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카테고리 없음 2010. 8. 8. 16:52

   우리학교가 ㅈㅇㄱ로 바뀌면서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아이들의 성적도 가정 배경도 아닌, '학부모의 교육열'이다.

   학기 초, 막상 학생들이 입학하고 나니, ㅈㅇㄱ 전환을 찬성했던 어떤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학생들이 성적이 훌륭하지도 않았고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이 예전보다 적지도 않았다. 물론 예년보다 평균적인 경제수준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경제적 환경이 나아졌다는 의미도 결국은 가정의 교육열 정도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이 두 문제를 연결하는 긴밀한 고리는 바로 '전업주부'인 것 같다.

   작년까지 내가 담임으로서 해야 하는 일의 중요한 부분은 학생들의 출결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학생들의 10~20%는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아이들이었고 나는 학년 초에 만나는 학부모들에게 지각시키지 말고 제 시간에 신경 써서 보내주십사, 간곡히 부탁을 해왔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맞벌이로 바쁜 부모들이었고 부모가 둘 다 돈벌이 때문에 밤늦게까지, 혹은 밤을 새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년 초에 있는 학부모 총회에 참석하기도 어려워 3분의 1 정도의 학부모만 겨우 시간을 내서 참석했었다.

   새로 맞이한 학생들의 경우 일단 부모들의 학력이 다르고 부모들의 교육열이 다르다. 배워서 얻은 사회적 권력의 맛을 잘 알고 있다고나 할까. 그리고 어머니들은 대부분 전업주부다. 집에서 살림을 하면서 아이에게 최고의 교육을 시키기 위해 정보를 교환하는 일로 십여 년을 보내온 분들이다. 맞벌이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그 일의 질이 다르다. 명예로운 일들이다.

   지각하고 결석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아이들은 글쓰기는 못해도 영어는 잘 한다. 시험 성적이 나온 후 아이들을 앉혀 놓고 상담을 하다보면 ‘성적표 엄마 보여드렸니?’라는 문장에도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이 많다. ‘엄마에게 죄송하다’는 것인데 내가 보기에는 부모의 교육열로 인한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 엄청난 것으로 보인다.

   트위터에 어떤 분이 ‘한국의 여성문제는 독특하다’며 여성의 교육기회는 매우 평등하지만 사회에 진출하는 비율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편인데, 이것은 아마도 ‘대치동 아줌마’로 대표되는, 가정에서 자녀교육에 매진해야 하는 교육 현상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렇지만, ‘여성의 사회 참여가 어려워서 가정에 있다 보니 교육열이 뜨거워진 것’이라고 할 수도, ‘한국의 남다른 교육열로 여성이 사회 참여를 못 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도 없다.

   한국은 교육도 일도 ‘잘’ 하려면 어느 한 쪽에 투신해야 하는 사회다. 일도 대충하면 짤리고 교육도 대충하면 자녀가 출세하기 힘들다. 사회에서는 어떤 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 제대로 확실히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역할 분담이 필수다. 한 사람이 일에 매진하려면 한 사람은 집에서 빨래해서 다리미질 해놓고 밥 해놓아야 한다. 일단 역할을 분담하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일은 남자가 교육은 여자가 담당하게 된다. 남자가 출세할 수 있는 정도가 훨씬 높고, 여자가 어머니들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질이 다를 것이다.

   이렇게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은 아이에게 전문직 여성이 되라고 가르친다. 월급쟁이가 되어 봤자 직장에서 하는 일이라는 게 별게 아니고, 또 그래봤자 또 자기처럼 결국은 자녀교육에 매진하게 될까봐 두려운 것일까? 우리 반 아이들의 꿈은 죄다 약사 의사 교사 변호사다.

   내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사회에서 대우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가끔은 내 마음 속과는 조금 다른 색깔로 학생들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이 아이들에게는 ‘여성과 남성은 같다동등하다’는 이야기보다도 ‘배워서 남 주자’는 이야기가 훨씬 더 급진적이다.

   결국 나는 그냥 이렇게 꽉 짜여져 돌아가는 재생산의 톱니바퀴의 하나의 부속품일 뿐이다. 가끔 바퀴 하나씩 고장나게 해 보려고 이러쿵저러쿵 딴 소리들을 아이들 머릿속에 넣어 보지만, 좋은 학교를 나온 부모를 둔 내가 좋은 학교를 나온 선생들을 만나 좋은 학교를 졸업하여 좋은 학교에서 선생을 하고 있듯이, 뭐가 그렇게 많이 바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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