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슨웹 인터뷰 http://www.personweb.com/beta/main/interview/229?page=1

청소년 인권 운동가, 배경내

8월 중순의 비 내리는 토요일 점심, 충정로의 한 카페에서 인권 운동가 배경내 씨를 만났다. 활동가들 사이에서 ‘개굴’이라 불리는 배경내 씨는 ‘인권 운동 사랑방’을 거쳐 지금은 ‘인권 교육 센터 들’에서 활동하고 있다.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우리교육, 2003)는 저서의 제목이 말해주듯 학교 내 인권, 청소년 인권이 그의 주요 관심사이다.

두리번/ @redpebl



나는 그를 작년 여름 교사 연수에서 처음 만났다. 청소년 인권 운동가로 유명했던 그는 ‘교원 인권 감수성 향상’ 연수의 강사로 등장하였다. 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의 울림은 한여름 밤 팔딱이는 개구리의 목청만큼이나 우렁차고 생명력이 넘쳐흘렀다.
학생 인권 조례 제정을 비롯하여 학생 인권에 대한 논쟁이 시끌벅적한 요즘, 그는 전국을 누비며 교사와 교육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있다. 바쁜 일정을 쪼개 어렵게 시간을 낸 배경내 씨와 마주했다.

 


학교 안 인권 문제를 제기하다

 두리번(이하 두) : 많이 바쁘시죠? 인터뷰 약속 잡기도 힘들었어요. 어제도 교육 때문에 천안에 다녀오셨다 들었어요. 종횡무진 활약이십니다. 어때요, 요즘 들어 더 바빠지신 거죠?

 배경내(이하 배) : 그렇죠. 학생 인권 조례 때문이죠. 요즘 학생 인권 조례 제정 운동 본부를 만들고 있거든요. 곽노현 교육감이 당장 2학기부터 체벌을 금지하기로 하는 바람에 각종 교육 일정들이 늘어났어요.*

 * “서울시 교육청 2학기부터 각급 학교 체벌 전면 금지” (연합뉴스)

두 : 게다가 학생 인권 조례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서울뿐만 아니라 강원도를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도 일어나고 있죠.

배 : 네. 그런데 조례 제정하려면 당장 인권 교육이 필요하거든요. 자료 요청과 연수 요청이 몰려오죠. 학생 인권 조례를 제정하는 것은 무척 필요하고 중요하고 기쁜데, 일이 몰리고 있어서 힘들기는 해요. 8월까지는 너무 바빠요.

두 : 학생 인권 조례는 먼저 경기도에서 제정되었잖아요? 배경내 씨는 가까이에서 과정을 지켜보셨죠? 그 과정에 대해 듣고 싶어요.

배 : 경기도 교육청에서 자문위원단을 꾸리고 조례안 작성을 시작했죠. 꽤 진지한 문제의식으로 출발했습니다.

두 : 자문위원단은 어떻게 구성되었어요?

배 : 국가인권위에서 온 분, 인권 법학자 한 분, 교육 운동가, 현직 교장 교감 등으로 구성되었었는데, 교장, 교감 선생님들의 자세가 인상적이었어요. 주어진 일이니까 최선을 다 해보자는 태도였고 학생 인권에 대해 배우려는 자세이셨어요.
그런데 12월에 초안이 발표되고 조·중·동에서 조례안을 마구 공격하기 시작했잖아요. 그걸 보고 자문위원들, 특히 현직 교장, 교감 선생님들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학생 인권에 대한 관심이 막 생기려고 하다가 밖에서 우려하는 걸 보고 금세 위축되어 버렸던 것 같아요.

두 : 보수 언론의 공격이 영향력을 발휘한 셈이네요.

배 : 보수 언론의 공격과 일련의 논쟁들을 지켜보며, ‘학생 인권’은 아직 사회적 합의가 안 된 주제임을 실감했죠. 그래서 2월에 학생 인권 조례 최종안을 발표했을 때 초안보다 청소년의 사상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가 축소된 채로 발표되었어요.

