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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25 우리 반 호박씨 심던 날 2






새 학년을 시작하며 꼭 해보고 싶던 일이 있었다. 
우리반 교실 창가에 토마토를 키워 익으면 반 아이들과 따 먹는 일.
작년 연수에 가서 그렇게 하시는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특히 강제 야자가 실시되면서, 학생들이 교실에 갇혀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이런 거라도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막상 학년이 바뀌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입시로 마음이 바쁜 3학년들이 관심을 가져줄까?
나부터도 한번도 식물을 키워본 적이 없는데 괜히 키우다 다 죽으면 어떡하지?
반에 식물을 키우면 벌레가 생기는 건 아닐까? 그럼 애들이 싫어할텐데...
화분하고 씨는 산다고 하더라도, 흙은 어디서 나지? 퍼오나? 어디서? 어떻게? 무거울 텐데? 너무 요란스럽지 않을까? 
게다가 우리 반으로 북향 교실이 당첨. 북향에서도 식물이 자라나? 형광등 불빛만으로도 광합성이 되나? 

걱정을 하다가 시골에서 화초 키우기에 전념하고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트위터에도 올렸었던 그 대화는 이렇게 진행됐다.
"엄마, 나 올해 애들하고 토마토 키워서 먹으려고 했는데 북향 교실이 걸렸어. 어떡하지?"
"북향에선 안 자라."
"아무 것도 안 자라?"
"안 자라. 상추 같은 거나 좀 자랄까."
"상추 뜯어먹는 건 이상하잖아. 어떡하지?"
"뭘 어떡해 그냥 사서 멕여 뭘 키운다구"
"..."

이번에는, 학교 텃밭에서 매년 학생들과 호박을 키워온 지 오래되신, 선배 선생님을 찾아갔다. 
같은 국어과 선생님이시고, 국어과에서 가장 연세가 많으신 분이시고, 고풍스런 예절교육으로 유명하신... 분이시다.
"선생님, 제가 올해 학급에서 뭘 좀 키워보려고 하는데요."
"하하하하하, 우 선생, 그렇지, 그거야말로 아주 좋~은 인성 교육이지! 그만한 교육이 없다구!"
"그런데 저희 반이 북향 교실인데 뭐가 좀 자랄까요?"
"허어, 북향이라."
"예."
"햇빛이 들어야, 이 식물이 자랄 수가 있는데,"
"예."
"조금이라도 들어야 자랄 수가 있는데... (고개를 절래절래) 북향이면 힘들어요." 
만약에 선생님이 우리 반 수업을 하신다면 우리 반 아이들이 같이 호박을 키울 수 있을 텐데 아쉽다고 했더니,
그럼 나중에 견학을 올 기회를 주시겠다고, 그때 데리고 나와서 보라고 하신다.

3월이 시작되고 학기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역시나 그 선생님이 수업을 들어가시는 반에서는, 
어느날은 학생들 모두 종이컵을 가지고 구멍을 뚫고 (처음에 종이컵에 씨앗을 심어 싹을 틔운다)
조금 후엔 싹이 난 종이컵들이 쪼르르 반 창가에 줄을 선다. 
나는 부러운데, 그 반 아이들은 입술이 부루퉁하다. 

그러더니 지난 주 월요일엔가 선생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조금 전에 우리반 회장 불러서 호박씨 심는 법 알려주고, 우리 반도 키우기 시작하게 지도하셨다고, 그렇게 알으라고 하신다.
나는 속으로, 우리반 애들이 싫어할텐데... 어쩌지... 하면서도 "정말요? 고맙습니다." 하고는 걱정을 했다.
아니나다를까 종례를 들어갔더니 반 애들은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싫다고 난리.
"아니야~ 내가 매년 보는데 해 보면 진짜 재밌어."
"뭐가 재밌어요! 으아늘ㅇ마ㅓㅗㅈㄷ가ㅓ"
"나중에 호박이 이따 만해져! 완전 신기해!"
하면서 달래봤는데도 왜 해야 되냐고 난리다. 
나보고, 안 하게 좀 말해달라고 하려던 참이었는데 담임까지 한통속인걸 알고는 실망한 눈치. 
게다가 이노무 담임이 맨날 별거 아닌 걸 가지구 '완전 재밌어 완전 신기해' 하는 걸, 아이들은 이미 다 알아차려버렸다.

