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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30 선생님 징계 먹으러 안 가요?



#1. 원래 이렇게 하는 거다

교사 첫 해의 일이다. 
시커먼 남자애들이 가득한, 시큼한 땀냄새 풀풀 나는 남고 교실에서 
작고 미숙한 내가 떼떼거리며 그럭저럭 하루하루를 살아남기 위해 애쓰던 때였다. 

어느날 수업 종이 치고 수업을 들어갔는데 몇 녀석이 자리에 없었다.
이 녀석들은 왜 없어? 라고 또 떼떼거리고 있는데
후다닥 들어온 녀석들. 
나보다 키가 훌쩍 크고 시커먼 놈들을, 뒤에 서 있으라고 하고서는 
그래 왜 늦었느냐,고 물었더니 
매점에 빵 사먹으려고 갔는데 줄이 너무 길었고 그래서 기다리다가 결국은 빵도 못 먹고 왔다나 뭐 그런 얘기였다.

솔직히 뭐 큰 잘못을 한 건 아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너무 고개를 푹 숙이고 열중쉬어 정자세를 취하고 서서 이야기하는 게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금세 꼬리를 내리며
근데 너네 왜 그래~ 이게 뭐 그리 큰 잘못은 아니잖아~ 라고 했더니만
한 녀석이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씩 웃더니
원래 이렇게 하는 건데? 하는 거다. 

나는 실소했다. 
그러고는 또, 한바탕,
'원래'라느니 '그냥'이라느니 하는 건 없다는 둥 하는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였던 것 같다.



#2. 선생님 징계 먹으러 안 가요? 

한 달 전쯤인가 옆 반의 한 아이가 가출을 했다. 
내가 수업하면서 만나던 아이였고, 몇 가지 이유로 눈여겨 보던 친구였다. 

며칠 동안 행방이 묘연해서 부모와 담임의 애를 태우고 있었는데
일요일 저녁 쯤에 갑자기 나에게 연락이 왔다, 재워달라고.
(내가 작년에도 다른 가출학생을 재워 준 적이 있다고 들었다고 한다;;; 귀신 같은 것들)

그래서 일단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고 
밥을 먹이고 부모와 통화를 하고 담임과 통화를 하고 
아이에게는 
집에는 천천히 가더라도 일단 내일부터는 우리집에서 지내면서 학교는 다니자,
너 어차피 가출했으니 징계받아야 하는데 이게 길어지면 너만 불리하다, 
내일 나랑 같이 손잡고 생활지도부에서 이제 사이좋게 지내면서 며칠만 지내면 금방 끝난다, 
뭐 이렇게 말을 하고 - 나는 이야기가 다 되었다고 생각하고 -
아침에 학교를 데리고 왔다. 

보통 이런 경우에 학생을 바로 생활지도부로 인계해서 징계 절차를 밟았어야 했는데
나도 이제 3년차가 되니 긴장이 빠져서 ;; 깜빡 그 절차를 잊었고,
잠시 아이를 교실로 올려보낸 사이에 이 친구가 없어져버렸다. 
마음이 아직 학교에서 생활을 다시 시작할 마음이 아니었던 거다. 

그래서 나는 나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담임은 담임대로 또 발을 동동 구르며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우리 반에서 조회를 마치고 교무실로 내려오는데 
그 때 계단을 올라오는 이 아이를 마주쳤다.
바로 생활지도부로 이 아이를 데리고 왔어야 하는데
내가 정말 정신이 어떻게 됐는지,
어, 너 어제 어떻게 된 거야! 라고 하고는
또 "교실에 잠깐 들어가 있어"라고 말을 해버리고 돌아서 버렸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아이가 나를 불러세웠다.

어, 선생님, 징계 먹으러 안 가요? 

나는, 바보 같이,
아, 맞다 참, 우리 그거 하러 가야되지, 하면서 
다시 아이 손을 잡고 생활지도부로 왔다.

그리고 아이는, 갑자기 거짓말처럼 돌변하여,
그때부터는 온순하게 모든 절차를 따르고
집에도 돌아가고
꼬박꼬박 학교에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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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렇게 하는 거'라는 걸 12년 동안 충실히 배워온 학생과
그런 '원래'의 공식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 '원래'라는 게 이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교사가 만날 때,
그리고 그냥 '정신없는' 교사가 만날 때, 
이런 실소할 상황이 벌어진다.

내가 궁금한 건, 이런 과정 중에 학생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일지,에 대한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이 과정을 거치면서 학생들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대체 왜 변화할까? 
이를테면 그 가출 학생은 
왜 그 전날은 도망쳤다가 다음 날은 제 발로 돌아와서 '징계먹으러 가자'고 내 손을 이끌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거짓말처럼 다시 일상을 살기 시작했을까?
흔히 비판하듯, 학교라는 권력이 두려워서 굴복한 것일까? 
- 그렇다기보다는 오히려 가출 생활이 지겹고 힘들었기 때문이 더 클 것 같다. 
- 그렇다면 돌아온 이유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 아이들이 답답하고 굴욕적인 징계 기간을 꿋꿋하게 지내도록 버티는 힘은 또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흔히 이 과정을 비판하는, 
'권력에의 굴종'을 학습하는 과정이라든지 하는 언어들도 
그리 정확하게 이 학생들의 변화를 짚어내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들이 반성문에 주절거려 놓는 이야기들은 정말 놀랍도록 모범적인 반성문들이다.
그 글들을 모두 믿지는 않지만 또 모두 거짓말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제 이 짓 그만두자'라는 자기들 나름의 결심의 과정이 있을 것이고, 
그 이유는 백 가지 천 가지일 것이되
그 변화의 과정을 어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이들은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천편일률적인 '반성문'을 써내리고 있는 것뿐이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어른들이 마련해놓은 '반성' 혹은 '징계'와 같은 이름이 붙은 어떤 절차들이
학생들에게는, 어른들의 의도와는 다른, 그렇지만 그들 나름의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그것이 이들 나름의 어떤 '통과의례'의 절차로서 작용한다는 것이 흥미롭고, 
학생들은 그 절차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또한 비껴가면서, 또 한편으로는 가로지르면서,
자기들 나름의 성장 과정을 이어나가는 것으로 보여 그 과정을 좀 선명하게 들여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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