두 : 그래도 경기도 교육청의 학생 인권 조례안이 지닌 의의가 적지 않죠.

배 : 네, 경기도 교육청의 학생 인권 조례안은 사회적 공감대가 만들어진 상태에서 추진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촉발하고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죠. 앞으로 다른 지역에서 인권 조례안을 마련할 때, 모델로 삼기에 크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었다고 생각해요.

두 : 진행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은 없었나요?

배 : 짧은 기간에 준비하는 바람에 고려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어요. 먼저 실효성 면인데요, 과연 실효성이 있을 것인지, 싶어요. 또 한 가지는, 조례안이 여러 다양한 조건을 가진,  다양한 학생들을 포괄할 수 있는지 미처 충분히 고민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워요.


왜 학교 안 인권이 문제인가

두 : 최근의 학교 체벌 논쟁은, 서울시 교육청에서 2학기부터 ‘학교 체벌 전면 금지’ 발표 이후 본격화되었죠. 저는 물론 체벌 금지에 동의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소위 ‘위로부터의 개혁’이 가지는 한계가 분명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배 : 맞아요. 경기도는 사회적 여건이 부족한 지역이었어요. 교사들의 움직임이 거의 없었죠. 그러나 서울에서는 이제 아래로부터의 요구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합의를 모으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서울에서 조례 제정을 추진한다면 학생, 학부모, 교사가 주체가 되는 운동 단위가 꾸려져야 해요.

두 : 그래야 아래로부터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겠네요.

배 : 사실 조례 제정은 중요한 게 아니죠. 진짜 중요한 건, 우리 사회에서 학생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이 성숙하는 과정, 그리고 현장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물꼬를 트는 일이죠. 이게 정말 ‘우리가 하는 운동이다’는 느낌이 드는, 현장의 꿈틀거리는 변화가 먼저 일어나야 하는 거예요. 

두 : 서울에서 학생 인권 조례를 제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나요?

배 : 7월 7일 ‘학생 인권 조례 제정 서울 운동본부’가 발족했어요. 전교조, 참교육 실천 학부모회, 평등교육 실현 학부모회, 또 각종 청소년 단체들, 사회단체들이 모였어요. 지금 이들의 입장은 경기도와는 달리 인권 조례 제정을 ‘주민 발의’로 시작하자는 거예요.

두 : 주민들이 조례 제정을 요구하는 것이군요.

배 : 네, 지금 학교 체벌 논쟁을 보수 언론이 주도하면서 학생 인권 조례의 제정 여부가 ‘진보 교육감의 공과 실’로만 논의되고 정작 중요한, 학생 인권의 필요성에 대한 논쟁은 사라졌어요. 우리는 이 논쟁의 방향을 틀어 보려 합니다. 그러려면 교육 주체들이 참여가 필요하죠. 보수 언론의 공격이 계속된다면, 인권 조례의 내용과 시기가 후퇴될 수 있고, 교육청의 인권 조례 의지도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요. 우리는 교육청과 보수 언론을 모두 압박하는 역할을 하려 해요.

두 : 보수 언론에서 학생 인권의 문제를 그렇게 열심히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요?

배 :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어요. 하나는, 질문하는 힘을 두려워하는 거예요. ‘학교 교육이 인간이 감당할 만한 상황인가?’, ‘내 삶은 과연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이런 것들을 일상적으로 질문하는 것이 중요해요. 질문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체제 자체에 의문을 갖게 되죠. 저들은 질문하는 힘이 체제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거예요.

두 : 두 번째 이유는?

배 : 학교에 기반을 두고 있는 세력들은 학교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정보를 독점하는 것이 중요하죠. 특히 사립학교는 더욱. 그런데 학생 인권에서는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의견을 내고 정보를 요구할 권리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또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학생들과 교사들을 무력화시켜야 해요. 그런데 학생 인권에서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이야기하죠.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결국 그들이 지금 현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다수의 희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거예요.

두 : 학생 인권 문제가 학교 운영의 민감함 문제를 건드리는군요.

