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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18 <밀크>
  2. 2009.11.30 홀연히 늙어버린 줄리 델피

<밀크>

카테고리 없음 2010. 3. 18. 10:46




'마흔'은 늙어감을 실감하는 나이인가보다.
강마에가 강건우(장근석)을 보며 자신의 시대가 저물어감을 느꼈듯,
한 선배교사가 제2의 인생을 꿈꾸며 학교를 박차고 나갔듯,
또 옆에서 마흔을 앞둔 선생님이 늘 한숨짓듯,
그리고 또 옆에 있는 누군가가 늘 피곤함을 호소하듯.

하비 밀크는 마흔에 말했다.
사십이 되도록 해놓은 일이 아무것도 없어. 내가 오십까지 살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그의 옆에서 '리프레시'의 용기를 준 이가 있었다.
지금부터 하면 되잖아. 주변을 바꾸고 새 사람들을 만나봐.
 
살아있으라고,
사는 것답게 살아있으라고
주름이 가득하게 씩 웃던 그의 얼굴이 계속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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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과 지천명의 나이에도 늙지 않는 여배우들이 즐비한 이 때,
그들에 비해 너무 일찍, 홀연히, 그리고 당당하게 늙은 얼굴로 나타난 줄리 델피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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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생얼’ 완성한 줄리 델피


김혜리의 카페 뤼미에르 /

<카운테스>는 드라큘라의 여성판이라 불리는 ‘피의 백작부인’ 에르제베트 바토리(1560~1614)의 일대기다. 에르제베트는 왕에게 돈을 빌려줄 만큼 재력 있고, 강력한 군사까지 손에 쥔 당대의 여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랑의 독이 강한 그를 상하게 만든다. 연하의 귀족 청년 이스트반 투르조에게 실연당한 에르제베트는 나이 때문에 버림받았다고 여기고 괴로워하다가 숫처녀의 피를 영약 삼아 청춘을 되찾으려 한다. 결국 그는 무려 600명의 아가씨를 연쇄살인한 혐의로 고발되었고, 종신토록 감금되는 형을 받았다.

<카운테스>는 에르제베트가 동맥을 물어뜯어 자살했을 거라고 상상한다. 이 잔인하고 불행한 여성을 연기한 배우는 프랑스의 줄리 델피다. 그는 <카운테스>의 감독이기도 하다. 상영시간이 다한 후 이야기보다 오래 마음에 달라붙는 것은 줄리 델피의 훌쩍 나이 든 모습이다. 짐 자무시 감독의 <브로큰 플라워>(2005)에서 중년의 기미를 드러냈던 델피는 <카운테스>에서 청춘의 상실에 그악스럽게 저항하는 인물을 연기함으로써 아예 외모의 변화를 관객의 정면에 들이댄다. 열네 살에 장뤼크 고다르에게 캐스팅된 이래 줄곧 ‘예술영화의 요정’으로 이미지를 새겨온 줄리 델피라, 퇴적된 세월의 흔적이 더욱 감개를 부른다. 14년 전 <비포 선라이즈>에서 제시(이선 호크)는 셀린(줄리 델피)에게 말했다. “너는 보티첼리가 그린 천사처럼 아름다워.” 도자기처럼 맑은 피부와 햇빛을 반사하며 작은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머리칼, 무지개 너머를 바라보는 눈동자와 노래하듯 생각을 쏟아내는 다홍색 입술. 20대 중반의 델피는 이선 호크의 표현 그대로였다. 올해 마흔이 된 델피의 얼굴에서 청춘의 윤기와 막연한 희망의 홍조는 씻겨나갔다. 특유의 예리함과 고집스러움이 오롯이 남아 단단하고 완고한 얼굴이 되었다. <카운테스>에서 델피의 깊은 쌍꺼풀은 삶의 피로를 담은 웅덩이가 되었고 피부는 포르말린에 담긴 시체처럼 냉기를 발산한다. 그리하여 고독하고 냉혹한 중년 여인의 가면을 완성한다.

바토리 백작부인은 젊은 연인과 밀회를 나눈 직후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무심코 자신의 메마르고 주름진 손을 바라본다. 그리고 흉측한 두꺼비라도 본 것처럼 진저리치며 황급히 장갑을 낀다. 순간, 나는 퍽 거칠어 보이는 그 손이 천신만고 끝에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하고 음악을 작곡하고 제작비를 끌어들였다는 사실을 불가피하게 떠올렸다. <카운테스>는 노화를 향한 인간의 혐오, 특히 여성의 공포를 극단까지 그린 영화다. 그러나 그 너머에는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육체를 적극적인 표현의 도구로 활용하고 노련한 정신과 경력을 무기삼아 영화와 공생하는, 또 하나의 길을 뚫은 여배우가 오연히 서 있다. 김혜리 <씨네 21> 편집위원

한겨레 200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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