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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26 <인셉션> : 인간의 심연을 공부하고 있는 감독의 이야기



생각은 가장 강력한 바이러스다

홍세화는 <생각의 좌표>에서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라기보다는 합리화하는 동물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보고 듣는 것을 모두 받아들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동물이라면야 합리적인 동물이라 하겠지만 정작 실상은 그렇기보다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신념을 공고하게 유지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 그렇기에 "생각은 가장 강력한 바이러스"라는, 코브씨가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하는 이 말은 일리가 있다. 생각은 무게도 없고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지만,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유,무형의 것들 중에서 가장 영구적이라고 할 만하다.


생각의 씨앗을 심다

눈에 보이는 병균이 아닌, '생각'을 뜯어 고치고 새로운 생각의 씨앗을 심는 일, '인셉션'을 하기 위해 코브씨 일행은 '환자'의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기로 한다. '생각'을 뜯어 고치기 위해서는 그의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겪은 경험을 조작할 필요가 있는 것. 감독은 경험으로 인해 각인된 기억이 인간의 무의식을 형성하고 그것이 사람의 생각을 조종한다,는 일련의 과정을 강하게 신봉하고 있는 것 같다. 생각을 훔쳐내기 위해서는 꿈만 꾸면 되지만 인셉션을 위해서는 꿈 속의 꿈 속의 꿈,을 설계할 정도로 생각을 바꾸는 일은 어렵다. 또한 꿈 속의 꿈에서 이미 인셉션 하려는 자들을 공격하는 자들이 도사리고 있을 정도로, 사람은 생각을 바꾸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그러니, 저 심연의 무의식을 조종하는 일이란, 사실은 불가능하다는 얘기인가 보다.


문제해결방법으로서의 죄책감

흥미로웠던 것은 인셉션을 하러 가기로 한 코브씨가 남의 무의식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만나는 것은 자신의 무의식에 새겨진 죄책감이더라는 부분. 상담 이론에서도, 상담을 배우는 것은 자신의 상처들부터 먼저 직면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우선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도, 나를 상담하는 선생님이 종종, 나를 만나며 자신의 상처를 또 만나는 걸 지켜보게 된다. 
아내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살던 코브씨. 그가 아내와의 일을 어려움 끝에 결국은 스스로 해결해내는 부분을 보면서, 죄책감도 아직은 어린 자아의 어른스럽지 못한 자기연민의 한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코브씨와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 죄책감을 안고 평생을 자기를 학대하며 살아가는 방식은, 물론 불행하고 괴로운 일이지만 경험한 문제의 본질은 외면하는, 어떻게보면 간단하고 쉬운 방식이다.  어려운 것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 : 경험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그리고 그로 인한 나의 상처와 직면하기,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에 대한 선을 긋기, 결별해야 할 것을 구별해 내기, 그리고, 결별해야 할 것과 정말로 결별하기. 이것이 더 어려운 과정일 것이다. 


놀란 감독의 다른 작품 <메멘토>에서의 남편은 실제로 자신이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해놓고는 남이 아내를 죽였다며 살인자를 찾으러 다녔다. 코브씨는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생각의 씨앗을 심어놓았던 일 때문에 아내가 자살을 선택했다며 아내의 자살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다크나이트에서 우리 마음 속의 시커먼 악의 세계를 보았던 감독이, 점점, 마음의 심연으로 깊이 깊이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 왠지, 다음 영화는 더 어둡고 쓸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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