배 : 그렇죠. 세 번째는 우리 학교 교육 자체가 포함의 논리가 아닌 탈락의 논리로 학생들을 통제해나가는 시스템이기 때문이죠. 현재 학교 교육은 더 많은 학생을 감싸 안는 곳이라기보다는 학생들을 탈락시키는 명분을 부여하는 곳인 것 같아요. 그런데 학생 인권은 이 탈락의 시스템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고 이들이 다시 포함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거든요. 결국 지금의 학교 교육의 방향과 학생 인권이 추구하는 방향은 정반대인 거죠.

두 : 학생 인권 논의가 지금의 학교 교육 전반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문제였군요.

배 : 조·중·동에서 학생 인권 조례 제정을 비판하면서 대립각이 선명해진 면도 있어요. 예전에는 학생 인권 문제는 ‘하면 좋지만 꼭 할 필요는 없는 것’이었죠. 그런데 이제는 “조·중·동에서 저렇게 반대하는 것이라면 학생 인권이 진보적 사회를 위해서 필요한 것인가 보다”, 그러죠.

두 : 조·중·동에서 의도하지 않은 도움을 주었네요.

배 : 그런 셈이죠.(웃음)

두 : ‘학생 인권 조례 제정 서울 운동본부’에서 주민 발의를 위해서 9월까지 조례안을 만들고 10월부터 10만 명 서명 운동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배 : 예, 서울시 주민 10퍼센트의 서명을 받으면, 법적으로 주민 발의가 가능하거든요. 서울 시민의 10퍼센트는 8만 2천명 정도인데, 서명을 받다보면 서명을 놓친다든지 주민등록번호를 놓친다든지 서울 시민이 아닌 사람이 섞인다든지 하기 때문에, 십만  명을 받는 거예요. 유권자만 유효한 서명이라 학생들에게는 ‘청원 서명’을 받으려고 하고요.

두: 와, 청소년을 빼고 학생 인권 조례에 동의하는 사람 10만 명이라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배 : 그래요. 어려운 일일 거라 생각은 들어요. 쉽지는 않겠지만 말 걸기를 시작하려고 해요. ‘부모’의 정체성에 말을 걸고, 교사에게도 ‘선생님’의 정체성에 말을 거는 거죠. 저희는 ‘학생 인권을 보장하는 서명을 해 주세요’라고는 하지 않으려고요. 그 대신 ‘우리가 원하는 교육을 우리가 만들자’고, 함께 서명을 해서 제출하자고, 그렇게 말을 걸려고 해요. 그 이야기를 시작하는 데에 좋은 매개가 되는 활동일 것 같아요.


청소년도 사람입니다

두 : 우리 사회에서 진보 진영이 선점한 가치들이 몇 가지 있죠. 이를테면 민주주의와 평등. 그런데 학생 인권, 청소년 인권은 진보적 인사들 사이에서도 아직 낯설어 하는 이가 많아요.

배 : 지금까지 진보 진영에서는 주로 균등한 기회, 평등한 지원과 같이 교육 복지의 측면에서 교육 문제를 접근해왔죠. 그런데 학생 인권은 쉽게 말해 학생들에게 자유와 참여를 보장해주는 거거든요. 근데 생각해 봐요. 먹고 살 수 있게 해줬는데 자유롭지도 않고 의견을 낼 수도 없다면, 그건 사육되는 동물과 같은 삶이잖아요? 자유와 참여가 빠져 있는 복지는 동물적 복지죠.

두 :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배 : 인권 의식은 우리가 사실은 모두 다 불완전하고 부족한 존재라는 통찰이 필요한 거거든요. 이런 성찰이 사회 전반에 진행되면 아마 인권 문제도 잘 풀릴 텐데, 진보 진영이 지금까지 사회에 필요한 활동을 많이 해 왔지만, 우리 사회에서 인간 이하로 취급받는 존재에 대한 고민은 생략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두 : 진보 진영에게는 뼈아픈 지적입니다.

