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김혜리 | 3 ARTICLE FOUND

  1. 2011.01.11 '하나 그리고 둘' / 에드워드 양
  2. 2010.08.27 <퐁네프의 연인들>과
  3. 2009.11.30 홀연히 늙어버린 줄리 델피





"이 영화 이후 내가 영화에 품는 기대와 희망의 내용이 완전히 바뀌었다" 는 김혜리 기자의 말에 끌려 이 영화를 보러 갔다. 

삼십년 전의 첫사랑을 만난 사십 대 두 남녀의 뒷 모습이 녹음 속에서 사라져갈 때,
그리고 아버지가 첫사랑과 다시 만나는 동안 첫사랑을 시작하는 소녀의 모습이 교차될 때,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가진 소녀의 손 위에 할머니가 남긴 종이 나비가 팔랑일 때, 
숨을 참는 연습을 모질게 한 끝에 수영장에 빠져보고 돌아온 소년의 의기양양한 눈이 반짝일 때,
그 때,
인생이 남루하면서도 아름답다는 것 -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취해서 삶을 견뎌나간다는 것,
사는 일이 단순해서 사람들은 더 복잡하게 산다는 것 -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망각 속에 서로를 괴롭히며 산다는 것,
이런 것들을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바라보았다. 


"영화는 사람의 수명을 세 배나 연장시킨대."라는 영화 속의 말이 이래서 가능했나보다. 




"앞에서만 볼 수 있지 뒤에 있으면 못 보잖아요,
그러니 진실의 반만 보는거죠."

"이건 내 뒷모습이잖아, 이걸 왜 찍었니?"
"못 보니까."

“할머니 죄송해요. 
할머니와 말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제가하는 말은 죄다 할머닌 아시니까 안했어요.
할머닌 가셨는데 하지만 어디로 가셨죠? 아마 우리가 아는 곳일 거에요.
남이 모르는 일을 알려주고, 못 보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럼 날마다 재밌을 거예요. 할머니 계신 곳도 찾겠죠.
그러면 모두에게 말해서 함께 할머니께 가도 되나요?
할머니 보고 싶어요. 특히 이름이 없는 아기를 보면.
할머니가 늘 늙었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요.
저도 늙어간다고 말하고 싶어요.”
AND






아름답자고 아주 대놓고 작정한 영화.
지금 보니 사실 좀 민망할 지경이기도 했다.

DVD를 사다 쟁여놓는 것으로도, 자꾸만 영화를 보는 것으로도, 포스터를 집에 붙여놓는 것으로도,
어느 것으로도 영화를 온전히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그러므로
영화를 쓰는 것 외에 영화를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고,
김혜리가 어느 글에선가 썼다.

따지고 보면 영화만 그런 것은 아니다.

소설, 사진, 그림.... 다 그렇다.
집에 쌓아 놓는다고 늘 그것만 끼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
아름답다고 어쩔 것인가?
그냥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잊어질 테면 그대로 흘러가 버리라고 마음을 비우는 수밖에.

사람도 그렇다.
곁에 둔다고 곁에 두어지지 않는 것이 사람이다.
사랑한다고 어쩔 것인가?
너도, 그리고 나도, 변하는 것이 사람이라 더 좋다고 마음을 달래는 수밖에.

눈이 멀어가고 있는데 세상을 다 담아둘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해서 슬픈 미셸도,
그녀가 곁에 있어도 있는 것 같지 않아 애달픈 알렉스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영화를 잊고 있다가 근 20년만에 다시 보러 모인 사람들도,
아마 비슷한 생각들을 했을 것 같다.
AND



불혹과 지천명의 나이에도 늙지 않는 여배우들이 즐비한 이 때,
그들에 비해 너무 일찍, 홀연히, 그리고 당당하게 늙은 얼굴로 나타난 줄리 델피가 좋다.




-----------------------------------------------------------

‘중년의 생얼’ 완성한 줄리 델피


김혜리의 카페 뤼미에르 /

<카운테스>는 드라큘라의 여성판이라 불리는 ‘피의 백작부인’ 에르제베트 바토리(1560~1614)의 일대기다. 에르제베트는 왕에게 돈을 빌려줄 만큼 재력 있고, 강력한 군사까지 손에 쥔 당대의 여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랑의 독이 강한 그를 상하게 만든다. 연하의 귀족 청년 이스트반 투르조에게 실연당한 에르제베트는 나이 때문에 버림받았다고 여기고 괴로워하다가 숫처녀의 피를 영약 삼아 청춘을 되찾으려 한다. 결국 그는 무려 600명의 아가씨를 연쇄살인한 혐의로 고발되었고, 종신토록 감금되는 형을 받았다.

<카운테스>는 에르제베트가 동맥을 물어뜯어 자살했을 거라고 상상한다. 이 잔인하고 불행한 여성을 연기한 배우는 프랑스의 줄리 델피다. 그는 <카운테스>의 감독이기도 하다. 상영시간이 다한 후 이야기보다 오래 마음에 달라붙는 것은 줄리 델피의 훌쩍 나이 든 모습이다. 짐 자무시 감독의 <브로큰 플라워>(2005)에서 중년의 기미를 드러냈던 델피는 <카운테스>에서 청춘의 상실에 그악스럽게 저항하는 인물을 연기함으로써 아예 외모의 변화를 관객의 정면에 들이댄다. 열네 살에 장뤼크 고다르에게 캐스팅된 이래 줄곧 ‘예술영화의 요정’으로 이미지를 새겨온 줄리 델피라, 퇴적된 세월의 흔적이 더욱 감개를 부른다. 14년 전 <비포 선라이즈>에서 제시(이선 호크)는 셀린(줄리 델피)에게 말했다. “너는 보티첼리가 그린 천사처럼 아름다워.” 도자기처럼 맑은 피부와 햇빛을 반사하며 작은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머리칼, 무지개 너머를 바라보는 눈동자와 노래하듯 생각을 쏟아내는 다홍색 입술. 20대 중반의 델피는 이선 호크의 표현 그대로였다. 올해 마흔이 된 델피의 얼굴에서 청춘의 윤기와 막연한 희망의 홍조는 씻겨나갔다. 특유의 예리함과 고집스러움이 오롯이 남아 단단하고 완고한 얼굴이 되었다. <카운테스>에서 델피의 깊은 쌍꺼풀은 삶의 피로를 담은 웅덩이가 되었고 피부는 포르말린에 담긴 시체처럼 냉기를 발산한다. 그리하여 고독하고 냉혹한 중년 여인의 가면을 완성한다.

바토리 백작부인은 젊은 연인과 밀회를 나눈 직후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무심코 자신의 메마르고 주름진 손을 바라본다. 그리고 흉측한 두꺼비라도 본 것처럼 진저리치며 황급히 장갑을 낀다. 순간, 나는 퍽 거칠어 보이는 그 손이 천신만고 끝에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하고 음악을 작곡하고 제작비를 끌어들였다는 사실을 불가피하게 떠올렸다. <카운테스>는 노화를 향한 인간의 혐오, 특히 여성의 공포를 극단까지 그린 영화다. 그러나 그 너머에는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육체를 적극적인 표현의 도구로 활용하고 노련한 정신과 경력을 무기삼아 영화와 공생하는, 또 하나의 길을 뚫은 여배우가 오연히 서 있다. 김혜리 <씨네 21> 편집위원

한겨레 2009.11.30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