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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03 보호의 반대말은
  2. 2010.08.23 수업일기 0823


2010년 8월 '인권 교육센터 들' 연수에서의 메모들

1. 일본 푸른잔디회(아오이시바)의 행동강령

1. 우리들은 우리들이 뇌성마비자라는 것을 자각한다.
2. 우리들은 강렬한 자기주장을 행한다.
3. 우리들은 사랑과 정의를 부정한다.
4. 우리들은 문제해결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5. 우리들은 비장애인 문명을 부정한다. 
  
 첫째,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자각이란 단순히 자신이 뇌성마비라는 인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푸른잔디회’의 기관지 <발걸음>에는 ‘우리 뇌성마비자는 이 사회에 원래 있어서는 안 될 존재’로 취급당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사회로부터 철저히 배제되고 부정당하는 존재로서의 자각, 자신의 신체성이 사회체제를 부정하고 있다는 자각인 것이다.

 둘째, 강렬한 자기주장이란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는 ‘자기주장과 자기결정’을 의미한다. ‘푸른잔디회’의 대표적 이론가인 요코다는 “우리 뇌성마비자는 날 때부터 계속 완전히 대행(代行) 당해왔고, 생활하는 것 혹은 식사하는 것 등 아주 작은 일조차 그 자신이 살아간다는 실감을 느끼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해간다”라며, “때문에 대행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신의 존재와 자신의 의지를 강렬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이들의 투쟁방식에 있어 중요한 기조는 비참한 현실을 비참한대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셋째, 사랑과 정의에 대한 부정은, 동정과 시혜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중증장애인을 대상화시키는 이데올로기와 감정 모두를 부정하는 섬뜩한 비판이다.

 넷째, 문제해결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강령은 일반적으로 ‘푸른잔디회’가 고립된 결정적인 원인으로 평가되고 있는 부분이다. 잘못된 것에 문제를 제기하지만 그들의 주장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 비장애인 중심의 능력주의 사회 속에서 그들의 현실적 대안이란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다섯째, 비장애인 문명의 부정은 비장애인을 부정하고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존재를 감안하지 않고 설계된 지금의 사회가 애초에 잘못 만들어진 사회라는 인식이다.


2. 청소년 보호주의
- 보호의 반대말은? 공격? 방임? 자립!
-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은 여성의 다른 이름이다
Untitled (We don't need another hero)
Barbara Kruger


3. 최규석, <불행한 소년>





4. 기타
- 군대는 인간 자격 심사의 장이다.
- '양성평등'이념으로 혜택받는 것은 알파걸, 즉 남성의 위치에 오를 수 있는 여성뿐이다. 그러나 그들도 기껏해야 2등 남성이다. 박근혜/전여옥/나경원 등을 비난하는 언어들이 '성'을 매개한다는 것이 그를 말해준다.
- <쓰레기가 되는 삶들>, 지그문트 바우만
- 등교시간 늦추기에 대한 지식채널 영상 : <나에게 잠을 허하라> / 다큐 <10대 성장 보고서>
- 성폭력 사건 지원에 대한 좋은 책 <성폭력 사건 지원 나침반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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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첫 수업시간.
2학기 수행평가를 안내하고
남는 시간에는 2학기 발표 주제인 지식채널을 보았다.
(지식채널 틀기 실습 차원)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문제의식 있는 걸 봐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잊혀진 대한민국> 시리즈를 보았는데, (나도 참.)
하나 보고 났을 때는 괜찮다 싶었는데 같은 주제로 두 개, 세 개를 이어서 보니까
너무나 무겁고 우울하게 가라앉는 분위기여서 내가 감당이 안 되었다.

네번째 반에서는 그 무게가 싫고 여러 번 보는 게 지겨워서,
가벼운 걸로 틀었다.
가벼운, 여고생 특유의 탄성들이 이어지니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학생들이 어떤 종류의 감성을 편하게 느끼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경험.

편안하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감성을 울리면서도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을 전달하기.
그러니까, 조금씩 역치를 늘려가기라고 표현해야 할지도?
그러면서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유머감각을 유지하기.
어려운 일이다.

나의 수업의 패턴에 이제는 익숙해진 아이들과 함께,
그런 만큼 더더욱, 좀 팽팽한 긴장감으로
수업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작년엔, 뭘 해도 감동이 없었다.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을 읽어도
간디의 물레를 읽어도
눈길을 읽어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는데 그 이야기의 무게에 오히려 내가 눌리는 느낌이었달까.
서로가 익숙해져 있으니 내가 하는 이야기도 뻔하게 들릴 것 같아서였는지,
내가 스스로 그 이야기에 푹 젖어서 문제의식을 전달하기보다는
나와 학생들과 이야기주제가 비눗방울처럼 붕 떠 있었던 느낌이다.

이 교과서 안에 들어있는 것은 내가 오랜 기간 공들여 갈고 닦아 길을 냈던 텍스트들인데,
내년부터는 교과서가 바뀌니 이 텍스트들을 들고 학생들을 만날 일은 한 십 년 간 없을 것 같다.
그런 만큼, 애틋하게, 다시 시작해야겠다.
처음처럼이 아니라 마지막처럼,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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