배 : 생각해 보면요, “때리지 마세요”라는 부탁은 노예들이 했던 거잖아요. 또 우리나라 감옥 수감자들의 두발 자유는 2000년에 와서야 가능해졌거든요. 체벌 금지, 두발 자유는 정말 기본적인 권리의 보장이잖아요. 체벌 금지와 두발 자유는 인간 이하의 등급에 놓여 있던 존재들이 인간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돼요. 그것이 학생 인권이라는 이슈가 갖는 의미이죠.

두 : 우리 사회의 인권 의식이 척박한 상황에서 교육 문제를 이야기하며 다른 주제가 아닌 ‘인권’으로 접근한다는 거, 어려웠을 것 같아요.

배 : 외로웠어요. 많이 외로웠어요. 나 혼자 세상에 맞서는 느낌이랄까? ‘당신이 와서 가르쳐보라’는 반응이 많았어요. 가끔은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도 청소년들과 만나본 경험이 적었기 때문에 말이 안 통할 때가 많았어요. 말이 먹히지 않는 느낌이었고 외롭기도 하고 자신 없기도 했어요.

두 : 그래서 청소년 모임과 만나기 시작하셨나요?

배 : 학생 인권 운동이 옳으니까 이루어져야 한다는 식의 가치 운동으로는 소용없다고 생각했어요. 청소년들이 자기 운동을 만들어야 한다고 봤죠. 그래서 청소년 모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두 : 그렇지만 학교 밖에서 청소년들을 안정적으로 만나기는 어려웠을 텐데요.

배 : 예, 계속 교류하는 청소년들이 있기는 했는데, 청소년 모임이 잘 되다가도 잘 안 되는 부침이 심하고, 그리고 청소년들은 나이를 먹고 자라나잖아요. 그러면 다른 운동으로 옮겨가고. 그런 게 힘들었죠.

두 : 청소년들과 모임을 지속해온 동력이 있을까요?

배 : 모임이 사라지더라도 개인은 남는다거나 구체적 활동을 통해 중요한 장면들이 만들어지면서 운동이 성장하는 것 같아요. 청소년 모임들도 여러 다양한 단체들이 있어서 정체성이 애매한 단체들이 있는데, 그 단체들이 문제적 장면에 노출되면서 ‘인권’이라는 가치에 직면하고 인권을 자기 의제로 가져가는 흐름이 있어요. 그러면서 청소년들이 많이 그룹화 되었어요. 청소년들 스스로 만들어내는 목소리들도 커졌죠.

두 : 그런 청소년들이 학교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죠.

배 : 학교에 간혹 계시던, 학교를 바꾸려고 헌신했던 선생님들, 보통 혼자 열심히 노력하다 실망하곤 하시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분들이 청소년을 통해서 자극을 받기도 하구요.

두 : 요즘 청소년 인권활동가 네트워크**라는 이름이 자주 보이던데요.

** 청소년 인권활동가 네트워크 홈페이지 http://cafe.daum.net/youthhr

배 : 네, 2005년에 만들어졌는데, 2006년부터 제대로 구실을 하기 시작했죠. 네트워크는 아수나로***, 중·고등학교 학생회 간부들 모임, 전북 학생 인권 모임 나르샤 등등 몇몇 단체가 묶인 거예요. 처음에는 느슨한 네트워크를 소박하게 만들자는 거였어요. 그런데 만들고 무척 바빴어요, 스쿨 어택, 전국 행진, 캠프, 학생의 날 행사까지.

*** 아수나로는 2004년말에 탄생한 청소년 인권 단체이다.

아수나로 회원의 칼럼 바로가기

   
두 : 경내 씨는 다른 누구보다 청소년을 함께 활동하는 동료, 동지로 삼고 있는 거죠? 오랫동안 그래왔으니 이미 성인이 된 친구도 많을 테고, 또 그러다보면 경내 씨 곁을 떠나간 친구도 많을 거 같아요. 그들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배 : 오랫동안 만나온 청소년들은 이제 친구나 다름없죠. 제가 청소년들과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많이 느끼는 건, 물론 청소년은 미성숙하지만 그건 경험의 절대치가 다르기 때문일 뿐이지 다른 의미는 아니라는 거예요.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지금의 사회가 더더욱 청소년을 미성숙하게 만들고 있다. 그들의 권리-인권은 미성숙 여부와 상관없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단단해졌어요. 이건 이 사회에서 미성숙하다는 취급을 받고 있는 여성이나 장애인 모두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문제의 핵심이라고 봐요.

