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들 한다. 보통 '자존감'을 설명하면서 쓰이는 말이다. 그리고 또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다고 한다. 

세상에 정말 많이 돌아다니는 말인데, 나에게는 항상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의 실체를 잘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나 자신을 애지중지 여기기는 하지만 자존감이 높아지지는 않는 것 같았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왠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또 그런데 한편으로, 자신에 대한 잘난 소리를 엄청나게 지껄이는, 그래서 자존감이 엄청 높고 자기 자신을 정말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들이 남에 대한 사랑은 할 줄 모르는 모습들을 많이 보면서, 저 사람들도 내가 바라는 모습과는 좀 다른데, 싶었었다.

그런데 이제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성숙한 자아존중감을 가진 사람)과 억지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은 다르다는 것을.

자기 자신을 잘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진정 존중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의 자아를 남들 앞에서 훼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 종종 거짓말을 하곤 한다.

자기 자신을 잘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욕망과 감정에 대해 잘 알고 이를 건강하고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렇지만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을 위선/위악으로 포장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자기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왜곡된 방식으로 표출한다.

자기 자신을 잘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는 일에 그저 투명하고, 자신있고, 자연스럽다. 주변에서 이를 보기에 불쾌해지지 않는다. 이를 칭찬받는 일에도 자연스럽고, 적절히 감사해하고 적절히 겸손해 한다.
그렇지만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의 장점이 자신의 전부다. 이것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이들의 최대 위기. 기를 써서 장점과 강점을 드러내는 데에 조급해 해서 이를 지켜보는 일이 불편해진다. 이들은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사람의 종이 되고,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이들의 적이다. 인정받지 못하면 상처받거나, 이 일이 증오와 분노의 계기가 된다.

지난 날,
내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겨우) 나르시시스트(에 지나지 않는 이)들 여럿을 선망하고, 사랑해왔던 것을 
(그래서 결국은 매번 상처받았음을) 이제야 깨닫고 무릎을 치는 순간이다. 
한 마디로 번지수를 잘못 찾아갔던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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