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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08 10대의 섹스를 받아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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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의 섹스를 받아들이기

- ‘10대의 섹스, 유쾌한 섹슈얼리티’ 서평


추천하기 민망한 책

  사실 나는 이미 이 책의 추천사를 썼다. 그러면서도 이 책을 들고 다니면서 추천하지는 못하고 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제목이 민망해서다. 적당히 에둘러 말할 수도 있고, 혹은 그냥 “10대의 성(性)”이라고 해도 됐을 텐데, 이 책은 굳이 “10대의 섹스”라고 제목을 뽑아 놓았다. 게다가 다음 말은 “유쾌한 섹슈얼리티”다. ‘10대’와 ‘섹스’가 만나면 ‘위험’해야지 ‘유쾌’하다니, 발칙하다 못해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맥락을 알고 쉽게 말이 통할 수 있는 사람에게라면 또 모르지만, 만약 이 제목을 보며 마음이 불편해지는 사람에게라면? 나는 아마 왜 이 책의 추천사를 썼는지 설명하기 위해 아주 먼 길을 돌아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이렇다. 서로의 정치적 성향이 통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성(性)’에 관한 이슈가 등장하면 의견이 갈릴 때도 많은 것 같다. ‘성(性)’에 있어서는 때로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는 것 같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진보적인 사람이니 10대의 성(性)에 대한 이슈도 말이 통할 거야’라고 믿었다가는 뒤통수를 맞기 쉽다. 물론 ‘섹스하는 10대들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그 말을 ‘10대들도 섹스할 수 있다’로 뒤집으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그러니 ‘10대의 섹스’를 이야기하는 책을 추천한다고, 쉽게 입이 떨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를 탓할 수도 없는 것이, 사실 나도 헷갈린다. ‘여성주의교사모임’을 운영해왔고, ‘10대의 성(性)’을 주제로 꽤나 진보적인 관점으로 많은 토론을 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정리가 안 되는 구석이 많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10대들도 성적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머리로는 이해가 간다. 그런데, 남자친구를 들먹이며 성 지식을 묻는 여학생에게, 철렁 내려 앉는 이 꼰대의 심장을 숨기고 “성적 결정권을 행사하게 되어 축하한다”고 말해야 하나? 또, 성매매란 남성 중심의 성문화가 만들어 낸 왜곡된 사회 현상이므로 원조 교제하는 청소년들은 그냥 마냥 ‘피해자’ - 맞나? 가끔 TV를 보다보면 오히려 영악한 10대들에게 점잖은 중년 남성들이 놀아나는 상황도 벌어지나보다 싶어 할 말을 잃기도 한다.

 

학교는 ‘의외로’ 섹슈얼리티 이슈들로 얼룩진 공간

  이런 골치 아픈 상황이니 지금까지 어른들은 그냥 쉽고 간단하게, ‘미성년은 섹스 금지’라고 정해버리고는, 실제로는 10대의 ‘성 문제 전체’에 대해 나 몰라라 해왔다. 그리고 학교에서 성 문제란 보편적인 생활지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전문적이고 특수한 영역, 그래서 보건 교사들만 담당해야 할 문제였다. 그러고는 학교는 ‘성’과 관련 없는 공간인 양 행세해 왔다. 성 문제가 등장하면 그것은 아이 하나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결손 가정의 가정 교육의 문제거나, 선생님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몹쓸 학생이 보여준 교권 붕괴의 증거라 해석되었을 뿐, 학교라는 공간을 감싸고 있는 학교 안의 섹슈얼리티 문제에 대한 성찰은 행해진 적이 없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려지고 있는 학교라는 공간은 ‘젠더와 섹슈얼리티’라는 눈으로 보았을 때 너무나 문제적인 공간이다. 실제로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친근함을 과시하기 위해 사용하는 교실 언어들 중 많은 것들이 ‘성차별적’이거나 ‘몰성적(gender-blind)'인 것들이고, 결국은 그것이 인권 침해적인 요소를 안고 있음은 그동안 여러 매체에서 지적되어 온 바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분석하고 있는 현실은 더욱 섬뜩하다. 선생님들이 친구들한테 ‘넌 예쁜데 왜 공부를 못하니’라고 하는 걸 목격하고, “앞에 있는 못생긴 애들은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학생들의 증언들이 이어진다. 결국 10대 여성들은 자신이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공부’가 될 수 없다면 ‘외모’라도 가꾸자는 가치관을 가지게 되고, 부모들도 이런 현실을 공공연히 인정하며 성적 상승의 대가로 ‘성형 수술’이라는 상을 주기도 한다.

  이렇게 진행되는 이 책의 분석에 따르면 학교는 위에서와 같이 학생들에게 암묵적으로 성형에의 욕망을 부채질하는 남성중심적 외모 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친구끼리 ‘레즈’를 고발하고 색출해내도록 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 성 소수자들의 인권을 일상적으로 침해하는 폭력적 공간이다. 이렇게 볼 때 결국 학교는 ‘성’이라는 이슈를 그 공간에서 삭제한답시고 실제로는 남성중심적, 이성애중심적인 가치관을 폭력적으로 강요해 온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10대들은 천사 아니면 악마?!

  대중매체에서 다루어지는 학교 밖 10대 여성들은 두 종류다. 천사이거나, 아니면 악마다. 그들의 각본에 따르면, 착하고 힘없는 10대들은 그만 늑대 같은 남자들에 의해 임신이 되거나 혹은 너무나 가난하고 살기가 힘들어서 성매매와 같은 마수에 걸려들기도 한다. 그런데 한편에서 악마와 같은 10대들은 원래부터 품행이 불량하며, 남자와 동거도 서슴지 않고, 단지 용돈 몇 푼 벌어보겠다고 몸을 팔겠다고 덤벼든다. 그리고 이런 각본을 쓴 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애들이라고 무조건 불쌍한 거 아니다’, ‘꼭 어른들만 문제는 아니다’.