두 : 그래서인가요? 언젠가 ‘인권교육센터 들’**** 소식지에서, ‘세상에 저항하는 나만의 방법’으로 경내 씨는 ‘청소년과 함께 담배 피워 주기’라고 한 적이 있죠. 어른인 경내 씨가 청소년과 동료로 지내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취하는 태도나 행동들이 있으면 좀 더 말해 줄래요?

**** 인권교육센터 ‘들’ 홈페이지 http://www.dlhre.org

배 : 음, 이건 정말로 진지하게 각오해야 하는 건데요, ‘최대한 솔직해지기’. 투정도 부리고, 정말로 투정 부려요. ‘나 힘들어~’ 하고. 그들 앞에서 어른이 아니기 위해서요. 또 ‘나쁜 짓 같이 해주기’. 술집에 같이 가주고, 담배도 사다주고.

두 :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배 : 술이나 담배에 대해서 다른 어른들이 아이들의 상태를 걱정하며 하는 말, 이를테면 ‘쟤 요즘 술 너무 마신다’, ‘담배가 너무 는 것 같다’고 하는 걸 보면, 저는 “~~하니까 그만 피워. 안 돼”라고 하지는 않아요. 대신 이렇게 해요. “몸의 변화는 없어?”, “남들이 이렇게 말하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아?”라고 물어보죠.

두 : 청소년들과 거리가 느껴질 때는 없으신가요?

배 : 조급함과 답답증이 생길 때도 있어요. 저는 오래 전부터 이들의 문제를 고민해서 어느 때는 좀 적극적으로 치고 나갔으면 하고 바라는데 그들은 아직 고민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지만 청소년이 주인이 되어야 하는 운동이니까 제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돼요. 조급함을 누르고 그들의 속도를 기다려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또 어떤 면에서는 그들의 에너지를 제가 못 따라가기도 하고요.


가장 보편적인 언어, 인권을 만나다

두 : 이야기를 듣다보니 배경내 씨 개인이 궁금해지네요.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배 : 특별히 문제의식이 많은 학생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런 일이 있었죠.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 참 좋은 분이고, 반 분위기도 참 좋았어요. 수업 시간에 재미있는 말 하는 친구들, 기상천외한 질문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그 친구들이 인기도 많고, 인정받는 분위기였어요.
그 중에 무슨 문제든 끝까지 질문을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담임선생님께 뭔가를 또 끝까지 물어본 거예요. 선생님을 곤혹스럽게 한 거죠. 그 지경에 이르니까 그 좋던 선생님이 그 아이 볼때기를 막 때렸어요. 진짜 심하게. 그걸 보면서 느꼈죠. ‘저 사람은 권력자였어. 그동안 그 권력을 사용 안 했을 뿐 사실은 우리를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거야.’ 그때 받은 느낌이 굉장히 강렬했어요.

두 : 아...

배 : 고 2때 전교조가 막 만들어졌는데, 이웃 학교에서 해직된 선생님이 순회투쟁이라는 걸 하더라구요. 우리 학교에서 선전전을 했는데 지금 뭔가 세상에 부당한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죠. 그렇지만 저는 그때 오로지 지상목표가 서울로 대학 가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는 거였어요. ‘나는 공부해야 한다’ 생각하고 그냥 공부를 열심히 했죠.

두 : 대학에 가서는요? ‘강경대 사건’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던 글을 봤어요.