다음날 선생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저 종이컵들을 건네주신다.
싹이 어떻게 텄는지, 요건 떡잎이고 요건 본잎이고, 설명해주시다가 
"선생님, 물은 어떻게 주나요? 그냥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놔두고 그러나요?"
"아, 비 맞히면 좋오치. 그런데 이 호박은, 물을 그렇게 많이 안 먹어요. 삼일에 한번 정도 주라구. 그런데 수도물을 그냥 틀면 흙이 패이니까, 요렇게, 손을 위에 올려서 손가락 사이로 물이 떨어지도록,"
"아, 이렇게요?"
"그렇지. 마치 비가 오듯이 말이야."
"예 고맙습니다. 저희 반 아이들에게 가져가서 이렇게 크는 거라고 보여줘야겠네요." 

이걸 보여주면 반 아이들이 좀 신기해 할 것 같아서 마침 수업이 있길래 들고 올라갔다. 
"선생님 그게 뭐예요?" 
"어, 호박이야."
"선생님이 키웠어요?"
"아니, *** 선생님이 선물로 주셨어. 인제 느네도 씨 심으면 이렇게 싹이 나는거야. 이렇게 떡잎이 두개 있으니까?"
"쌍떡잎식물" 
"그렇지. 요 사이에 작은 잎이 본잎이래. 그리구 얘는 아직 씨가 안 떨어졌대. 요 씨앗으로 흙을 밀고 올라온거야."
"우와 신기하다."
"그치, 이쁘지. 인제 이게 커가지구, 꽃도 피고, 호박도 자라고 그래."
"호박 자라면 누가 가져요?"
"니네가 가지지. 같이 호박죽도 끓여먹구."
그러고는 고백을 했다. 사실은 내가 하고 싶어서 *** 샘 하시는 걸 부러워했더니 이렇게 됐다고. 
3학년 생활 너무 각박할 것 같아서 교실에 이런 것 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나는 잘 못하겠어서 어찌어찌 하다보니 이렇게  됐다고. 

그러고는 그날 수업 다 끝난 후 자습시간에 흙을 퍼담으러 나갔다. 
나도 잘 못하지만 애들 종이컵에 흙을 다 퍼담아 줬다.
허리를 굽히고 고생하는 걸 보더니 반 애들이 나더러 후회되지 않느냔다. 허허허 웃어줬다.
다 마치고 교실로 갔는데 교실에 애들이 없다. 
애들 다 어디갔냐고 물으니 컵에 씨앗을 심고 화장실에서 물 주느라 안 온단다.
"아니 물 주러 갔는데 뭐가 이렇게 오래걸려? 얼른들 오라고 해."
"쌤 지금 물 주는 줄 엄청 길어요. 애들 다 컵 위에 손바닥 펴고 물 준다고 요러고(빗물 떨어지듯이) 있어요."
"아유 그냥 대충 주지!"
"안 돼요 싹 나려면 정성이 중요하댔어요." 
하더니 교실로 온 애들은
각자 자기 컵에 이름 이쁘게 쓴다고 경쟁이 붙었다.
누군가 하트 스티커를 붙인 걸 보더니 자기도 붙인다고 난리를 피우지 않나,
씨앗에 천사라고 이름을 붙이면 싹이 더 잘 난다고 하지를 않나......
"야! 호박씨 남았는데 하나씩 더 심을 사람!"  하고 회장이 외치자 
서로들 하나씩 더 얻겠다고 난리가 났다. 
'모든 생명은 암흑속에 잉태된다'고 주워듣고서는 사물함 깊숙이 컵을 넣는데
그 손길에 정성이 가득. 씨앗을 틔우겠다는 염원이 가득.

중간고사를 일주일 앞둔 차에, 이런 이벤트가 생기니,
아이들이 '물을 준 화분처럼' 웃었다.
나도 한달 반만에 모처럼 활짝 아이들과 웃었다. 
이래야 우리반이지, 싶은 날이, 올해 처음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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