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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13 손해 본 소비자
  2. 2010.04.06 <클래스> 1
  3. 2010.03.30 학습량과 좋은 교육




어제 아침 조회에서 별 것 아닌 걸로 벌컥 화를 내고 하루종일 곰곰이 생각해봤다.

벌럭 화 내기,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왜 다시 이렇게 화를 내고 있을까?

생각해 보니 신입생들 입학 이후로 학생들 보는 마음이 예전같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도 유별나게 유대감이 끈끈하던 우리 학교의 사제 관계가

'손해 본 소비자'처럼 행동하는 학생들과 '내 가게도 아닌데 괜히 죄인'이 된 선생들의 모습으로

점점 왜곡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이러다가 우리 학교 불만제로에 나오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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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

카테고리 없음 2010. 4. 6. 14:44


교사-학생 간 상호 작용에 대한 어떤 통찰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고 보았는데

너무 많이 졸아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별로 없다.

그래도 인상깊었던 장면들은

- 선생이 쓰는 말에 대하여 학생이 공격할 근거로 '부르주아적'이라는 말을 찾아내고 스스로 즐거워하던 장면

- 학생 평가를 함에 있어 모든 선생이 둘러 앉아 토론하며 평가를 진행하고
   그 과정을 학생 대표들이 지켜보도록 되어 있었던 장면

- 선생이 학생을 두고 '어제 너의 태도는 마치 창녀같았어'라고 말했을 때 그것 때문에 즉각 학생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이것이 학교 내에서 진지하게 문제가 되던 장면 (그리고 선생은 이것을 교묘히 숨기려고 하던 장면)

- 수업을 하고 나온 교사가 '정말 이 꼴통들 데리고 못해먹겠다'고 때려치우겠다고 소리치는 것을
   많은 교사가 지그시 쳐다보고 (그의 흥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 후 한 사람이 다가가 산책이나 좀 하러가자고 말하던 장면

등등.

프랑스의 교실에서의 소통은 우리나라와 근본적으로 달랐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근본적으로 유사했다.

그래서인지
같이 보러 간 친구는
학교에서 열받을 때 이것을 교실에서 같이 보며 역지사지의 기회로 삼아보라며 권해주었다.

AND



내가 존경하는 우리 학교의 두 국어 선생님은 분명 두 분 다 훌륭하신 선생님들인데
좋은 수업과 학습량에 대한 확고한 '이견'을 가지고 계셨었다.

한 분의 의견은 이랬다.
수업은 쉽게, 학습 내용은 적게, 학생들의 표현은 많이,
학생들이 표현할 수 있는 영감을 제공하는 것이 수업의 목표.

다른 한 분의 의견은 이랬다.
옛글 속엔 너무 아름답고 훌륭한 것이 많다.
이 글도 너무 훌륭하고 저 글도 너무 훌륭하다,
그러니 어떻게든 많이 가르쳐줘야 한다.
안 그러면 학원 가서 배운다.

나도 처음엔 후자의 선생님과 같은 상태로 학교에 왔던 것 같다.
그런데 점점 전자의 선생님과 비슷해졌다.

(사실 후자의 선생님처럼 가르칠 실력도 안 되었지만)
후자의 선생님처럼 가르치고자 하니 50프로의 학생은 버리고 가는 강의가 되었다.
사실 나는 지금도 후자의 선생님이 어떻게 모든 학생을 다 참여시키면서도
그 훌륭한 글들을 모조리, 깡그리 읽히는 강의를 하셨는지, 그 비결을 모른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늘 학생들에게
'난 미리 세번 읽어온 학생들을 대상으로만 수업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었던 것만은 안다.
난 다만 학생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용기가 안 났다.
안 읽어오면 어떡하지? 읽기 어려웠다고 하면 어떡하지?

그리고 하나의 소설을 읽더라도
학생들이 푹 작품에 젖어 들 기간을 주고
작품에 대한 생각이 숙성하여 표현하고픈 것까지 나오기까지는
늘 어떻게 서둘러도 오래걸렸다.
그렇게 하자니 국어책에 있는 것을 다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시간이 흐르고 전자의 선생님은 학교를 떠났다.

나는 학교에 남아 후자의 선생님과 신입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한다.
2010년, 변화한 우리 학교에서는 학생들도 부모들도 마음이 바쁘다.
내 수업에 대해 뭐라고 소리를 들은 것은 없지만
옆 반 학생들이 했다는 이야기,
옆 반 부모들이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더 마음이 바빠진다.

어려운 것을 마구 가르쳐야 학생들이 배운다고 느낄 것 같다.
진도를 바삐바삐 나가야 학생들이 알차다고 느낄 것 같다.
이 학생들에게 연극을 해보자고 하면 바쁘다고 싫다고 할 것 같다.

그리고 또 어느새,
많은 것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작품의 감상의 숙성을 기다리던 즐거움을 앞선다.
많은 것을 주는 교사가 되면 왠지 내가 유능한 교사가 될 것 같다.
많은 것을 주지 않는 교사라서 미안해질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따라오지 못하는 50%만을 위한 교사였던 것일까?
그들이 없어졌으니 이제 나의 교사 역할은 방향 전환을 해야하는 걸까?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했던 일은, 그들이 아닌 다른 학생을 위해서도 의미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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