배 :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는데 그때 낙동강 페놀 방류사건이 터졌는데, 그런저런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유인물을 나눠 주더라구요. 그걸 받으면서, ‘아, 이제 이런 질문들이 나에게 주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했죠.
그러다 강경대 사건이 터지고 우연히도 열사의 시신이 세브란스로 왔어요. 학교 전체가 술렁술렁했죠. 도서관에서도 다들 그 얘기. 그때 마음이 무척 무거웠어요. 한 백 미터만 가면 되는 곳에 그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나에게 정면으로 질문이 던져지는 느낌. 결국 갔죠. 그날이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거죠.

두 : 원래 전공이?

배 : 아, 이거 우스운데. 영문과예요. 제가 남들에게 늘, 영문도 모르면서 영문과 갔다고 하죠. 4학년 때까지는 그냥 학생회 활동을 했어요. 그러다 대안 교육 운동 동아리를 만들면서 교육 운동을 시작한 거예요. 그 세대는 어떻게 보면 축복받은 세대죠. 대중 운동이 엄청나게 고양된 시기였고. 그런 걸 보기는 쉽지 않으니까. 그 힘으로 여기까지 온 거예요.

두 : 요즘 마음은 어때요? ‘학생 인권’이라는 이슈는 경내 씨가 십여 년 동안 중요하게 붙들고 있었던 주제인데, 드디어 제대로 펼쳐보는 느낌일 것 같은데.

배 : 네, 정말 그래요. 저는, 학생 인권이 진짜 핵심이라고 생각했어요. 학생들이 어떤 마음으로 학교라는 공간에 있는지가 중요하다고요. 그리고 그게 어떤 정책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청소년 자신의 문제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대안 교육에 관심이 있어 대안 교육 운동에 기웃거렸어요. 그런데 음, 뭐랄까…… ‘좋은 어른들이 좋은 교육을 만들려는 거구나.’ 싶었죠. 뭔가 꽉 차 있어서 더 텅 비어있는 느낌? 너무 잘 만들어진 관상용 같은 느낌? 그랬어요.
저는 좋은 교육 만들기는 시끄럽고, 너저분하고, 힘든 거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학생들이 주인이 되는 거여야지, 어른들이 만들어주는 거로는 안 된다. 그러다 보니 ‘학생인권’이라는 주제에 주목하게 됐죠. ‘인권’이 갖는 정체성, ‘인권’이 주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면서도 모든 걸 다 말하는 느낌이 좋았어요.

두 : 아, 그랬나요? 저는 대학 다닐 때 ‘인권’에 대해 말하는 건 왠지 뭔가 부족한 느낌이고, 몰계급적인 것 같고, 너무 맨숭맨숭하다 싶었는데.

배 : 그렇죠. ‘인권’이 그것이 가지고 있는 가치로만 멈추면 재미없죠. 인권이 문제적인 구체적 장면과 만나면 정치성이 확실해져요. 인권이 침해받는 구체적 장면들 하나하나는 매우 정치적이죠. 사람이 정말 스스로 바닥까지 내려갈 때가 있잖아요?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이 정말 바닥일 때, 그럴 때조차도 이 사회에 기본적 조건을 요구할 수 있는 언어, 그게 ‘인권’이죠.

두 : 경내 씨는 인권 운동 사랑방에서 사회 운동을 시작했잖아요? 인권 운동 사랑방과 만남을 ‘운명적 조우’라고 하셨죠?

배 : 아, 제가요?(웃음) 대학 때는 인권이라는 말을 몰랐어요. 대안 교육 기웃거리면서 살아가다가 어느 날 인권영화제 포스터를 봤는데, 그 포스터가 엄청나게 컸던 것만 같아요. 주변의 다른 것들을 제치고 그것만 엄청나게 확대되어서 보였던 느낌?

두 : 인권이 경내 씨 가슴 속으로 뛰어 들었네요. 그게 몇 년이죠?

배 : (웃음) 96년이요. 1회 인권영화제. 96년 말에 사랑방에 갔어요. 80년대 대학생들은 졸업하면 모두 위장취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90년대부터 좀 달라진 거죠. 그때 ‘진보적 사회 진출을 위한 학교’라는 일종의 실습학교가 있었죠. 실습학교라고 해봤자 그땐 그냥, 재미도 없는,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입력하는 자원 활동을 했어요. 그치만 공부할 때는 참 좋았어요.