  이 책의 ‘티켓다방은 10대 여성의 일터? 놀이터?’, ‘10대 성매매, 자발적인가?’와 같은 10대 성매매 현장을 다룬 장을 읽고 나면 자칫 위와 같은 이분법에 다시 빠지게 될 수도 있다. 이 장에서 다루고 있는 다양한 사례와 생생한 인터뷰 속에는,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나서는 10대들이 실제로 있다. 성매매 업소가 일터가 된 이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사기를 치기도 하고, 그곳에서의 ‘오빠들과의 만남’을 놀이삼아 즐기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쁜 어른들에 의해 희생된 10대들이 아닌, 어른들을 이용하는 영악한 10대들의 모습에 혼란스러운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에는 화가 났다. 이렇게 똑똑하고 영리하며 적극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10대 여성들이 왜 그 에너지를 이렇게 쓰고 있어야 하나?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이것이 과연 저들을 ‘걸레’라고 낙인찍어버리고 말 문제인가?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10대들이 천사인지 악마인지 판단하는 일이 아니다. 10대들의 현실을 진득하게 바라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보는 일이다. 그리고 10대들에 대한 ‘보호와 처벌’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통찰이 필요한 때다. 이미 현실은 법적인 대책과 통제가 의미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10대들은 현실에 대한 아무 대책이 없는 어른들을 팔짱끼고 비웃으며 온갖 경계를 넘나들고 있고, 그렇게 이 무능한 사회를 저들 나름대로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섹슈얼리티 문제는 청소년 인권 문제다

  ‘10대의 섹스’라는 책 제목에 ‘혹 해서’ 책을 든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책의 첫 장을 읽으며 조금 김이 샐지도 모른다. 첫 장에 실린 편집인 변혜정 씨가 겪은 딸의 에피소드는 얼핏 ‘섹스’ 혹은 ‘섹슈얼리티’와는 거리가 먼, 단지 좀 삐딱한 10대가 학교 당국과 마찰을 빚은 이야기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 포스터를 학생회장 선거의 홍보 포스터로 패러디했다가 이 포스터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강제로 포스터가 철거당한 이 사례는, 학교가 10대들의 건전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핑계로 학생들의 ‘섹슈얼리티 통제’를 완고하게 고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까지 많은 학생 인권의 문제들이 섹슈얼리티 통제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는 통찰을 가능하게 한다.

  이란 여성 마르잔 사트라피가 스스로의 성장기를 다룬 만화 ‘페르세폴리스’는 정권이 국민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여성들의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억압하고 있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는 책이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전통적으로 여성들의 머리카락을 음란하다고 여기며 여성들에게만 히잡을 강요해왔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때마침 들어섰던 무단 통치 세력들은 국민들의 언로만 차단했던 것이 아니라 사소한 악세서리에서 웃음소리의 크기까지, 모든 개인적인 표현들을 봉쇄하고 나선다. 그리고 주인공은 말한다. “정권은 잘 알고 있었다. 집을 나서면서 스스로에게 ‘내 바지가 충분히 긴가?’, ‘화장한 게 너무 진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더 이상 ‘나의 사상의 자유는 어디에 있지?’, ‘내 삶은 살만한 걸까?’와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몸과 관련한 대부분의 이슈는 섹슈얼리티와 연관되어 있고, 10대들은 그 몸이 내뿜는 에너지로 충만해 있다. 그리고 이 사회는 그 모든 몸의 에너지의 발산을 일탈이라 간주하고 있다. 특히 이는 10대 여성의 몸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여학교의 복장 규정이 남학교의 복장 규정보다 몇 배 더 그 분량이 많은 것이 그 증거다. 머리의 모양과 색깔, 악세사리, 손톱, 치마의 길이, 양말의 유무와 같은 자질구레한 모든 규정들은, 모두 10대 여성의 몸과 관련된 것들이지만 그 몸의 ‘건강’을 고려한 결정들은 아니다. 여학생은 이렇게 머리끝부터 손끝, 발끝까지를 ‘학생다움’이라는 이름으로 통제당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 여성이 자칫하면 학교 밖의 공간에서 ‘선정적’인 일과 휘말릴 수 있다는 생각을 전제한 것이다. 그리고 위의 사례는 그 생각이 학생의 자유로운 자기 표현까지도 가로막은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10대들의 섹슈얼리티를 성찰하는 일은 어떤 특수한 상황의 10대들만의 문제가 아닌, 10대들 모두의 신체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와 같은 보편적 인권의 문제를 성찰하는 일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여기에 함께 있다고 말하기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장 고마웠던 것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준 어른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미성년은 섹스 금지’라는 어른들 마음대로의 규칙과 이를 어긴 청소년들에 대한 손가락질만이 존재하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10대 임신, 10대 성형, 10대 성매매, 10대 성소수자, 10대 새터민들이라는 간단하지 않은 주제들을 놓고 탐구하고 찾아가 만나고 진지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며 이를 분석한 이 책의 시도는 분명 소중하다.

  ‘섹스하는 10대들’이 지금, 우리 곁에, ‘있다’. 지금은 그들에 대해 통제의 방법을 마련하거나, 강력한 처벌의 수단을 강구하거나, 따끔한 충고를 하거나, 사회 바깥으로 내몰 때가 아닌,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줘야 할 때다. 그리고 그들에게 해야 할 말은 ‘너는 틀렸어’가 아니라 ‘우리가 여기 함께, 네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해 있다’는 말이다. 사실 10대들은 그 말을 듣고자 당신을 찾아왔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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