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20 - 앞으로 만날 분노에 대하여
어제는 '그 사람' 때문에 달라질 나의 미래에 대해서만 암담해 하다가,
오늘은 '그 사람을 찍은 사람'을 만났을 때 느낄 분노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내 삶에 대해 생각해 봤다.
아마 내 학생의 학부모 중에도 절반 혹은 그 이상이 있을 것이다.
아마 내 친구들 중에도 30퍼센트 가까운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마 내 동료들 중에도 꽤 많은 수가 있을 것이다.
빨갱이에 대한 분노,
안전에 대한 욕구,
나라를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
먹고 살기 좋은 세상이었으면 하는 소박한 소망,
또 뭐였을까,
뭐였을까.
앞으로 그들을 만날 때 나는 아마 울컥할 것 같다.
발끈할 것 같다.
이 울컥하는 감정은 아마도
나를 설명하기 힘든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슬픔과 분노 때문인 것 같다.
저들 앞에서 소수자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학생인권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얼마나 소용없는 일이고 아득한 일인가에 대한.
동의는커녕, 나의 생각을 인정받고, 이해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에 대한.
슬프고, 억울하고, 화나고, 그래서 눈물나지만,
그러므로 이 슬픔과 분노는 온전히 나의 것이지 그의 것이 아니다.
나의 살아온 삶에서 입은 상처들 때문이지 그들 때문이 아니다.
이 점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울컥하지 말고 물어보기로 한다.
발끈하지 말고 여기 계셨구나, 하고 반색해보기로 한다.
"왜 그랬어요?"라고 하지 않고
"궁금했어요, 저는 그동안 대화를 해본 적이 없어서"라고 말하기로 한다.
"궁금했어요, 가장 바랬던 것이 뭐였는지"라고 물어보기로 한다.
"아,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저는 이랬었는데."라고 말해보기로 한다.
아마 잘 안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안 하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