두 : 제가 대학 갓 졸업했을 때, 인권 운동 사랑방은 박봉으로 유명한 곳이었는데요.

배 : 네, 그 당시 월급이 35만원이었어요. 그 월급을 그만둘 때까지 받았나, 그래요. 그런데 나는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곳, 그리고 내가 제대로 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을 찾고 싶었어요. 그러면서도 진보적 사회 진출이 좋기는 하지만 먹고 살 길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유네스코도 기웃거려봤는데 유네스코는 현장성이 없더라구요. 인권 운동 사랑방에서는 뭔가 도전 의식이 생겼어요. 사랑방이 93년 창립됐는데 그 당시 인권운동의 사회적 기반이 하나도 없었어요. 내가 할 일이 많은 것 같았어요.
게다가 저는 조직 기반이 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사랑방에는 ‘교육실’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어요. 교육실에 왔다 갔다 하던 사람들 중 교사 분들이 있었는데, 인권 교육을 고민하다보니 교육 내 인권을 고민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둘 다 하게 되었죠.


지금, 여기의 삶을 사랑하라

두 : 인권 운동 사랑방에서 인권 교육 센터 ‘들’이 분리된 과정 얘기해 줄 수 있어요?

배 : 사랑방은 단체 하나 가지고 몸을 불리지 말고, 자꾸 알까기를 해서 더 많은 단체,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자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먼저 분리된 게 ‘인권 연구소 창’이고, 다음으로 인권 교육실이 분리되면서 ‘인권 교육 센터 들’이 생긴 거죠.

두 : ‘들’에서 활동하는 청소년들의 활동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재정과 학습의 기반을 마련해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요.

배 : 네, 활동가 청소년들이 대부분 학교를 싫어하다보니 학교 공부는 재미없어 하는데 그러다보니 배울 기회 자체를 놓쳐요. 그 친구들이 어떤 자기 세계를 가지고 어떤 자기 전망을 펼칠 것인가를 생각하면 안타깝죠. 우리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천천히 맞이했던 그 질문들을 그 친구들은 당장 눈앞에서 만나게 돼요.

두 : 그들에게 학교 밖 학습을 위한 도움을 주는 것이군요.

배 : 공부하자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강사와 공간은 후원을 받아야 할 거예요. 청소년친구들에게는 수업료를 주려구요.

두 : 수업료를 받아야 할 텐데 주신다구요?

배 : 네. 활동 기반을 마련하자는 거니까요. 재정이 많이 필요하니 후원이 절실해요. ‘들’뿐만 아니라 문화연대, 교육공동체 나다, 진보교육 연구소, 동성애자 인권 연대 등 함께 해온 단체들이 같이 준비하고 있어요. 두리번도 강사 후원해 줄 거죠?

두 : 하하, 아는 건 없지만 노력해 볼게요. 짧은 기간이지만 약 1년 여 정도 제가 경내 씨를 보면서 받은 느낌은, 굉장히 ‘바르고 단정한’ 사람이라는 느낌이었어요. 혹시 그런 거 있어요? ‘나는 운동가로서 이래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원칙 같은 것?

배 : (부끄러운 듯 웃음) 하하하. 저 스스로 활동가라고 생각해요. 제가 세운 원칙에 따라 제 삶은 구성되어야 한다고, 그게 제가 살아가는 이유고, 그게 재미있죠. 저는 제가 어딘가에 쓰이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일을 많이 맡고 거절은 잘 못하죠. 쓰임이 있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을 뒷바라지하는 것도 좋아 하구요.

두 : 엄청난 활동력의 비결이군요.

배 : 제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보면요, 어느 순간에 일을 만들고 있고 사람들을 일하게 만들고 있어요. “야, 그거 진짜 재밌겠다. 그럼 우리 이거 해보지 않을래? 그래 이건 내가 하고 저건 네가 하고. 응응 와 진짜 재밌겠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러죠. “개굴이랑 같이 있다 보면 내가 어느 순간 일을 하고 있어!” (웃음) 나쁘게 보면 일중독 기질이 있기도 해요. 제 스스로 주의해야 할 기질이라 생각해요.

