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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28 이근행 MBC 노조위원장 강연에서의 메모 2



>>>강연 마지막에 소개해 준 세 편의 시

김정란, '사랑으로 나는' /  황지우, '뼈아픈 후회' / 마종기, '3. 대화'


사랑으로 나는

김정란

사랑으로 나는 내가 보았던 매미날개와 매미날개에 머무는 햇살과 그 햇살의 예민한 망설임들을 이해한다. 사랑으로 나는 내가 보지 못했던 오로라와 그 오로라가 우주 먼 곳 태어나지 않은 역사와 맺는 관계를 이해한다. 사랑으로 나는 언젠가 그 칼들이 나를 더 이상 아프게 하지 못할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사랑으로 나는 죽어가는 세계의 모든 생명들과 이제 막 태어나는 어린 생명들과 하나가 되고 싶다, 될 것이라고 믿는다, 될 것이다. 사랑으로 나는 나이며 너이며 그들이다. 사랑으로 나는 중심이며 주변이다. 사랑으로 나는 나의 상처의 노예이며 주인이다. 사랑으로 나는 나의 상처를 세계의 상처 위에 겸손하게 포개놓는다. 세계, 나의 아들이며 나의 지아비인 세계의 상처 위에 나처럼 아프고 불행한 세계의 상처 위에, 가만히, 다만 가만히.



"김정란의 시, 참 한구절 한구절 좋아하는 시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나의 아들이며 나의 지아비인 세계'라는 말을 자꾸만 곱씹게 돼요. 아들인 세계 - 즉 내가 가꾸고 만들어 내는 세계, 그리고 지아비인 세계 - 싫어도 살아야 하는 곳으로서(이부분에서 다들 폭소)의 세계. 이런 생각을 해야 하지 않나,해요. 이렇게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구나. 그리고 나의 상처를 그저 겸손히, 세계와 함께 포개어 생각하면서, 아프고 불행한 세계를 함께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죠. 

마종기 시인 참 좋아하지만 나는 이 '대화'라는 시를 보고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시골에서 자라났던 어릴 적, 이미 어둠이 깔렸는데도 오시지 않는 부모님을 기다리며 등불을 켜고 기다리면서 어둠과 빛은 경계가 없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을 했었죠. 어둠의 세계와 빛의 세계는 그렇게 그냥 함께 있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어둠의 세계를 밝히는 등불은, 항상 밝게 타는 건 아니잖아요. 꺼지기도 하는거죠. 그렇지만 밝게 타오르도록 심지를 돋우고 꺼지지 않게 등불을 돌보는 건, 결국 자신이 아닌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가꾸는 등불.

제가 해고가 되었잖아요? 옆에서 복직이 힘들거라고들 합니다. 솔직히 걱정도 돼요. 두렵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냥 이렇게 등불 밝히면서 사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요." 



>>>그러면서 이걸 읽어주었다. 엠비씨 노조 카페에 올렸다는 글


빛과 어둠에 대하여

 그러니까 어린 날, 꼭 이맘때였습니다.
들일 나간 부모님은 사방(四方)이 캄캄해지도록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마 당신들은, 손에 잡은 연장 끝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만 일하자, 분명 그러셨을 것입니다.

 예닐곱 살 저는 서둘러 남포등에 불을 켜 툇마루 기둥에 걸었습니다. 어둠이 무서워서였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곤 마루 끝에 서서, 마당과 울타리, 또 그 너머 골목 쪽을 두렵게 바라보았습니다. 등(燈)빛이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제 기억으로는 마당도 채 밝히지 못했습니다.
 어둠은, 스무 발작도 안 되는 마당 끝에 짐승처럼 산처럼 웅크리고 있었고, 제가 건 등(燈)은 고작 작은 빛의 동심원을 기둥 주위에 그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빛은 어둠에 갇혀 있었고, 아이는 또 빛에 갇혀 있었습니다. 저는 그 빛 밖으로, 그 어둠속으로 한 발작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빛과 어둠의 경계는, 넘기 힘든 공포(恐怖)의 선(線)이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등(燈)빛 밖으로 조금씩 발을 내밀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빛과 어둠의 구별이라는 게 사실은 아주 작은 차이이며, 그 경계를 넘는 것 또한 한 순간의 두려움일 뿐이라는 걸 말입니다.
 빛 속에서 보는 어둠, 어둠 속에서 보는 빛. 빛도 하나의 어둠이고, 어둠도 또 하나 빛의 세계입니다. 부모님은 어두운 밭이랑을 오가며, 칠흑(漆黑)속에서 한참을 더 일하고 돌아오셨습니다.

