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사랑을 믿다 | 1 ARTICLE FOUND

  1. 2011.02.14 사랑을, 믿다 2


(이 글은 요즘 방송하는 드라마나 권여선의 소설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나는 명랑하지만 좀 냉소적인 청소년이었다. 따뜻하게 주고받는 사랑과 감사의 말들은 내 언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런 걸 피식 비웃는 걸 즐거워하는 쪽에 가까웠다. 돌아보면 나는, 사랑을 배우지 못했다. 배웠던 거라곤 소설 속의 어둡고 축축한 연애 감정들 뿐?

20대에 만나게 된 하나의 세계가 밝고 따뜻한 세계가 아니라 차갑고 축축한 세계여서 나는 오히려 편안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지나간 몇 번의 연애도, 그 안에서 안온한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나에게 익숙한 어두움과 습기로 가득찬 것이었던 것 같다. ('같다'- 정도로 해 두겠다. 지금 돌아보니 그렇다는 것인데 쓰다보니 상대방들에게 미안하다, 이쪽보다는 저쪽에 가깝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어찌됐든, 연애를 하면서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생겨 즐거웠을 뿐이지 긍정적 감정을 주고 받으며 충만하고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서른이 넘고 나서 '이젠 정말 내 나이가 꽉 찼다'는 느낌이 드는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들이 달라졌으며, 그 안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 나는 이제 사랑을 믿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이제 나는, 사랑의 힘이 위대하다는 것을 믿고 사랑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도 믿으며 사람들 마음 속에 모두 다 사랑이 있다는 것도 믿는다. 또한 동시에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일이라는 것도 알고 내가 지금, 그리고 앞으로 하게 될 사랑들이 일대 사건처럼 일어나는 게 아니라 물이 흐르듯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것일 거라는 것도 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가르쳐 준 것은, 어이없게도, 학생들이다. 학생들에게 상처받는 일도 많았지만 사랑을 배운 나날이 더 많았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날인가부터 나는 다른 것이 아닌'너희들을 사랑하고 믿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선생이 되어 있었고 이것은 나에게도 큰 행복을 주었다. 사랑을 받아야만 사랑을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주는 것으로도 배울 수 있는 것이었다. 

어찌됐든 그래서 결론적으로, 서른이 넘은 나이에야 비로소 나는 사랑을 믿게 됐다. 
십대 이십대에 사랑을 신봉하다가 상처 가득한 마음으로 삼십대에 사랑 따위 믿지 않는 스토리가 세상에 많이 돌아다니기는 하지만, 그래서 너무 늦은 것 같은 감도 있지만, 뭐 괜찮다. 
사랑을 믿으니까.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이 글은 권여선의 소설과 조금 관련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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