두 : 혹시 소모되는 느낌이 있지는 않아요? 쓰인다는 거는 닳는 것이기도 하니까.

배 : 글쎄요, 제가 해왔던 일이 다 혼자서 처음으로 개척하는 일이었으니까 소모되는 느낌은 아니에요. 가끔 길게 보며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해요. 지금의 과제는 이거죠. ‘지치지 않기!’
2005년 옆에 있던 사람들이 많이 떠나면서 처음으로 좀 헛헛한 느낌이 왔어요. 그래서 그때 나를 여유롭게 해주는 뭔가가 필요했어요. 친구들과 자전거 타고 걷는 시간을 가지면서 극복했어요. 그때의 경험이 나이 들면 서울을 벗어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자연과 벗하는 삶을 고민하게 됐죠.
요즘은 쉬기 위해 가끔 거짓말도 해요. 옆에서 바쁜 게 보이는데 쉬러 간다고 하면 미안하니까 그냥 거짓말해요. 일 때문에 가는 것처럼. 근데 웃기는 거는 그게 별로 죄책감이 안 들어.(웃음)

두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배 : 저는 6개월 이상의 계획은 세워본 적이 없어요. 6개월 이후의 삶이 어떻게 될지 몰라요. 어려서부터 마흔 살 이상 살 생각은 없었거든요. 그게 버릇이  되다보니 긴 계획은 세울 필요가 없었어요. 대학 때는 학기 중에 열심히 돈 벌어서 다음 학기 등록금 마련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으니 모든 삶이 6개월 단위로 돌아갔어요.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6개월 단위로 계획하고 살기.

두 : 막연한 미래보다는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신다는 뜻이죠?

배 : 네. 그래서 저는 보험, 적금, 이런 거 안 해요. 그래서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나는 아프면 국민 건강보험 앞에 가서 농성할거야” (웃음) 어느덧 내년이 마흔이에요. 지금도 장기 계획은 전혀 없어요. 엄마나 언니가 저 대신 들어준 연금보험이 있어서 나중에 얼마간 나오기는 한다던데, 그거 말고는 전혀.

두 : 당분간은 ‘들’ 일에 매진하시겠네요.

배 : 네. 무슨 일을 해도 10년은 해야지 밭을 일궜다는 느낌이 들어요. 활동해 온 경험으로 알고 있는 거죠. 6개월 이후 무엇을 할지 계획하지 않아도 다른 일을 갑자기 선택하게 되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거. 지금까지 해온 일을 바탕으로 다른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거고요.
사랑방에 10년 있었고. ‘들’을 2008년에 만들었으니 또 한 십 년 걸리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 다음에는 귀촌이 꿈이에요. 그래서 농사짓는 친구들, 지역운동 하는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만나고 있어요. 활동하다 보면 각 지역에 친구들이 많이 생겨요. 귀촌도 꾸준히 준비해야겠더라구요. 꾸준히 만나면서 앞으로 살아갈 구상을 하는 게 앞으로의 계획이라면 계획이죠.

두 : 오랜 시간 이야기 나눠 주어 고마워요. 또 일하러 가신다구요?

배 : 네, 월요일부터 교사 대상 연수가 있어 그거 준비하러 가요. 저도 두리번 만나서 반가웠어요. 다음에는 술을 한 잔 해요. 오늘 재밌었구요, 나중에 두리번 이야기도 듣고 싶네요.

 

총총히 사라지는 배경내 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체벌과 두발 단속은 학생이 인간 이하의 존재로 대우받고 있다는 증거’라던 배경내 씨의 말을 되뇌어 본다.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를 외치는 10대 소녀들이 성인 남성들에게 ‘섹시하다’는 경탄을 받는 사회에서, 청소년이기 때문에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치마 길이와 머리 모양을 단속받아야 하는, 이 모순의 시대에 교사로 살아가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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