 조합위원장인 제가 결국 해고(解雇)라는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다 괜찮습니다. 그러니 너무 염려치 않으셨으면 합니다. 조합에 짐이 되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담담하게 생각하고, 당당하게 나아가고자 합니다.
 어둡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제가 어린 시절을 결코 상처로 기억하지 않듯, 이 시절의 많은 것들도 훗날 행복하게 추억하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6.10   이근행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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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1학년 때 조세희 선생님의 강연을 들으러 갔을 때, 조세희 선생님은 '빵과 장미'의 이야기를 해 주시며 이제 여러분에게 '빨간 장미 한 다발'씩을 안겨주겠노라고. 희망을 안고 살으라고 하셨었는데, 이근행 위원장은 등불 하나 밝혀 주었다. 내가 심지 돋우고 기름 갈아주어야 할 등불. 




>>> 그리고 강연에서의 말,말,말,


"입사 면접 당시, 중앙일보에서는 3당 합당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내 양심대로 대답할 것인가, 아니면 일단 입사하기위해 거짓말할 것인가 갈등하다가 대답했다. '구국의 결단이라고 생각하며,,, 갈등보다는 화합이 필요한 시국이고...' 결국 떨어졌다. MBC 면접을 보러 갔을 때에는 전교조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선생님들의 정당한 사회적 실천이며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하고는 그냥 나와버렸다. 그런데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실제로 나도 사범대 출신이고, 교육학과를 나와 잠시 교사 노릇을 한 적도 있다. 아내도 교사다. 그래서 전교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방어하는 편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역부족이다. 현실에 대한 대안을 잘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언론운동도 사실 다 죽었다. 동아일보의 '동아투위' 사건이라든지 하는 역사가 기억하는 기자들의 사회적 실천은 이제 다 옛날 얘기다. 현재 언론은 찌라시지 신문이 아니다.  신채호, 박은식이 있던 황성신문으로부터 시작된 '기자'라는 명예,도 이젠 부끄러운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 기자는 이제 없다. 기자들이 앞서서 현실에 영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호위대다. MBC를 운영하는 방문진이나 KBS이사회 모두 최시중이 임명하는 거다. 이젠 둘 다 국영방송이나 다름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손석희씨는 까칠하다. 까칠하다. 냉랭하고, 까칠하다. 정말 까칠한 사람이다. 신경민도 그렇다. 까칠한 사람이다. 사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거다. '정권도 바뀌었는데 꼭 그런말을 하고 살아야 하나'.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짤렸지만 더 행복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87년에 시청광장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이나, 2010년에 시청광장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 모두 다 삽시간에 모였다가 삽시간에 사라졌다. 87년의 사람들은? 많이들 변절하고, 방향성을 상실했다. 2010년의 젊은이들은? 에너지가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들이 지도와 나침반만 제대로 갖게 된다면? 아마 큰 일이 벌어질 것 같다. 386들이 젊은 세대에 대해 비난하는 걸 자주 보는데, 흉볼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지금 젊은이들이 더 나을 수 있다."

"386들이 욕먹는 이유는 무식하기 때문이다. 고착화된 이념의 지도를 고수하면서, 여기에 따라 반사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이제 한계가 있다. 이런 진보는 죽은 진보다. 이제 오늘날 운동은 제 자리에서 제 역할 다 하는 것이다. 무한도전 김태호를 보라. 이 사람이 어디 운동하게 생겼나? 그런데 자기 프로그램을 KBS파업현장을 배경으로 찍고 그러는 사람이다. 이제 희생/명분/국가 이런 무거운 운동의 시대는 갔다. 자기를 실현하는 것으로서의 운동, 행복한 운동, 즐거운 운동이 필요하다."

"이런 젊은이들, 다 누가 만들어냈나? 나는 이것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교사들이라고 본다. 교사들 너무나 중요하다. 부모는 못하는 일을 교사들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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