 때문에 친구들과도 몇 번 부딪히는 걸 봤다. 
그렇지만 나는 어찌됐든 '많이 힘들지? 나는 네 편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어긋나는 듯 어긋나는 듯하면서도 점점 서로의 의사표현 방식을 조정해가면서 나아져왔던 것 같다.  
그리고 2학년이 되면서는 많이 컸다 싶었다. 표정도 말도 조금 부드러워지는 것 같았다.

그 학생 C를 올해 다시 가르치게 됐다. 
잘 마무리해서 올려보내기는 했었지만, 다시 만나는 게 두려웠던 아이 중에 하나이기는 하다. 
수업 시간에 힘든 장면도 몇 번 있었지만 그래도 애써 잘 다독거려왔다.
그런데 며칠 전엔 이런 일이 있었다.
수업이 시작됐는데 책을 안 꺼내고 있길래 책 꺼내라,고 말을 했더니
짜증스런 말투로 '아 꺼내고 있잖아요~!'라고 크게 말하는 거다.
나는, 보통 그래왔듯이, 웃으며 농담조로 아이의 말을 그대로 따라하며 지금 이게 뭐냐는 식으로 면박을 조금 주었다.
이때까지는 분위기가 부드러웠는데,
아이의 책을 펴며, 어디 숙제 해 왔는지 볼까? 라고 하는데
'안 돼요~!' 하면서 또 그 짜증스런 말투로 내 손을 거칠게 막았을 때엔
내 속에서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
나도 모르게 정색을 하고,
"너 지금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니가 지금 나한테 이런 식으로 할 건 아닌 거 같은데?"라고 해 버렸다. 
그러고는 수업을 진행하는데,
C양은 엎드려 잠을 자는 척하며 '나 너한테 삐졌다'는 의사표현으로 수업 시간을 일관했다. 
나는 무시했고,
다음 시간에도 무시했고,
또 그 다음 시간에도 무시했다.
그렇지만 말이 무시지 마음 속은 편안하지가 않아서, C양이 있는 반의 수업과 보충수업 모두, 조금 힘들다. 

C양이 나에게 썼던 말투와 의사표현은 친구들 사이의 것이었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를 '막 대한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나는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런 행동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니다. 
그동안 C양과 있었던 일들에서 다 내비치지 못했던 나의 감정들, '마음에 안 든다'는 감정들이 쌓여 있다가
그 순간 그런 식으로 드러났던 것도 있다.
또 올해 들어 또 힘든 상황들을 몇번 겪으면서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주눅들었던' 것도 있다.
지금 '밟아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러지 말고, 조금 더 여유를 부려보았다면 좋았겠다 싶다.
이를테면 "숙제 안 해왔다고 이 녀석이 어디서 힘을 써?" 라고 농담을 한다든지, 
"안 봐도 비디오구만, 안 해 온 거. 됐어, 나도 네 거 안 봐, 흥!" 하고 농담을 하며 한 템포 지나간다든지......
그런데 쌓여 왔던 게 있기 때문에 그 순간에 한번 눌러줘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게 결국은 이렇게 수업 시간마다 무거운 짐이 됐다.  

그렇지만 지금 와서 내가 어떤 손짓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그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든다.
그냥,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 알고 있다.

실은, 이렇게 C양 생각을 오래하다 보니 이제서야 떠오르는 C양과의 기억이 있다. 
친구들과의 일로 C양이 엉엉 우는 일이 있었다.
인정받지 못해서 서러워 눈물콧물흘리고 있는 걸 내가 안아주며 달래줬던 적이 있다.
"잘 하려고 하는데 잘 안 돼서 힘들지? 얼마나 속상하니 그래"라고 토닥였던 적이 있다.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C양은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다른 때는 몰라도 그때 안아주던 내 마음은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C양이 그렇게 울퉁불퉁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안쓰러웠었다.
그때 그 마음을 기억해야겠다.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다.

몇 달 후 C양이 졸업할 때, C양과 내가 만드는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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