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
어제는 EBS 문제풀이 수업을 하다가 문득,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여러분 조용히 자습하는데 와서 방해하는 느낌이네요."
고개 숙이고 각자 문제집 풀던 아이들이 문득, 고개를 들고 나를 보고 난감하게 웃는다.
"너무 방해되지 않게 목소리는 조금 낮출게요."
하고 한술 더 뜨니 조금 더 활짝 웃는다.
내 수업을 듣고 문제를 더 맞추면 얼마나 더 맞추랴.
아이들을 웃게라도 만드니 그나마 나도 기분이 좀 나아졌다.
수능 한 달 전이다.
2.
저녁엔 요즘 '핫플레이스'로 뜬다는 경리단길에서
팟타이에 똠양꿍에 커리를 먹고 수제 맥주를 마셨다.
1년 전에 결혼한 여자, 두 달 전에 결혼한 여자, 그리고 보름 후에 결혼할 여자가 모였다.
시어머니에게 적응한 이야기, 명절을 보내며 만난 시댁 사람들 이야기, 남편의 여러 버릇 등을 이야기하다보니
나도 명절을 지내느라 앞뒤로 힘들었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
다른 여자들은 "그래도 남편 어머니니까", "할 수없지 내가 모셔야지 뭐"하고 선뜻 이야기하는 걸 보며
나도 마음이 조금은 너그러워졌다.
난 내가 무지 소탈하고 털털하고 막 너그럽고 그런 줄 알았는데,
사회 생활과 결혼 생활을 거치며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나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까다로우며 그 정도가 꽤 상위권에 속하더라는 것.
미적 취향이 없는 줄 알았는데 분명히 있으며,
때로는 나 자신이, (남들보기에는) 거의 '공주'처럼 대접받기를 원한다는 것.
여기에는 이쁘다 이쁘다 공주도 있지만,
나의 의사를 존중받고 나의 존재를 인정받고 - 그런 의미도 크다.
나 자신이 존중받는 것을 포기하고 살면 안 되지만
또 나를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다.
학생들을 만나면서는 나를 내려놓는 것을 참 많이 배웠다.
학생들과의 문제 상황은 언제나, 나를 내려놓는 것에서 시작하면 길이 보였던 것 같다.
존중받기와 내려놓음,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갈등이 필요했던 날도 있었다.
그 갈등에 의연하게 대처하고, 여유있는 태도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그러면서 서로가 적응하는 일들, 이런 것들을 나는 그동안 훈련해왔다.
그런 훈련이 결혼 생활에도 필요하겠지,
그래서 지금의 기간이 의미 있는 기간이겠지,
하고 생각하는 여유가 이제는 있으니
나도 많이, 컸 다 .
3.
교과 모임 하나,
학생인권 모임 하나,
여성주의 모임 하나,
퇴직 혹은 이직 이후를 준비하는 모임 하나,
이렇게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
잊지 말아야겠다.
모임을 하는 데에도 나는 참 까다로워서,
조금만 나의 뜻과 맞지 않은 것 같거나
조금만 힘든 것 같으면 도리도리 하고 관두곤 한다.
모임에 나갈 생각을 하면
그렇고 그런 여자들이 그렇고 그런 얘길 할까봐 싫고
그렇고 그런 아저씨들이 그렇고 그런 얘길 할까봐 싫고
또 그렇고 그런 애들이 그렇고 그런 얘길 할까봐 싫고.
그렇지만,
두 발 모두가 아니라 한 발만 담그더라도,
때로는 발 반 쪽만 담그더라도,
여기서도 배울 게 있을 거라는 여유를 가지고.