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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14 고마운 아이들



석식을 먹으러 급식실에 올라갔다.
아이들과 같은 곳에서 밥을 먹는 석식은 늘 조금은 불편하다.
그래서 아예 떨어져서 먹기도 하고, 우리 반 아이들 사이에 껴서 먹기도 하는데,
오늘은 자리가 마땅치 않아 평소 안면이 있던 3학년 아이 둘이 먹고 있는 자리 옆에 앉았다.
한 명은 이름도 알고, 작년에 CA반도 같이 했던 아이(A)고,
한 명은 낯은 익은데 이름을 모르는 아이(B)다.

아이들이 나와 밥을 먹기 위해 찾아낸 공통의 화젯거리는 '남자쌤'이다.
내 옆자리에 앉은 남자 쌤에게 수업을 듣는데 무지 좋단다.
그 쌤에 대해 아는 거 없냐고 나에게 막 물어본다.
사실 난 대화를 몇 번 해본 적도 없는, 별로 친하지 않은 분.
그래서 뭘 말해줄까 하다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시는 분 같다"고 말해준다.
그랬더니 그 이름을 모르는 아이 B가 갑자기 "그럼 나도 그 쌤 다니는 교회 따라가야겠다" 한다.
CA를 같이 했던 아이 A는 "교회를 그렇게 따라가면 어떡해!"하고 면박을 준다.
B는 "왜, 이래봬도 나도 세례까지 받은 사람이야!"한다.

그러더니 B가 갑자기 나에게 말한다.
"쌤, 저 쌤 때문에 세례 받았어요."
"응?!?!?! 무슨 말이야?!?!"
"왜 작년에 고난주간 기도회 때 쌤들 나와서 하루씩 이야기했잖아요, 그 때 쌤도 하셨잖아요. 그 때 이야기 듣고요."
"정말? 나 그 때 하나님 이야기 하나도 안 하고 우리 엄마 이야기만 하다가 끝났는데?!"
"그래도요, 그 때 쌤 이야기 듣고 하나님 믿으면서 사는 게 좋아보인다고 생각했어요.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랬구나"
"네. 그런데 쌤 수업을 한번도 안 들어서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어요."
"세상에. 그랬구나. 말해줘서 고마워. 졸업하기 전에 우리 이렇게 밥 안 먹었음 그 얘기도 못 들었겠네."

그러더니 또 둘이 투닥투닥, 그 선생님 다니시는 교회에 가네마네, 하고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A가 말한다.
"나는 싫어, 나는 그렇게 남자하는 대로 따라서 하는 수동적인 여성이 아니야."
나는 '수동적인 여성'이라는 이 귀에 익으면서도 생경한 단어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A를 봤다.
"왜요, 쌤, 나 작년에 쌤이랑 CA도 같이 했잖아요. 우리 여성인물탐구반."
"아~ 맞아맞아. 기특해 기특해."

나는 제대로 인사도 주고 받지 못했던 학생이 나의 이야기를 듣고 세례를 받고,
또 그 마음을 말로 나에게 전달해주는 용기를 내고.
일년에 열번도 제대로 모이지 못하는 CA를 통해서,
내가 전달하고자 했던 언어들의 조각들이 학생의 입을 통해 조금씩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마음 속에서 마구 뭔가가 피어올라 아이들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런 시간이 아이들이 졸업하기 전에 나에게, 우리에게 주어져서 너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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